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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사람 2018-9 P.77 Uncut News]

 

‘치유와 해독의 힘’ 지닌 여름 벗, 수박

 

▲ 이미지 = PIXABAY

editor. 김홍국 정치평론가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40℃를 넘나든 폭염과 불볕더위, 열대야로 심신이 하염없이 지치고 쇠약해졌다. 오죽하면 장안의 청춘남녀들까지도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신체 접촉조차 싫다고 절규했을까. 폭염으로 시비가 붙고 그 때문에 살인사건마저 발생한 무도하고 참담한 계절이었다.

그 여름 동안 가장 큰 위안은 무엇이었을까? 백범 김구 선생에겐 ‘대한독립’, 한용운 시인에겐 ‘님’이었던 소중한 것이 필자에겐 무엇이었을까? 고백컨대 필자의 사랑을 여름 내내 받은 건 다름 아닌 수박이었다. 무더위에 청량제가 된, 그래서 너무나 정답고 고마운 ‘여름 귀빈’ 수박이었다.

수박은 흔히 과일로 취급하지만, 채소에 속하는 밭작물이다.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엔 ‘서과(西瓜)’란 이름으로 적혀 있어 서양에서 왔음을 알게 한다. 남아프리카 열대, 아열대의 건조한 초원지대가 실제 원산지다. 그럼에도 수박은 국경과 국적을 초월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 대개 생과일을 그대로 먹거나 잘라서 과일 샐러드에 넣어 먹으며, 중국에서는 씨를 볶아 스낵으로 먹기도 한다.

연구서에 따르면 수박은 허균이 지은 조선시대 음식 품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 귀화해 고려인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는 기록이 그 책에 나온다.

한방에서는 수박이 갈증을 없애주고 해독하는 효능을 지녔다고 본다. 간염, 담낭염, 콩팥염과 황달을 치료해주고 혈압을 내려준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수박의 효능을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며 목이 마르는 증상을 덜어주고, 더위로 몸속에 쌓인 독을 없애주며, 속을 시원하게 해 기를 내리고 오줌이 잘 나가게 한다. 혈액이 섞인 설사를 일으키는 병과 입안이 헌 것을 치료한다”라고 기록했다. 수박의 열매껍질은 급성 콩팥염, 간경화로 생긴 복수, 고혈압 치료에 쓰인다. 씨는 노인의 변비를 치료하고, 정기를 길러서 몸을 보하며, 장(臟)을 적셔주는 효능까지 있으니 수박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귀한 먹거리인 셈이다.

열량이 100g당 30㎉로 매우 낮은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이기도 하다. 90% 이상이 수분인 수박에는 비타민A·B1·B2·C와 칼슘, 칼륨, 철분 등의 무기질뿐 아니라 글루타민산, 알기닌 등의 아미노산도 함유돼 있다. 수박 과즙에는 시툴린, 리코핀과 카로틴 등 카르티노이드 사과산이 함유돼 갈증과 더위를 없애주고, 주독을 풀어주며, 소변이 자주 나오게 함으로써 체내 노폐물을 제거해준다.

김영찬 시인은 “수박 속 덩그런 빈터에 원형극장 황홀한 한여름 밤의 무대를 들어앉히고 / 단내 나는 인생 3막5장 야심 찬 / 생애를 연출해낼 꿈에 / 들뜬 사람들 / 수박의 문을 그런데 어떻게 열 것인가 / 결국 열릴 수밖에 없는 단물 흐르는 수박의 집”이라고 수박을 예찬했다. 또 허수경 시인은 “푸르게 차오르는 냇물의 시간이 온다는 걸 / 가재와 붕장어의 시간이 온다는 걸 / 선잠과 어린 새벽의 손이 포플러처럼 흔들리는 시간이 온다는 걸 / 날아가는 어린 새가 수박빛 향기를 몰고 가는 시간이 온다는 걸”이라고 수박의 정겨움을 노래했다.

필자는 “그 정겨움, 그 사랑, 청량한 원형 샘물이여”라고 찬사를 보내곤 한다. 끔찍하고 지겨웠던 불볕더위를 통쾌하게 이겨내게 한 수박의 ‘치유와 해독의 힘’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 서로에게 수박 같은 친구가 되면 어떨까. 여름 벗 수박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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