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10 Food  Essay]

 

‘퍼순이 아줌마’의 메가톤급 갈치조림·두부구이

 

editor. 윤동혁

 

2년은 넘었을 터다. 어느 날부터 ‘갈치조림백반’이란 대형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4차로 길옆에 우뚝 솟아 있으니 누구 눈엔들 안 띄겠는가.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지척에 있는, 전철이 곧 들어선다고 해서 시골이지만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흥업면. 다이소와 롯데리아가 들어왔으니 면 소재지라고 해도 원주시나 다름없다.

내가 살고 있는 귀래면과 원주시내의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식당을 찾는 일이 많지만 그 갈치조림집은 아예 리스트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보나마나 뻔하지 않겠는가. 도톰하다 해도 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온 놈일 것이고, 1년에 한두 번은 찾아가는 제주도에 가서 (엄청 비싸기는 하지만) 먹으려고 아껴두는 메뉴이니까. 갈치조림 말고도 몇 가지 음식 이름이 적혀 있었으나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갈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네갈이든 소말리아든 그 갈치가 어디서 왔거나 간에 갈치만이 풍기는 그 고소한 비린내에 언젠가 낚이게 돼 있다(고 나는 믿는다). 갈치 살보다 푹 삶긴 무가 더 좋다느니 하면서 기어코 그 음식점(금정식당) 문지방을 넘어가게 됐다.

갈치조림 1인분에 1만 원(2인 이상). 가격이 저렇게 저렴한 걸 보면 이 집 갈치, 아프리카 출신이 분명해. 주방 아줌마(사장님)에게 특별 주문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젓가락이 바로 뼈에 부딪치지 않도록 살집이 도톰한 놈으로 해달라. 가격은 맘대로 추가하시면 된다.” 아줌마는 나의 파격적 제안을 가볍게 제압했다.

“1만2000원짜리로 해드릴게.”

“아니, 조금 더 받으셔도 되는데….”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의 등은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3년을 비비적거리던 그 문제의 갈치조림이 고소한 비린내를 풍기며 상 위로 올라앉았다. 우선 실망! 손바닥만 한 무가 새카만 얼굴로 반겨줄 줄 알았는데 갈치조림의 영원한 반려자 ‘무’ 대신에 호박이… 어라? 이거 새로운 발견이네. 갑자기 제주도 갈칫국이 떠올랐다. 그 비린 갈치를 마알간 국물에 담가 내오는 그 갈칫국. 그래 그 갈칫국은 호박 넣고 끓이는 거잖아.

확실히 새로운 발견이었다. 오랜 옛 친구 ‘무’가 섭섭해하든 말든 갈치 향이 듬뿍 밴 호박을 새 애인 사귀듯 뺨에 홍조까지 띠며 먹었다. 그리고 메인 게스트인 갈치를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는데… 뭐냐 이건, 어찌 젓가락에 이런 중량감이 느껴지는가. 뒤집어보니 맙소사, 살찐 고등어만큼 두툼한 게 젓가락 끝을 점잖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프리카에서 왔으면 살이라도 많이 붙어 있어야지.”

그랬는데… 아주머니에게 갈치의 출신 성분을 듣고 나서 나의 경솔함을 많이 후회했다. 제주도란다. 단 냉동이라는 거. 맛을 보니 제주 서부두에서 먹던 그 갈치조림과 별 차이 없었다. 안 물어볼 수 없잖은가. 왜 이리 싼가. 뭐가 남겠는가. 그랬더니 복스럽게 생긴 그 아주머니(김입분·59)가 방긋 웃으며 답한다. “내 별명이 어려서부터 퍼순이라니까요.”

나는 일행이 두 명뿐인지라 이미 배가 부풀어 올랐음에도 두부구이(한 접시 1만 원)를 추가로 주문했다. 감격 주파수가 쨍쨍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원주시 단구동에서 가져온다는 문제의 두부는 동해안 바닷물로 만드는 것인데 그 두께는 물경 1.5cm가 넘어 보였다. 그리고 다섯 조각이나 올라앉아서 접시가 찌그러질 것 같았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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