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부리듯 음식 만들어내시던 어머니 : 약과, 차조미음, 왁적이, 소방

[음식과 사람 2018-10 Recipe]

▲ 이미지 = PIXABAY

사라져가는 전국 팔도의 우리 음식을 찾아내고 지키기 위해 각 지방과 집안에 전해져오는 ‘내림음식’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 각자의 어린 시절 집안에서 먹어오던 음식을 통해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고, 재현하고, 비교해보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공들여 완성해낸 명가 내림음식 레시피를 <음식과 사람>에 소개한다.

새로운 메뉴 개발에 늘 목말라하는 외식업계에 좋은 ‘소스’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아울러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한식의 DNA를 21세기 우리 음식점 식탁으로 새롭게 소환해내는 일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editor. 김진수 / 자료 제공.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우리 집 앞엔 경복궁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경복궁과 집 앞에는 긴 천(川)이 있었고, 그 천에서는 늘 맑은 물이 흘렀다. 시가지 중앙에 자리 잡았기에 나라의 큰 행사 때면 우리 집 앞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천을 끼고 사거리 길로 내려가면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는 회사가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점심 식사 때도 손님을 모시고 집으로 오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늘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어머니는 아버지 전화를 받으면 곧 치마를 허리끈으로 동여매고 바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하셨는데, 음식 만드는 모습이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봄이 되면 장을 가르고, 여름엔 입맛 잃은 가족들을 위해 작년에 담가두었던 장아찌에 참기름으로 고소함을 더하셨다. 가을엔 나물을 말려 묵은 나물을 만드셨고, 일 년 먹을 쌀을 가마로 사서 뒷마루에 쌓아두는 것으로 어머니의 겨울은 시작됐다. 마당 옆 장독대엔 항아리마다 된장, 고추장, 간장과 장아찌가 풍성하게 담겼고, 빈 항아리는 가을에 말려둔 묵나물로 채워졌다. 그렇게 어머니는 나에게 삶의 지혜를 주셨고, 생활의 여유를 알게 해주신 스승이시다.

대구가 고향인 나의 시어머니는 성격이 활발하고 강한 분이시다. 사회활동을 하셨던 시어머니 곁엔 늘 많은 친구분들이 계셨다. 집으로 오실 때면 항상 장을 봐서 들어오셨는데 살림 손이 큰 편이어서 장을 보는 것도 무조건 많이, 생선도 가장 큰 것, 과일도 박스째로 사셨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는 항상 손님 20명은 대접할 수 있는 재료가 구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친구분들을 좋아하고 손님 대접하는 것을 즐기신 시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거렸고, 나는 부엌에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끝내는 날이 많았다. 어떤 식재료를 가지고도 이 음식 저 음식을 맛깔나게 손쉽게 만들어내시는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시어머니의 그 당당함과 자신감은 지금 나의 삶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기름 냄새 폴폴 풍기던 약과]

약과(藥果)는 밀가루에 꿀을 섞어 반죽한 것을 기름에 튀긴 유밀과(油蜜果)의 하나다. 추석을 한 달여 남겨두고부터 어머니는 약과를 만드셨는데, 그날은 기름 냄새가 온종일 집 안에 진동했다. 우리 칠 남매는 부엌을 들락거리며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약과를 얻어먹기 위해 번갈아가며 부엌에 들어가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만들어진 약과를 선선한 뒷 벽장에 넣어두시고 손님상에 차와 함께 내어놓으셨다. 약과를 만드시던 어머니를 회상하며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 재료 및 분량

밀가루 2컵, 소금 1/4작은술, 참기름 3큰술, 꿀 3큰술, 청주 2큰술, 생강즙 1작은술, 계핏가루 1/2작은술, 식용유 4컵 집청 : 조청 2컵, 물 4큰술, 생강 20g, 통계피 10g, 유자청 2작은술 고명 : 잣

 

▶ 만드는 방법

1. 밀가루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후 체에 내린다.

2. 밀가루에 꿀, 청주, 생강즙, 계핏가루를 넣고 고루 섞은 후, 뭉치듯이 가볍게 반죽한다.

3. 반죽을 밀대로 0.8~1cm 두께로 밀어 네모나게 자른 후 칼로 자국을 내어 고루 익힌다.

4. 90℃의 기름에서 몸 부풀기를 한 후 130℃의 기름에서 색을 내며 튀겨준다.

5. 튀겨진 약과를 집청에 담근 후 잣으로 고명을 한다.

집청 : 물, 생강, 통계피를 넣고 끓인 후 조청을 넣고 졸인다. 끓으면 불을 끄고 유자청을 넣는다.

 

 

[어린 날 아버지의 보양식 차조미음]

내 나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께서 편찮으셨던 기억이 있다. 몸이 약한 편이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밥을 잘 들지 못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늘 차조미음을 끓여놓으셨다. 차조미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드셨던 아버지의 보양식이었다. 입맛이 없다고 식사를 거절하고 출근하시는 아버지 앞에 어머니는 알맞게 식힌 차조미음을 아무 말씀 없이 들고 계셨고, 그런 어머니를 물리치지 못하신 아버지는 선 채로 미음을 들이켜고 출근하시곤 했다. 그 후로도 1년 이상 아버지의 출근길엔 항상 차조미음을 들고 계신 어머니 모습이 있었고, 아버지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라서야 차조미음을 볼 수 없었다. 오늘에 와서 차조미음은 남편의 보양식이기도 하다.

 

 

▶ 재료 및 분량

차조 1/2컵, 황률 20개, 대추 20개, 인삼(수삼) 1뿌리(15g), 죽 끓이는 물 12컵, 생강즙 1/2작은술, 소금 1작은술

 

▶ 만드는 방법

1. 차조는 깨끗이 씻고 일어서 물기를 뺀다.

2. 황률은 물에 씻어 물기를 빼고 대추는 면보로 닦는다. 인삼은 다듬어 씻어 뇌두를 자르고 폭 1cm 정도로 썬다.

3. 냄비에 차조와 황률, 대추, 인삼을 넣고 죽 끓이는 물을 부어 센불에 10분 정도 올려 끓으면 약불로 낮춰 가끔 저으면서 3시간 정도 끓인다.

4. 미음이 푹 끓으면 생강즙과 소금을 넣고 2분 정도 더 끓인다.

5 고운 체에 걸러 그릇에 담는다.

 

 

[가족의 정(情) 넘치던 왁적이]

우리 칠 남매는 맛난 것을 먹을 때 가장 치열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7등분을 해서 큰 쟁반에 놓아두시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럴 때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큰 것을 고르려고 눈을 반짝이곤 했다. 아침 등교시간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오빠 4명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노란 양은 도시락을 상 위에 쭉 펼치고 어제 만들어놓은 왁적이를 찬으로 담으셨다.

왁적이는 오빠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 찬 중 하나였다. 전날 어머니는 왁적이를 만들기 위해 덩어리 쇠고기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셨다. 그리고 비싼 쇠고기보다 가격이 싼 무를 많이 넣어 만드셨는데, 그러면 오빠들은 서로 무보다는 고기를 더 넣어달라고 어머니께 애교를 부렸다. 그런 오빠들에게 어머니는 웃으며 쇠고기 한 덩어리를 집어 도시락에 넣어주셨다. 왁적이의 짭짤한 내음이 꼭 우리 집 향내 같다.

 

 

▶ 재료 및 분량

무 400g, 쇠고기(우둔) 150g, 청·홍고추 1개씩, 대파 20g

양념 : 간장 2큰술, 물 2컵, 통깨 1작은술

 

▶ 만드는 방법

1. 무는 깨끗이 손질해 가로세로 1.5cm, 두께 1cm로 썰고 쇠고기는 얇게 저며 썬다.

2. 청·홍고추는 굵게 다지고 파는 채 썬다.

3. 냄비에 무를 넣고 청·홍고추와 대파를 뿌린 다음 양념장을 끼얹고, 그 위에 얇게 썬 고기를 얹는다.

4. 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센불에 올려 2분 정도 끓이다 중불로 낮춰 15분 정도 더 끓인다.

5. 조려지면 통깨를 뿌린다.

 

 

[극찬받았던 손님 접대 음식 소방]

‘소방’은 만두의 한 종류이고 <요록>에 기록돼 있다. 한반도에서 원래 만두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북한의 개성 특급시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쌍화점’ 같은 만두 가게가 번창했던 곳이다. 겨울이 되면 만두를 빚어 곳간에 걸어놓은 채반에 저장해두고 먹었다고 한다. 만두의 종류는 재료에 따라 이름도 달랐는데, 소방, 수고아, 메밀만두, 토란만두 등이 있다. 소방은 쇠고기를 양념해서 밀가루 만두피로 감싸 석류 모양으로 빚는 만두다. 모양이 비교적 작고, 석류 모양으로 예쁜 소방은 주로 손님 대접할 때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음식이다.

 

 

▶ 재료 및 분량

밀가루 1컵, 쇠고기(우둔) 200g, 물 3큰술 쇠고기 양념장 : 소금 1작은술, 깨소금 2큰술, 후춧가루 1/2작은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장국 육수 : 쇠고기(사태) 200g, 물 15컵, 청장 1큰술, 소금 1작은술

 

▶ 만드는 방법

1. 밀가루는 반죽해 30분 정도 면보에 싸서 숙성시킨다.

2. 지름이 6cm 정도 되도록 얇게 밀어 만두피 모양으로 만든다.

3. 쇠고기는 핏물을 닦고 곱게 다져서 쇠고기 양념장을 넣어 주무른다.

4. 만두피에 양념한 쇠고기 소를 넣어 석류 모양으로 만든다.

5. 장국을 끓여 거른 뒤 맑은장국이 끓으면 만두를 넣어 삶아낸다.

 

 

<정금미 정금미전통음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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