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8-11 Consulting]

해안가 관광지에 식당을 차린다면 대개 횟집을 아이템으로 떠올린다. 몇 해 전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 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는 역발상으로 전남 보길도의 부실한 횟집을 삼겹살집으로 바꿔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은 눈에 잘 띈다. 횟집이 즐비한 해안가에서 희소성을 무기로 색다른 메뉴를 팔면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된다. 이른바 포지셔닝 전략이다. 서울에서 대박 식당 반열에 올랐던 ‘고대앞 멸치국수’는 몇 해 전 강원 강릉에선 생소한 메뉴였던 멸치국수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Why]

서울서 멸치국수로 성가 높였지만 몸 아파 요양

‘오월에 초당’ 최은주 대표 부부는 서울 강남에서 과일가게를 했다. 식당 운영이 과일가게보다 안정적일 듯해 2007년 고려대 앞에 83㎡(25평) 규모의 점포를 마련하고 분식집을 차렸다. 떡볶이, 순대, 만두, 튀김 등을 팔았다. 일반 분식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대학가에 흔한 여러 분식점 가운데 하나였다.

최 대표는 뭔가 특별한 메뉴로 차별화하고 싶었다. 간판을 ‘고대앞 멸치국수’로 내걸고 멸치국수에 집중했다. 국수만으로는 밋밋해 김밥을 사이드 메뉴로 삼아 국수와 매치시켰다. 김밥도 평범하지 않았다. 내용물을 많이 넣어 크고 고급스럽게 만들어 2500원을 받았다. 대부분의 김밥이 1000원이던 시절이었다.

노력은 성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가성비 높은 멸치국수에 환호했다. 일부 학생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멸치국수와 김밥을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교수들도 와서 맛있다며 먹고 갔다. 나중엔 <식객>의 허영만 화백까지 찾아왔다. 맛있다는 칭찬과 함께 허 화백은 <식객>에 이 집 멸치국수를 소개했다. 곧이어 SBS ‘생활의 달인’에도 소개되자 손님들이 더욱 늘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2500원에서 시작한 국수 가격이 4000원이 됐지만 손님은 여전했다.

긴 세월 쉬지 않고 국수와 김밥을 만들어 팔다 보니 최 대표 몸에 무리가 왔다.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자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국숫집 운영을 동생과 직원들에게 맡기고 공기 좋은 지방으로 다니며 요양을 했다. 그의 발길은 강릉까지 닿았다. 강릉 초당동에서 허름한 집을 발견하고 장기 요양차 그 집을 구매했다. 현재 ‘오월에 초당’이 들어선 집이다.

 

[Problem]

강릉서 전원식당 재개했으나 콘셉트 못 정해

집이 낡아 새로 지으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초당동은 문화재 발굴지였기 때문이다. 초당동 지역엔 사철 관광객들로 붐볐다. 최 대표는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염두에 두고 소일 삼아 1년간 집을 리모델링했다. 당초 게스트하우스를 목표로 했던 리모델링 작업은 점차 식당 쪽으로 기울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하루에 정해진 손님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식당은 노력하기에 따라 회전율을 높이면 얼마든지 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당초 게스트하우스에서 식당으로 마음이 기운 이유였다.

최 대표는 리모델링 작업이 끝나도록 어떤 메뉴로 어떤 개념의 식당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평소 <월간 외식경영> 구독자였고 해당 매체에서 주관하는 교육 등에 가끔 참가했던 터라 안면이 있는 김 기획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기획자와 최 대표는 어떤 아이템을 어떤 콘셉트로 풀어나갈지 숱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시골밥상, 비빔밥, 칼국수, 두부요리 등 여러 메뉴를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강릉은 막국수, 장칼국수, 순두부가 강세인 지역이다. 김 기획자는 최 대표의 검증된 조리 실력을 믿고 일단 막국수로 개업할 것을 권했다. 막국수 투어와 조리법까지 교육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막국수 조리에 자신이 없었다. 순두부도 심도 있게 논의됐지만 처음 해보는 음식이어서 역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강릉 초당엔 이미 순두부로 명성을 굳힌 식당들이 많았다. 아무리 잘해봐야 그들의 아류 식당밖엔 안 될 것 같았다.

최 대표에겐 또 하나의 메뉴 선정 기준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란 그였기에 버려지는 음식이 적은 메뉴를 택하고 싶었다. 그 기준으로 보자면 칼국수가 제격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멸치국수다. 김 기획자도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Solution]

‘강릉 최고의 멸치국수 전문점’으로 포지셔닝

최 대표의 멸치국수 조리 실력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었다. 조리 교육은 필요 없었으므로 김 기획자는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색다른 국수 전문점을 벤치마킹하도록 했다. 국수의 플레이팅이나 색감을 살리는 방법 등을 익히게 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최신의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는 건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고 메뉴 개발에 자극을 준다.

2015년 7월, 결국 ‘오월에 초당’은 서울에서 맛과 품질이 검증된 멸치국수로 개점했다. 서울에선 프리미엄 김밥과 짝을 지어 사이드 메뉴로 팔았다. 그러나 관광지라는 지역 특성이 농후한 강릉에서 김밥은 어울리지 않았다. 김밥 대신 선택한 것이 오징어를 넣은 파전이었다. 오징어는 강릉의 대표적 해산물이고 당시엔 가격이 저렴했다. 대파는 앞밭에서 직접 키운 것이라 신선하고 푸짐하게 제공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멸치국수-김밥 커플’이 강릉에선 ‘멸치국수-파전 커플’로 손님을 맞았다.

▲ 대표 메뉴 멸치국수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최 대표는 집 앞의 밭농사를 병행했다. 두 채의 가옥 사이에 있는 널따란 정원엔 각종 유실수와 허브, 화초, 다육식물을 심고 가꿨다. 만일 최 대표가 식당을 열지 않았다면 꽃들과 함께 타샤 튜더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김 기획자는 이 점을 식당 정체성의 포인트로 삼았다.

직접 꽃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자가 재배한다는 점, 강릉이라는 지역성, 가족끼리 운영하는 가족식당의 모습을 점포의 기본 콘셉트로 잡았던 것이다. ‘농가식당’, ‘자가 재배’,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등의 키워드로 ‘오월에 초당’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했다. 김 기획자 자신도 전원적인 식당 풍경을 접하고 반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비주얼이 좋은 식당이었어요. 홍보거리가 많고 콘텐츠 소재를 풍부하게 보유했어요. 게다가 메뉴가 저렴하면서 질도 높아 홍보하기엔 아주 수월했지요. 사람들이 관광지에서 매일 고기나 해산물만 먹을 순 없잖아요. 편안한 풍경을 배경으로 부담 없는 식사가 가능한 강릉의 명소, 그런 식당으로 포지셔닝하고자 했죠.”

멸치국수가 주 메뉴지만 분식집 이미지를 탈피하려면 옥호가 중요했다. 김 기획자와 최 대표는 다시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했다. 최 대표는 ‘5월에’를 이름에 넣고 싶었다. 5월은 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5월은 꽃과 산나물이 번성하는 가정의 달이자 행사가 많다. 가족 단위 외식이 연중 가장 빈번한 시기다. ‘5월에’와 함께 식당이 위치한 동네인 초당동의 ‘초당’을 따서 이름을 완성했다. 자연스럽게 옥호에 식당의 위치 정보도 들어갔다.

콘셉트와 옥호도 정하고 메뉴도 결정했다. 음식의 질도 충분했다. 남은 건 홍보였다. 서울식 멸치국수는 강릉에서 다소 생소한 음식이다. 그만큼 홍보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서울에서 이름 날리던 멸치국수였지만 강릉에선 아무도 그 명성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김 기획자는 유명 블로그들을 초청해 블로그 마케팅을 실시했다. 직접 장을 담그고, 주인이 앞밭에서 식재료를 키워 식탁에 올리는 점을 집중 홍보했다. 자가 재배, 장 담그기, 농가식당, 전원식당 등의 키워드로 블로그와 기사 콘텐츠를 작성했다. 마침 이 콘텐츠들을 강릉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간하는 잡지와 어느 엄마 모임 카페에서 인용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에게 식당의 존재가 알려졌다. 나중엔 자발적 블로거들을 통해 계속 재인용됐고, 고객들에게 ‘오월에 초당’을 충분히 각인시켰다.

 

[After]

강릉에서 꼭 찾아봐야 할 식당으로 등극

한번 다녀간 손님들은 풍광이 좋고 널찍한 정원과 시원하게 펼쳐진 앞밭에 넋을 잃고는 했다. 그런 손님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냈다. 최 대표는 이제 강릉에서 ‘오월에 초당’ 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리 동네에 순두부 전문점이 많습니다. 그런 집이 모두 다 잘되는 건 아닙니다. 주변에서 순두부가 아닌 국수를 메뉴로 선택한 점에 대해 안목이 깊었다고 평가해주더군요. 처음엔 순두부 마을에 웬 국수냐며 핀잔을 줬던 분들이지요. 점포 포지셔닝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식당 운영이 자리를 잡자 지난해부터 삼계탕을 별도의 공간에서 판매했다. 여름철엔 제법 쏠쏠해 효자 구실을 해줬다. 이제 ‘오월에 초당’은 하루 1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국수 전문점이자 강릉을 대표하는 멸치국수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강릉에 가면 한 번쯤 먹고 와야 하는 멸치국수 명소로 도약했다.

최 대표는 강릉의 성공을 발판 삼아 11월 중 서울에 ‘고대앞 멸치국수’를 재개점한다. 이번엔 원래 자리는 아니고 예전 점포 근처에 낼 예정이다. 그동안 건물주의 터무니없이 높은 보증금 요구 때문에 2년 전에 철수했었다. 권토중래란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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