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음식과 사람 2018-11 Discovery]

▲ 이하 이미지 = PIixabay

너무 귀해 신선의 선약(仙藥)으로 여겨졌건 흔히 구할 수 있어 서민의 사랑을 받았건, 예부터 버섯은 상서로운 식품의 대명사였다. 제철인 가을을 맞아 다양한 버섯 요리를 즐기며 버섯에 깃든 스토리를 음미해보자.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음식은 버섯이다. 적어도 역사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보면 그렇다. 먼저, 값으로 따져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경매 역사상 제일 비싸게 팔린 버섯은 송로버섯인데 1.5kg짜리가 33만 달러(약 3억7000만 원)에 팔린 적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송이버섯도 일본에서 최상품 1kg이 200만 원에 거래됐으니 송이 한 개당 20만 원쯤 했던 셈이다.

크고 질 좋은 최상급 버섯들이니 비싼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역사적으로 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예부터 사람들이 버섯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섯은 향이 뛰어나고 맛도 있지만 몸에도 특별히 좋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엔 버섯을 함부로 먹지 못하게 했다. 너무나 귀하고 좋기 때문에 신(神)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선 파라오가 아니면 버섯을 먹지 못한다는 법령까지 있었다. 버섯은 신의 음식인데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니 먹어도 되지만 인간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령스러운 버섯, 영지

동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버섯을 신선의 음식으로 여겼기에 역사적으로 버섯을 먹고 신선이 되려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중국 진시황도 그중 하나다. 알려진 것처럼 진시황은 늙지도 죽지도 않겠다며 소년, 소녀 3000명을 뽑아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동쪽 삼신산으로 보냈다. 불로초 탐사의 책임자는 서복이라는 술사였다. <사기>를 비롯한 역사책엔 불로초를 찾아 떠난 서복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나오지만 민간 전설에선 이야기가 살짝 달라진다. 서복이 다시 돌아오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쓰고도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으니 곧이곧대로 보고했다간 목이 10개라도 남아나지 못할 게 뻔했기에 대신 다른 약초를 바쳤다. 동쪽 봉래산에서 신선을 만나긴 만났는데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고 대신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내놓은 게 신령스러운 버섯, 영지라는 것이다.

▲ 신령스러운 영지버섯 .

장마당 약장수들이 하는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이 버섯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반영돼 있다. 실제 정통 역사책에서도 버섯은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삼국사기>엔 영지에 관한 기록이 네 차례 나온다. 웅천과 상주, 공주와 춘천에서 각기 상서로운 버섯을 발견했다며 임금에게 바쳤다는 기록이다. <고려사>에도 태조 왕건에게 영지를 바치니 왕이 창고의 곡식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듯 영지는 보이는 대로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여기서 영지는 특정 버섯일 수도 있고 버섯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대부분의 버섯을 상서롭다고 여겨 신령스러울 영(靈), 버섯 지(芝)자를 써서 영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신선이 되는 지름길, 송이

버섯은 종류가 많다. 그 때문에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나라별, 시대별로 버섯에 대한 기호가 달랐다. 다만 공통점은 대부분 버섯을 먹으며 천상에 오르는 것처럼 환상을 느꼈다는 것이다. 버섯 중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송이를 먹을 때 신선이 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래서 이태백에 버금간다는 고려 시인 이규보는 신선이 되는 지름길로 송이를 꼽았다. 초월적 존재의 신선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속을 초월해 자연과 벗하며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을 신선이라고 한다면 이규보의 시처럼 송이로 충분히 신선이 될 수도 있다.

▲ 송이버섯.

송이는 처음엔 땅의 힘을 빌려 생겨나지만, 자라기는 바람 소리와 맑은 이슬만 먹고 크는 고고한 식물이기에 송이를 먹으면 그 향기로 온몸의 기운까지 평온해진다고 했으니 신선 된 기분이 따로 없을 듯하다. <동의보감>에서도 송이는 깊은 산속 늙은 소나무 밑에서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 자라기 때문에 나무에서 나는 버섯 중에선 으뜸이라고 극찬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소나무가 절개의 표상이었고, 십장생 중 하나로 꼽으며 장수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일본에선 아예 신들이 소나무에 깃들어 산다고 믿었다. 송이는 이런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자라니 맛이 향긋하고 풍미가 뛰어나다는 것인데 특히 살아 있는 소나무 뿌리에서만 자라기에 더욱 인체에 좋다고 여겨졌다.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처럼 소나무 정기를 먹고 큰다는 송이니 이런 버섯을 먹으면 육신은 물론이고 정신까지도 정화될 것 같다. 세속에 찌들지 않고 자연을 벗하며 사는 모습이 신선이라면,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송이를 먹는 거라고 읊은 것이 전혀 허튼소리만은 아닌 듯싶다.

 

버섯의 황후, 표고

우리는 이렇듯 송이를 최고로 꼽지만 중국은 다르다. 표고버섯을 으뜸으로 여긴다. 버섯이라는 단어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중국어로 버섯은 향기로울 향(香)자에 버섯 고(菇)자를 써서 ‘샹구(香菇)’라고 한다. 모든 종류의 버섯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지만 특별히 표고를 말할 때도 같은 단어를 쓴다. 표고가 최고의 버섯이고, 버섯의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표고는 역대 중국 황제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명 태조 주원장이 특히 표고를 좋아했는데 관련 일화가 전한다. 건국 후 심한 가뭄이 들어 주원장이 기우제를 지냈는데 몇 달간 기도를 올리며 제대로 먹지 못해 기력이 떨어졌다. 그러자 한 신하가 먹으면 100세까지 산다는 장수식품이라며 표고를 구해 바치니 주원장이 표고 볶음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게 명나라 궁중요리에서 비롯됐다는 표고 볶음이다.

청나라 궁중요리 중에도 유명한 표고 요리가 있다. 청의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제의 잔칫상에 놓였다는 향심압(香蕈鴨)이다. 향심은 표고를 겨울 죽순과 오리고기 또는 닭고기와 함께 조리한 음식이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죽순, 그것도 구하기 어렵다는 겨울 죽순을 제치고 표고를 요리 이름으로 삼은 걸 보면 중국인들이 얼마나 표고를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표고를 버섯의 황후라고 부르는데 자세히 보면 중국인의 표고 사랑엔 특이한 부분이 있다.

버섯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의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송이를 신선의 음식, 영지를 신령스러운 버섯이자 불로초에 버금간다고 여겼고 이집트에선 신의 아들 파라오의 음식으로 생각했는데 표고만큼은 신이 먹는 버섯이라는 소리가 없다. 걸핏하면 신과 연결하기 좋아하는 옛날 중국 사람들이지만 표고를 신의 음식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진작부터 표고를 인공재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헌에 따르면 13세기 송나라 때 이미 오늘날의 저장성 지방에서 표고를 인공으로 재배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일찌감치 인간의 손을 탔으니 표고가 신들이 먹는 음식의 지위를 내려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 버섯의 황후 표고버섯.

 

로마 황제 죽게 한 달걀버섯

동양에선 버섯을 먹으면 불로장생하며 신선처럼 맑게 살 수 있다고 했지만 고대 로마에선 버섯을 먹고 아예 신이 됐다는 황제까지 있었다. 주인공은 서기 1세기 무렵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다. 달걀버섯을 먹었더니 신이 됐다는 것인데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주장이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네로 황제의 양아버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을 때 먹었다는 버섯이 바로 달걀버섯이다. 이 버섯은 빛깔이 화려해 얼핏 독버섯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식용 버섯이다. 날로 먹어도 맛있고 불에 구우면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예전 이탈리아에선 고급 요리의 재료로 쓰였다. 특히 역대 로마 황제들이 좋아했다고 해서 ‘황제버섯(Ceasar's Mushroom)’이라고도 불린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역시 달걀버섯을 좋아했는데 네 번째 부인으로서 황후인 아그리피나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네로를 빨리 황제의 자리에 앉히려고 달걀버섯이 담긴 접시에 비슷하게 생긴 독버섯인 광대버섯의 즙을 발라 남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로마의 정치인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나오는 얘기니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건 분명해 보인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자 자리를 이은 네로는 죽은 황제가 달걀버섯을 먹었기에 신이 됐다며 전 황제를 신격화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달걀버섯은 졸지에 신의 음식이 됐다.

▲ 달걀버섯.

 

유럽 3대 진미, 송로버섯

현대 유럽에서 최고로 꼽는 버섯은 트러플(Truffle)이라고 하는 송로버섯이다. 유럽의 3대 진미를 얘기할 때 거위 간인 푸아그라, 철갑상어 알인 캐비어와 함께 거론되는 식품이 바로 트러플이다. 근대에 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버섯이니 신의 음식이라는 찬사를 붙이기에 뭐했는지 사랑과 예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트러플은 향이 좋기에 일반적으로 소스에 넣거나 다른 요리와 함께 섞어 조리한다. 물론 트러플도 종류 나름이다. 흰 트러플은 생으로 먹어야 제 향기를 즐길 수 있기에 샐러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검은 송로버섯은 물에 끓여도 향기를 유지하기에 다른 재료와 섞어 조리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트러플 특선요리를 주문해도 버섯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 유럽의 3대진미 송로버섯.

트러플이 귀한 이유는 인공재배가 되지 않고 채취가 어렵기 때문이다. 떡갈나무 숲의 땅속에 묻혀 있는 데다 육안으로 보면 돌멩이인지 흙덩이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여서 냄새에 민감한 암퇘지나 개를 이용해 채취한다. 트러플에서 나오는 향기가 동물이 이성을 유혹할 때 발산하는 호르몬인 페로몬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연인과 함께 식사할 때 트러플을 곁들인 요리를 먹으면 사랑이 더 깊어진다는 속설도 여기서 비롯됐다. 아마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에 취하고 맛에 반하며 페로몬 향기에 자극받기 때문일 것이다.

트러플은 사랑뿐 아니라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데도 특별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윌리엄 텔’을 작곡한 이탈리아 음악가 로시니가 트러플을 사랑했다.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도 트러플을 옆에 놓고 시를 썼다니 천재들 영감의 원천이 트러플인지도 모른다.

 

버섯에 깃든 희소성의 법칙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들은 왜 버섯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것일까. 여러 설명이 있지만 옛날엔 버섯이 워낙 귀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가장 그럴듯하다. 사실 음식이라는 게 맛있어서 비싸다기보다는 비싸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는데 버섯도 그런 식품 중 하나다.

세상엔 2만 종의 버섯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식용은 1800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요즘 이야기이고 옛날엔 버섯이 더욱 귀했으니 조선조 광해군 때인 17세기에 발행된 <동의보감>에 수록된 버섯은 20종에 불과했다. 하물며 영지와 송이, 달걀버섯 이야기가 나오는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식용 버섯은 불과 몇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면서 먹으면 신선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환상을 품었을 것이다.

반면 맛 좋기로는 양송이나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도 만만치 않은데 그럼에도 이런 버섯들은 역사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송이나 표고 등과 비교해 맛이나 향기의 차이를 꼽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드는 사람도 많지만 신의 음식 대접을 받지 못했던 버섯들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일찍부터 인공재배가 가능했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버섯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양송이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인공재배에 성공한 버섯으로 17세기 프랑스에서 대량 재배해 퍼뜨렸으니 대중적으론 인기를 얻었을지 몰라도 귀한 대접을 받을 틈이 없었다. 참고로 양송이를 서양 송이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송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름만 양송이일 뿐 느타리버섯 중에서도 주름버섯에 속한다. 새송이버섯도 느타리버섯 종류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처음엔 큰느타리버섯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가 상품성을 살리기 위해 새송이버섯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람들이 송이나 송로버섯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이유가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 버섯”이었기 때문인데, 새송이나 양송이를 비롯한 느타리버섯은 흔히 볼 수 있었으니 소수 부자의 입맛을 기쁘게 하는 대신 신의 음식임을 포기하고 수많은 서민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버섯의 제철, 가을이다. 너무나 귀해 신의 음식이고 신선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소리를 들었건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어 서민의 사랑을 받았건, 예부터 버섯은 상서로운 식품, 길조의 상징이었으니 다양한 버섯 요리를 즐기는 동안이나마 신선이 되는 환상을 품거나 행운이 깃들길 꿈꿔보는 것도 좋겠다.

 

 

[윤덕노] 청보리미디어 대표 겸 음식문화평론가로 음식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 베이징특파원과 사회부장, 부국장을 지냈으며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음식이 상식이다> 등 음식문화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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