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음식으로의 귀소 본능

[음식과 사람 2018-11 Recipe]

 

▲ 이미지 = PIXABAY

사라져가는 전국 팔도의 우리 음식을 찾아내고 지키기 위해 각 지방과 집안에 전해져오는 ‘내림음식’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 각자의 어린 시절 집안에서 먹어오던 음식을 통해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고, 재현하고, 비교해보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공들여 완성해낸 명가 내림음식 레시피를 <음식과 사람>에 소개한다. 새로운 메뉴 개발에 늘 목말라하는 외식업계에 좋은 ‘소스’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아울러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한식의 DNA를 21세기 우리 음식점 식탁으로 새롭게 소환해내는 일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editor. 김진수 / 자료 제공.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사람은 누구나 마음 누일 곳이 필요하다. 몸이 아닌 마음이 누울 곳, 고향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련해진다. 전라도는 나의 고향이다. 두 돌도 되기 전 서울로 왔지만 내가 태어난 곳이다. 전라도에서도 신안 앞바다의 섬 ‘안좌도.’ 목포에서 배를 2시간여 타고도 조각배로 갈아타야 오를 수 있었던 곳.

‘따순 밥 한 그럭’으로 비유할 ‘전라도 손맛’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개 ‘어깨너머로’ 배우며 성장한다. 학습하지 않아도 음식으로 익힌 손맛은 살림을 지탱하는 손맛으로 이어진다. 나 또한 어머니한테서 그렇게 익혔다. 어머니 어깨너머로 익힌 손맛과 입맛으로 맞춰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우리 집의 맛으로 지금까지 키워낸 듯하다.

우리 집 내림음식의 원형은 아버지의 입맛이다. 아버지는 성격이 깔끔하시고 허례허식이 전혀 없으셨다. 외식을 싫어하셔서 모든 집안 대소사는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치렀다.

내가 태어난 지 두 번째 해, 종로구 청진동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자식들만큼은 오로지 서울에서 교육시키고픈 아버지의 염원 때문이었다. 어릴 적 바쁘신 부모님을 위해 집안일을 많이 도왔는데, 일이 뜸할 땐 아버지께서 나와 남동생을 위해 간식도 자주 만들어주셨다. 붕어빵이 처음으로 유행할 땐 동대문에 가서 빵틀을 사다 구워주시고 튀김이나 빵도 해주셨다.

먹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음식 솜씨 있다고 아버지는 잘 드시는 것 못지않게 잘 만드시고 미각도 발달하셨다. 내가 처음 떡을 만든다고 할 때 전화를 수도 없이 하시며 먹는 사람을 배려하고 위생적으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만들어간 떡에 대해 관능평가도 해주셨는데, 아버지에게서 맛있다는 말 듣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런 아버지의 정갈하고 깔끔한 식성 덕에 우리 집 내림음식이 이어지지 않았는가 싶다.

어머니께서는 40대에 늦공부를 시작해서 그 공부로 70대가 넘으신 지금도 센터에서 강의를 하신다. 부모님 두 분 다 도전의식이 강하셔서 지금의 나를 보면 어머니, 아버지의 한 부분을 닮았구나 생각한다. 시작하면 엉덩이가 무거운 것도, 선택한 것은 끝까지 책임지고 가는 우직함도…. 요즘도 나는 생각한다. 내 딸과 아들에게 나는 어떤 어머니로 기억될지를.

 

입맛 잃은 봄날에 최적 감태지

전라도에선 감태김치를 ‘감태지’라 한다. 쌉쌀하고 달달한 감태지 맛은 중독성 있는 동치미 같다. 12월에 나오는 찰감태로 감태지를 담그면 입에 착착 감긴다. 겨울에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차게 무쳐 먹었던 감태지는 항상 이른 봄까지 입맛을 돋워줘 늘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결혼해 그 맛이 생각났지만 때를 놓쳐 감태를 구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몸살이 난 나에게 어머니께서 냉동실에서 감태를 꺼내 무쳐주신 날, 오랜만에 어머니의 감태지에 감동하고 몸살이 다 나아버렸다. 파래류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의 찬으로도 자주 올라 요즘은 딸과 함께 즐기는 반찬이 됐다.

 

 

[재료 및 분량]

감태 1덩어리(300g), 무 100g, 청·홍고추 각 1/2개, 쪽파 50g

양념 : 국간장 1큰술, 양조간장 2큰술, 멸치액젓 1/2큰술, 식초 2큰술, 설탕 2큰술, 대파 1큰술,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깨 1큰술

 

[만드는 방법]

1. 감태는 흐르는 물에 2~3번 씻어 물기를 살짝 짜준 후 먹기 좋게 4~5cm 길이로 썬다.

2. 무는 0.2cm 굵기로 채 썰고, 청·홍고추도 채 썰고 쪽파도 송송 썰어준다.

3. 준비된 양념을 배합한 뒤 무는 소금에 절이지 않고 양념과 함께 감태에 바로 넣어 버무린다.

4. 참기름과 깨를 넣고 살짝 버무려 시원하게 1~2일 냉장고에 숙성시킨 후 먹는다.

 

아버지의 보양식 세발낙지죽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보양식으로, 아버지의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시기가 올 때면 어머니가 쒀드린 기억이 난다. 넉넉한 양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버지의 상 앞에서 턱을 받치고 있으면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죽 한 그릇을 더 올려놓으셨다. 결혼 후엔 친정에 갈 때마다 수산시장에서 세발낙지만 골라 사 갔는데 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셔서 별것 아닌데도 효도한 것 같았다. 지금은 산 낙지로 먹고 남은 것으로 죽을 끓이지만, 어릴 적 먹었던 세발낙지죽엔 낙지보다 쌀이 훨씬 많았다. 그 죽엔 쌀과 물로 양을 늘려 가족에게 골고루 나눠 먹이고픈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재료 및 분량]

세발낙지 3마리, 밀가루 2큰술, 미나리 15g, 당근 20g, 양파 1/4개, 참기름 1큰술, 불린 쌀 1컵, 물 1.2L, 소금 1/2작은술

 

[만드는 방법]

1. 낙지는 내장과 입을 제거하고 밀가루를 넣고 주물러 깨끗이 씻은 후 1cm 정도로 굵게 다진다.

2. 미나리, 당근, 양파는 0.5cm 크기로 다져 놓는다.

3.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낙지, 채소 순으로 볶은 후 재료에서 물이 생기면 불린 쌀을 넣어 끓이듯 볶아주면서 쌀을 살짝 익힌다.

4. 분량의 물을 넣어 한 번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농도를 봐가며 쌀이 잘 퍼질 때까지 20~30분간 끓인다. 그릇에 내기 전 소금을 넣고 간을 한다.

 

정겹던 시댁 모임의 추억 홍어애탕

봄기운이 완연할 즈음이면 시어머님은 전남 나주 영산포의 지인에게 홍어를 부탁하셨다. 시댁 본가가 영산포라서 식구들이 홍어 없인 봄을 보낼 수 없는 애호가들이다. 최고로 물이 오른 홍어가 도착하는 날, 분가한 4남 1녀가 모이는데 특히 아들들이 애타게 기다린다. 잘 삭힌 홍어를 솜씨 좋은 시누이가 코는 코대로, 살은 살대로 식구들 식성에 맞게 해체한다. 밥상에서 술상으로 넘어가다 마지막으로 남은 뼈와 홍어 애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내면 시댁의 홍어 모임은 막바지에 이른다. 지금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정겹던 홍어 모임은 없어졌지만, 시장에서 좋은 홍어를 보면 당시 북적였던 시댁의 정겨움이 아른거린다.

 

 

[재료 및 분량]

홍어 애 250g, 홍어 살 100g, 무 100g, 미나리 100g, 대파 1대, 양파 50g

다시 물 : 물 1L, 멸치 30g, 다시마 2g

양념 : 다진 마늘 1/2큰술, 된장 1큰술, 고춧가루 1/2큰술, 생강 1작은술, 소금 1/3작은술

 

[만드는 방법]

1. 홍어 애는 너무 씻지 말고 크게 깍둑썰기를 한다. 홍어 살은 빗겨 썬다. 무는 씻어 나박썰기를 하고 미나리도 씻어 4cm 길이로 썬다. 대파는 어슷하게 썰고 양파도 굵은 채로 썬다.

2. 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20분간 끓여 다시 물을 만들고 썰어놓은 무와 대파를 넣은 후 10분간 끓인다.

3. 끓인 국물에 양념을 넣고 홍어 애, 홍어 살을 넣어 10분간 중불에서 끓인다.

4. 미나리를 넣고 2분 정도 더 끓여내 소금으로 간한 뒤 불을 끄고 완성한다.

 

오도독거리는 재미 닭치각

어머니는 명절 때가 되면 닭의 살만으로는 성에 안 차셨는지 닭 뼈도 칼등으로 콩콩 찧어 드르륵 곱게 갈아서 각종 채소와 섞어 전을 지져 주셨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두툼하게 닭전을 지지면 그 훌륭한 냄새에 감탄하고 씹을수록 오도독거리는 재미에 빠지곤 했다. 닭치각보다는 닭동그랑땡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닭 뼈는 넣지 않지만 전의 반죽은 꼭 어머니 손을 거쳐야 그 맛이 제대로 나온다.

 

 

[재료 및 분량]

생닭 1마리(1.2kg), 청주 1큰술, 생강즙 1큰술, 두부 1/2모, 양파 3큰술, 연근 50g, 당근 1/2개, 양파 3큰술

양념 : 다진 파 3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소금 1/2큰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1/8작은술, 밀가루 1/2컵, 달걀 2개, 지지는 기름

 

[만드는 방법]

1. 생닭은 미리 청주와 생강즙을 넣어 손질한 후 굵은 뼈는 제거하고 곱게 다져준다. 파, 연근, 당근은 곱게 다진다.

2. 물기 뺀 두부를 잘 으깨고 다진 파, 다진 연근, 다진 당근을 넣고 양파와 다진 생닭을 넣어 섞는다.

3. 버무린 재료들에 분량의 양념으로 간을 한 후 갸름하게 3cm 크기로 달걀 모양을 만든다.

4. 달걀 모양으로 빚은 닭치각을 밀가루, 달걀 순으로 옷을 입혀 기름 두른 팬에 앞뒤로 지져내서 완성한다.

 

 

최재희 차림새 전통발효음식연구소 대표

- 청송음식경연대회 금상(2011)

- 한국음식관광박람회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시절음식 부문 금상, 세계조리사대회 떡 부문 금상(2012)

- 한국음식관광박람회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발효음식 부문 식품의약품안전처장상(2015)

- 전주 비빔밥축제 전국요리경연대회 발효음식 부문 금상(2016)

- 전통음식·발효음식 강사(2017)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