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음식과 사람 2019-1 Discovery]

 

돼지는 재복과 행운의 상징, 유럽에선 족발로 새해맞이, 한국에서 돼지는 재물신

 

▲ 이하 이미지 = PIXABAY

2019년은 축복이 가득하고 길운이 찾아온다는 황금돼지해다. 돼지는 재복(財福)과 행운의 상징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데, 우리는 왜 돼지에 대해 이런 환상을 품게 됐을까?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돼지 족발 사랑의 이면을 파헤쳐보자.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새해를 돼지 족발로 여는 유럽

유럽의 많은 나라에선 돼지 족발을 먹으며 새해를 시작한다. 독일도 그중 하나로 새해 음식으로 돼지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를 먹는데 슈바인스학세라는 족발이 빠지지 않는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야들야들해서 맛이 특별한 이 독일식 족발은 남부 독일 바바리아 지방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음식이다.

구이보다 찜이 좋다면 맥주에 푹 삶은 아이스바인을 먹어도 좋다. 학세가 구운 족발이라면 아이스바인은 족발 찜이니 지역에 따라 구워 먹고 삶아 먹고, 독일인의 족발 사랑은 한국인 못지않다.

▲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이탈리아도 새해에 족발을 먹는다. 잠포네라는 음식인데 새해에 먹어야 하는 이유가 족발이 행운의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해에 잠포네를 콩과 함께 먹는데, 콩은 동전을 상징하고 족발은 지갑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 1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사실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 못지않게 족발을 많이 먹는다. 나라마다 고유의 족발 요리가 있어 파리에선 문자 그대로 돼지 발이라는 뜻의 프랑스 족발, 피에 드 코숑이 유명하다. 소스를 곁들여 구운 돼지 족발 구이로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으로 파리지앵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스페인, 체코, 폴란드에도 족발 요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인들이 족발을 좋아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왜 하필 새해 벽두부터 돼지 족발을 먹을까? 

유럽에선 전통적으로 돼지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흔히 돼지는 먹성도 좋고 새끼도 많이 낳으니 풍요와 번영, 다산의 상징으로 삼았다. 게다가 먹이를 찾을 때 주둥이로 앞을 헤치며 나아가기 때문에 새해엔 중단 없는 전진만 있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닌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이상의 민속적 배경이 있다.

돼지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고대 게르만 민족의 토템 신앙에서 비롯된 풍속이 그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엔 돼지 토템이 널려 퍼져 있다, 단군신화에서 우리가 곰의 자손으로 나오는 것처럼 고대 게르만 민족 역시 자신들을 멧돼지의 자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생 멧돼지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고, 더불어 집돼지까지 부와 행운의 상징이 됐다는 것이다.

또한 고대 게르만 민족에게 돼지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독일은 숲이 울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옛날엔 아예 하늘이 보이지 않아 검은 색으로 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이 춥고 길며 날씨는 변덕스러운 척박한 지역이었다. 오죽하면 시저가 이끄는 로마 군대조차도 진격을 멈췄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언제나 식량이 부족했고, 가축도 사육기간이 짧은 돼지 이외엔 키우기 힘든 데다 그나마 먹일 사료가 없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종자로 삼을 종돈만 남겨놓고는 돼지를 몽땅 잡아 좋은 고기는 햄과 베이컨으로 만들고 부스러기는 소시지로 만들어 보관해야 했다.

그런 만큼 돼지와 소시지는 게르만 민족에게 생명줄과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돼지는 행운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래서 “돼지 한 마리 몰고 가세요”라는 독일어 “슈바인 하벤(Schwein haben!)”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로 통하고, 독일인들이 특별히 소시지와 족발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새해 음식으로 족발을 먹으며 한 해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민속적 배경이다.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 돼지 족발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우 나라마다 고유의 합격 기원 음식이 있는데 역사상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돼지 족발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 처음 시작돼 당나라 때 본격적으로 퍼졌다. 당나라 때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장원급제를 꿈꾸며 돼지 족발을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을 족발로 보는 이유다. 왜 하필 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소원했을까? 

일단은 족발을 먹는 풍습이 중국 말로 합격을 기원하는 말과 돼지 족발의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거지만, 근본적으로는 족발에 상서로운 기운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 나라에서 모두 족발을 즐겨 먹는다. 족발은 다른 부위와는 다른,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과 풍미가 있어 맛이 특별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족발을 좋아하는 만큼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옛날 사람들은 동물은 네 발로 걷기 때문에 모든 정기가 발바닥으로 몰린다고 믿었다. 돼지 역시 짧은 다리로 땅을 딛고 육중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으니 그만큼 튼튼하고 강해서 돼지 족발이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돼지는 행운을 상징하는 동물인 만큼 돼지의 정기가 모인 족발을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까지 품었다.

족발의 기운은 맹자(孟子)도 인정했는데, 맹자는 “물고기도 먹고 싶고, 웅장도 먹고 싶지만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웅장을 먹겠다”고 했을 정도다. 웅장(熊掌)은 옛날부터 산해진미로 꼽히던 곰발바닥 요리로 돼지 족발 맛이 웅장 맛과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맹자가 웅장을 먹겠다고 한 것은 당연히 식도락 때문이 아니라 목숨보다는 의로움을 지키겠다는 비유였는데, 족발을 유교의 핵심 가치인 의로움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옛날엔 좋은 음식이 있으면 나부터 먹는 게 아니라 하늘이나 조상님께 먼저 바치고 난 후에야 본인이 먹었는데, 족발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음식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371년, 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 국경을 침범했다. 놀란 제나라 왕이 조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키로 하고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예물로 준비했는데, 재상인 순우곤(淳于髡)이 이 모습을 보고는 고개가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다 그만 갓끈이 끊어졌다. 제왕이 웃는 이유를 묻자 순우곤이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아침 대궐로 오는 길에 어느 백성이 돼지 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려놓고 하늘에 소원을 비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풍년이 들어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게 해주시고, 아이들은 입신출세하게 해주시고, 우리 부부 건강하게 백 살까지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보기에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라고는 달랑 돼지 족발 하나뿐인데 바라는 것은 너무 많았던 것이 떠올라서 웃었습니다.”

순우곤의 말을 들은 제왕은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조나라에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자 조나라에서 정병 10만 명과 전차 1000대를 파견하니 소식을 들은 초나라 군사들이 놀라서 밤새 도망갔다. <사기>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초라한 음식이라는 뜻의 ‘돼지 족발과 한 잔 술(豚蹄盂酒)’에 관한 고사다.

무명의 백성은 도대체 왜 겨우 돼지 족발 하나를 제단에 차려놓고 소원을 빌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됐던 것일까? 혹시 자기 딴엔 족발이 동물의 정기가 깃든 음식이고 옛날부터 산해진미로 꼽혔으니 양은 비록 적더라도 그 귀중함에 하늘이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돼지머리와 돼지 저금통 풍속사

고사 상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소원을 비는 건 우리의 오랜 풍속이다. 심지어 돼지 코와 입에 돈까지 꽂아놓고 부자 되기를 빌면서 절을 하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미신은 왜 생겨났을까? 

그러고 보면 돼지와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돼지꿈을 꾸면 돈이 생기거나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저금을 할 때도 하필이면 돼지 저금통에다 동전을 넣는다. 왜 굳이 돼지일까? 돼지와 돈, 그리고 행운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단순한 미신일까 아니면 특별한 배경이 있을까?
고사와 돼지, 그리고 돼지와 꿈은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미신 내지는 돼지의 특성 때문에 생겨난 속설로 치부한다. 하지만 민속적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돼지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게 된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 역사책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우리 고대 신화나 설화에서 돼지는 특별한 동물이었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였다.

먼저,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은 하늘의 계시를 받은 돼지 덕분에 발견한 장소였다. 고구려 유리왕 21년(서기 3년)에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돼지를 쫓던 신하가 돌아와 보고했다. 도망간 돼지를 잡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지형이 깊고 험하며 땅이 곡식을 키우기에 알맞고 짐승과 물고기도 많아 수도를 옮긴다면 백성들에게 이롭고 전쟁이 일어나도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 적합해 걱정이 없을 만한 장소라는 것이다.

유리왕이 이 말을 듣고는 수도를 졸본성에서 이곳으로 옮겼는데 바로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다.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현이다.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은 하늘이 돼지를 통해 수도를 옮기라는 계시로 정해진 곳이다.

하늘이 임금을 정할 때도 돼지를 통해 그 뜻을 알렸다.<삼국사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 제10대 산상왕은 아들이 없어 하늘에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런데 즉위 12년 겨울, 제사에 쓰려던 돼지가 도망을 가 주통촌이라는 곳에서 잡혔는데 그곳에 절세미인이 있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여인의 집을 찾아가 합방을 했다. 이듬해 왕비가 주통촌 여자를 질투해 몰래 군사를 보내 죽이려 하니 여자가 아기를 가졌다고 하자 왕이 무척 기뻐했다. 이 때문에 왕비는 그 여자를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9월에 아들을 낳았는데 산상왕이 기뻐하며 왕자의 이름을 교체(郊彘)라고 지었다. 돼지라는 뜻이다. 고구려에선 이렇게 돼지를 신과 통하는 동물,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영물로 여겼다.

고려가 수도를 송도, 지금의 개성으로 정한 것도 돼지의 도움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들의 내력을 적은 <고려사> ‘고려세계’에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제건(作帝建)은 왕건의 할아버지다. 작제건이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해 용왕을 도와주고는 그 딸과 결혼한 후 7가지 보물인 칠보와 돼지를 얻어 돌아왔다. 예성강변에 집을 짓고 머물려고 하는데 용왕에게서 얻어온 돼지가 1년이 지나도록 집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작제건이 돼지에게 “만약 이 땅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면 네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겠다”고 말하자 돼지가 바로 길을 떠나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이르러 그곳에 드러누웠고 작제건은 그곳에 새 집을 지었다. 고려가 도읍지를 개성으로 정하게 된 내력인데, 고구려처럼 돼지가 신의 계시를 받아 수도를 정했다는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것도 돼지와 관련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여러 조짐이 나타났는데, 어떤 사람이 이성계를 찾아와 진귀한 책을 바치며 그 속에 이씨 성 가진 사람이 하늘에서 돼지를 타고 내려와 삼한의 영토를 바로잡을 것이라는 글이 실려 있음을 알려줬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나라 정사를 적은 역사책에선 이렇게 돼지가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메신저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 민속에서 돼지는 신과 인간을 잇는 소통의 매개체였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역할도 했다. 돼지 자체를 신의 화신으로 여겼다. 여기엔 먼 옛날부터 이어져온 고대의 돼지 토템 신앙, 도교와 불교, 그리고 무속신앙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천문과 기상을 하늘의 뜻으로 여겼던 옛날엔 밤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에 살고 있는 신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었으니 돼지를 바로 북두칠성에 사는 신으로 여겼다. 그것도 인간의 수명을 관장했을 뿐만 아니라 도량형의 기준인 자를 가지고 다니며 곡식과 재물을 관할하는 재물신이라고 생각했다. 돼지를 돈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이유다.

고사 상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절을 하는 이유, 그리고 돼지꿈을 꾸면 돈이 생기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 이유는 이런 토속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생겨난 풍속이다. 그리고 그 배경엔 곰을 숭배한 곰 토템이 단군신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고대에 돼지를 숭배했던 돼지 토템과 동양의 뿌리 깊은 북두칠성 신앙과 도교 신앙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윤덕노]  청보리미디어 대표 겸 음식문화평론가로 음식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 베이징특파원과 사회부장, 부국장을 지냈으며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음식이 상식이다> 등 음식문화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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