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9-1 Consulting]

 

 

누구를 위하여 음식을 만드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해보게 되는 자문이다. 일본 쓰지조리사전문학교 출신의 엘리트 셰프에게도 그 물음은 피해가지 않았다. 고깃집 ‘호재식당’ 김재훈 대표는 10년간 프랜차이즈 고깃집을 운영했다.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와 직원과 손님을 위해 최선은 아닌 듯했다. 안전함에서 벗어나 위험할 수도 있는 나만의 길을 가기로 했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Why]
잘나가는 고깃집 사장님이 웬 일본 유학?

청년 시절 외식업 분야에 종사했던 손위 누님의 영향을 받은 ‘호재식당’ 김재훈 대표는 원래 서양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서양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수준급 셰프다. 처음 고깃집을 차릴 때 유럽풍 카페형 고깃집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 현실과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2008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에 중저가형 고깃집 프랜차이즈 ㅅ식당 가맹점을 개점했다. 점포 위치도 좋았고 워낙 잘 알려진 브랜드여서 장사는 잘되는 편이었다.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내게 남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다 해놓은 밥상을 그저 차리기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 '호재식당' 김재훈 대표

4년 정도 지나자 나만의 색깔을 입힌 내 브랜드를 갖고 싶었다. 그러려면 실력을 갖춰야 했다. 고민 끝에 일본 유명 조리학교인 ‘쓰지(辻調)조리사전문학교’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주변에선 모두 반대했다. 잘나가는 식당을 놔두고 뜬금없이 유학길에 오르려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처음 고깃집을 시작했을 때 우려의 눈길로 지켜봤는데 차츰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아들 모습이 대견했던 부모님이다.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나 했는데 아들이 갑자기 유학을 가겠다니 당황스러웠던 것.

식당 운영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게 맡겼다. 3~4주에 한 번씩 주말에 입국해 중요 사항만 지시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곤 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면 ‘가치 있는 식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Problem]

내 영혼 깃든 나만의 식당 만들고 싶었으나…

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 대표는 ㅅ식당 대표의 자리로 복귀했다. 그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식당 여기저기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개성을 살린 식당에 대한 열망은 유학 이전보다 더 커졌다.

2016년 김 대표는 ㅅ식당과 별개로 새로운 고깃집 ‘감성돼지’를 ㅅ식당 근처에 차렸다. 그동안 누적됐던 ‘내 브랜드’에 대한 갈증을 풀어보고자 문을 연 것이다. 고깃집 두 곳을 오가며 부지런히 일했다. 

갈수록 ㅅ식당은 브랜드가 쇠퇴기에 접어든 느낌이 들었다. 내구 연한이 다 된 낡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과감하게 새로운 배로 갈아타야 할 시점임을 절감했다. 낡은 배는 점점 김 대표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타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매출도 차츰 저조해져갔다. 

김 대표는 손님들이 사랑하고 열광하는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식당을 꿈꿨다. 현실은 갈수록 그런 식당에서 멀어져갔다. 고객 중 외국인 비중이 너무 과다한 것도 문제였다. 그들은 식당과 음식의 가치를 인정하고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그저 체험하러 들른 1회성 고객들이었다. 2018년 8월 김 대표는 ㅅ식당을 접고 그 자리에 ‘감성돼지’ 2호점으로 재단장하려고 했다. 나름 자신의 손때가 묻은 ‘감성돼지’ 스타일로 개선해보고 싶었던 것. 또한 2호점을 개점하면서 ‘감성돼지’의 그동안 미흡했던 점들을 보완하는 계기로도 삼고자 했다. 

김 대표는 표현해보고 싶었던 요소들을 새 식당 여기저기에 반영하고자 했다. 나름 콘셉트를 잡고 이리저리 구상해봤다. 그러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싶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허세를 떨다가 추락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핵심 콘텐츠나 키워드의 설정도 보정이 필요했다. 혼자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닌 듯했다. 고민하다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 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Solution]
마늘 메뉴 특화한 예쁜 고깃집

김 기획자가 보기에 젊은 김 대표는 세련된 감각의 소유자였다.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로 그의 높은 감각을 새 점포에 입히고 싶었다.

일단 ㅅ식당을 ‘감성돼지’ 콘셉트로 전환하는 데 반대했다. 두 곳을 똑같은 콘셉트로 하면 손님이 겹치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 ㅅ식당과 두 번째 식당 ‘감성돼지’는 같은 상권 내에 위치하고 있다. 불과 걸어서 2분 거리에 똑같은 고깃집이 있으면 공간의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감성**’라는 비슷한 옥호를 사용하는 고깃집이 서울에 여럿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차별화가 쉽지 않고 ‘감성**’ 중 하나로 묻히기 쉽다. 

그곳 상권은 젊은 30대 여성 직장인이 많다. 이들은 대개 소득수준에 비해 소비수준이 상당히 높고 입맛도 까다로운 편이다. 이들은 맛, 가격,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따져서 합격점을 줄 만한 식당만 골라 출입한다. 같은 상권 내에 있는 ‘감성돼지’보다 입지는 더 좋은 편이다. 

우선 옥호부터 ‘호재식당’으로 정했다. 말 그대로 좋은 재료가 넘치는 식당이라는 뜻. 처음엔 여러 후보들을 놓고 몇 차례 토의를 벌였다. 김 대표 마음에 썩 와 닿는 후보작이 없었다. 사실 이름이라는 것이 처음엔 좀 생경하다가도 익숙해지는 측면이 있다. 

고객과 식당이 서로 소통하는 매체는 다양하다. 메뉴판은 아주 자연스럽게 손님과 주인을 연결해준다. 일본 명문 쓰지 출신 오너 셰프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점을 메뉴판에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놨다. 호재식당의 아이덴티티와 주인의 음식 철학을 고객에게 직접 소구하는 장치다. 이런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내벽에 붙이거나 P.O.P. 형식으로 설치해놓으면 요즘 고객들은 지루해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 홀의 내벽엔 깔끔한 음식 사진을 붙였다. 그 가운데 마늘 사진도 있다. 호재식당의 미각적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을 마늘로 설정한 것이다. 마늘을 풍부하게 사용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으로 자리매김하기로 했다. 마늘은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 

실제로 음식에 마늘이 많이 들어간다. 채소무침에 들어가는 마늘참기름장은 맛이 좋아 고객에게 인기가 높다. 고기와 함께 구워 먹는 마늘종베이컨말이, 밑반찬으로 사용하는 마늘장아찌가 있다.

좀 더 전략적인 마늘 메뉴도 내놨다. 근처에 소고기 전문점이 없어서 소고기 메뉴로 ‘마늘한우육회’를 개발했다. 고급스럽고 입맛 까다로운 손님이 요즘 즐겨 찾는 메뉴로 안착했다. 좀 더 공을 들인 것은 후식 메뉴인 갈릭로제솥밥. 고깃집은 후식 메뉴가 중요하다. 김치말이국수, 된장라면 등의 후식 메뉴 외에 호재식당만의 악센트 있는 메뉴를 내놓고 싶었다. 

갈릭로제솥밥은 로제소스와 마늘편을 솥밥에 얹어 밥을 짓는다. 지글지글거리는 로제소스가 시즐감과 온기를 팍팍 풍긴다. 마치 리조또 느낌을 내기도 해서 젊은 여성 고객에게 인기가 높다. 

고깃집의 점심 매출은 언제나 고민거리다.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점심 메뉴로 솥밥을 내놨다. 간판 전면에 솥밥을 내세우자 점심 매출이 늘었다. 간판만 보고도 손님이 들어왔다. 메뉴판엔 ‘집밥보다 더 맛있는 솥밥’으로 표기해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어필했다. 점심에 솥밥과 고기로 3회전 정도는 무난하다.

호재식당 주변 점포들은 다소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을 준다. 상권 내에 돼지고깃집도 많다. 파사드가 중요한 상권이다. 이런 공간에서 파사드는 깔끔하고 정리된 느낌으로 가야 군계일학처럼 눈에 잘 띈다. 다른 돼지고깃집들과 달리 콘셉트를 ‘깔끔하고 예쁜 고깃집’으로 잡았다. 흰 여백에 궁서체 검은 간판 글씨가 깨끗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준다. 시각적으로도 눈에 잘 띈다.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을 때 바라보는 내부 인테리어도 역시 같은 콘셉트다. 음식 차림새도 감각적인 멋을 냈다. 예를 들면 항정살은 장미 한 송이 형태로 꾸며 로즈마리를 얹어 멋을 완성했다. 고기와 함께 구워 먹는 버섯과 감자도 단면을 꽃이나 단풍잎(버섯)과 돼지(감자) 모양으로 썰어서 낸다. 여성 고객들의 감성과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차림새다. 

 

[After]
매출 착실히 상승하는 미래형 식당

김 기획자와 김 대표는 소소한 것부터 아이디어 제공, 메뉴 기획, 콘셉트 기획, 블로그 홍보까지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2018년 9월 3일 ㅅ식당이 호재식당으로 가오픈했다. 그동안 애써 장착했던 완성품이 방송작가들 눈에도 신선했던 모양이었다. SBS플러스 ‘외식하는 날’에서 촬영해 최근에 방영했다. 

사실 김 대표가 ㅅ식당 브랜드를 포기한 건 큰 모험이었다. 비록 한물간 느낌이 있지만 전국적인 지명도와 높은 브랜드 밸류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유명 브랜드를 버린다는 건 혼자의 힘으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제로(0)’에서 출발해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는 미지의 길로 혼자 가야 함을 뜻한다. 그래서 개점 초기엔 매출 하락 폭이 클 것이라고 속으로 각오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전과 매출액이 비슷한 수준이어서 크게 안도했다. 이후 매출액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연말연시 성수기 매출에다 지금의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2019년엔 적지 않은 매출 신장이 기대된다. 

새로운 콘셉트를 기획하고, 그것을 점포에 세팅해 점포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린다. 짧은 시간에 큰 시행착오 없이 안착한 것은 매출 향상 그 이상의 성과다. 

김 대표는 기회가 되면 외국에 진출해볼 생각도 있다. 지금도 제의가 들어온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거짓말 안 하는 음식’을 외국인들에게도 먹여보고 싶다. 한식은 7가지쯤의 다양한 주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서 단 5분 만에 먹어치우는 음식이다. 김 대표는 이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이해하고 그 음식의 가치, 음식에 밴 정신까지 음미할 줄 아는 진정한 음식문화가 정착되길 바라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일방적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음식이야말로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건강하게 해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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