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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단콩 두부 요리로 거듭난 청계산 ‘맷돌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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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2  10: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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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조선시대 명문가에서는 흉년에 배곯는 백성들을 위해 곡식을 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행여 그들이 창피해할세라 디딜방아 옆에 볏가마를 쌓아놓고 ‘배고픈 사람은 찧어 가시오’라는 글귀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이른바 조선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인데,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주변엔 먹거리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다.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 요리로 덕을 쌓는 청계산 청룡마을 ‘맷돌로만’ 조선식 대표도 그렇다. 그의 외식업 28년엔 이웃하는 ‘식구(食口)’들이 늘 있었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파주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 요리,

어르신들께 최고 인기죠”

폐업 위기 딛고 업종 변경 후 탄생한 국산 두부요리랍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청계산으로 진입하려면 굴다리 앞 사거리에서 으레 만나는 커다란 나무를 통과해야 한다. 이 나무를 오른편에 두고 왼쪽으로 난 동네는 청계산 등반의 마지막 코스로 유명하다.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지금도 여러 음식점이 줄지어 영업 중이라 지하철역으로 가기 전 막걸리 한잔 걸치는 재미와 낭만이 쏠쏠한 곳이다.

그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면 넓고 깨끗하게 정비된 골목길 중간에서 ‘맷돌로만’이라는 국산 두부 요리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의 끝자락에서 뜻밖에 고즈넉한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곳은 척 봐도 새로 지은 듯한 말끔한 외관을 자랑한다. 단골손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조선식(66) 대표가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가 그 유명한 청계산 청룡마을이에요. 여러모로 예전과 많이 달라졌죠? 요즘엔 워낙 경기가 어렵다 보니 식당들이 많이 빠졌어요. 그 힘들던 IMF 외환위기도 모르고 지나간 식당촌인데 말이에요. 우리 가게도 여기서 오랫동안 닭·오리볶음탕과 백숙, 김치두루치기, 곤드레밥 같은 걸 만들어 팔았어요. 올여름 너무 힘들어서 이제 식당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위기는 곧 기회라고, 우연히 귀인을 만나 국산 두부 요리로 업종을 변경했어요. 식당 문을 닫고 두 달 동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는데, 오픈 6개월 만에 매출도 꽤 오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싶어요.”

프런트에 쌓인 파주 장단콩 자루가 맷돌로만의 자랑이 된 매출원이다. 바로 옆 입구엔 통유리로 된 두부공장이 있어서 오며 가며 손님들은 커다란 점보 맷돌로 콩을 가는 모습을 직접 구경할 수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식사 손님보다는 모두부를 사러 오는 손님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어제에 이어 또 두부 두 모를 사간다는 80대 할아버지처럼 일부러 두부만 사러 오는 손님도 많단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이 국산 두부 요리로 지역 어르신들께 즐거운 식사를 대접하는 맷돌로만의 평범한 한낮 일상이었다.

 

“국산콩 알아보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명품두부 인증받았어요”

콩과 간수만 넣은 옛날 방식의 건강한 두부라 더 좋아들 하세요

 

청룡마을은 행정구역상 서초구 내곡동에 속하며 13개 자연마을 중 하나다. 조 대표는 이 가게 터에 있던 집으로 시집을 왔단다. 지금은 리모델링해서 위층을 살림집으로 쓰고 있으니 벌써 40년 넘는 세월을 나무처럼 버텨온 동네 터줏대감이다. 이웃이나 동네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을 정도. 그 덕에 청계산 상가번영회장을 몇 번이나 역임했고, 마을 축제나 잔치엔 빠지지 않고 출연금을 내거나 식사, 물품 등을 지원한다.

   

“장사가 잘될 때는 30개 넘는 식당 사장님들이 전부 모여 동네 청소도 하고 지하철역 주변 환경미화도 하고 그랬어요.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서로 음식을 내놓고 야외에서 마을 잔치도 벌이고요. 그런데 요즘엔 회원사가 반으로 줄었어요. 저라도 더 힘을 내서 주변을 살피는 수밖에요.”

청룡마을은 예전부터 주거지역이라기보다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상업지역이었다. 그러다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노인 인구도 많아졌다. 아파트단지 내 노인정은 조 대표가 수시로 들러 어르신들과 만나는 접점이다.

   

“솔선수범하는 성격이라서 어르신들 모시는 자리를 일부러 이것저것 만들어요. 커피 떨어지면 갖다 드리고, 한 달에 한 번 노인정에서 원하는 날짜에 맞춰 어르신들을 여기로 모셔요. 보통 30명쯤 오시는데 한상차림으로 해서 메뉴는 주로 두부보쌈, 두부전, 두부완자, 두부전골이에요.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로 골랐죠. 한번 드셔보시면 ‘진짜 국산 콩으로 만든 것 맞네’ 하세요.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만 먹다 입이 호강한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맷돌로만의 두부는 파주 장단콩에 간수만 넣어 만들기 때문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 아들 이재훈(38) 대표가 매일 새벽 하루 치 두부를 직접 만든다. 원재료인 콩값이 비싸긴 해도 손님들은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인지 아닌지 단번에 알아본다고.

 

 

 

“공짜 손님은 귀인, 잘 모시면 더 큰 복으로 돌아와요”

새털같이 가볍고 오래할 수 있는 소소한 나눔일 뿐이에요

 

“두부는 아들이 잘하지만, 김치는 제가 잘해요(웃음). 이래 봬도 서울시 지정 김치명인이거든요. 근처에 주말농장이 있어서 거기에서 기른 신선한 채소를 뜯어다 반찬을 만드니 더 맛있어요. 그래서 순두부와 겉절이 무료 코너는 아주 인기예요. 하루에 순두부 몇 통 분량이 나가요. 보통 식사 전에 두서너 번씩 가져다 드실 정도로 맛있다고들 하세요.”

그동안 맷돌로만의 맛있는 두부와 겉절이김치를 손님이나 어르신들만 맛본 건 아니다. 지역을 위해 수고하는 내곡동 통장들을 모셔서 조촐한 식사 대접도 한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처님오신날엔 청계사에 두부 50모를 갖다 주기도 했다.

아들 이재훈 대표는 어머니의 그런 오지랖(?) 넓은 봉사활동과 합체된 지 오래다. 그는 올여름 리모델링 후 맷돌로만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정식 대표가 됐다.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어머니 곁을 지켜온 든든한 아들이자 외식업주다.

“워낙 어릴 때부터 옆에서 봐와선지 이젠 어르신들 오시면 저도 마음이 편해요. 공짜 티켓 들고 오는 손님들에게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신 적이 없고 어떤 손님이 와도 반겨주시고요. 사실 지금 손님 대부분은 어머니 단골손님들이세요(웃음). 어머니께서 지난 28년간 쌓아오신 끈끈한 유대관계를 제가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저도 어머니 반만큼은 할 생각입니다.”

청룡마을의 관록 있는 워킹우먼인 조 대표의 이웃 사랑은 이번 겨울에 더 빛을 발하게 됐다. “얼마 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고구마 캐기 행사를 했어요. 날씨가 쌀쌀해지니 저절로 따끈한 게 생각나지 않겠어요? 우리 순두부 세 통을 통째로 갖다 드렸더니 다들 너무나 좋아하셨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에 간장 얹어 드시는 모습을 보면 항상 느껴요. 제가 누군가에게 줄 때는, 사실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다는 걸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뜻한 인정이야말로 여러 가지를 무력하게 해주는 고마운 연말 보너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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