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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에서 솟아오르는 희망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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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8  0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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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Essay

editor   윤동혁

원주엔 큰 시장이 두 군데 있다. 중앙시장은 상설 재래장터이고, 풍물시장에선 5일장이 선다. 거리도 서로 가까워서 풍물시장이 쉬더라도 허탕칠 일이 없다. 요즘 부쩍 두 시장을 찾는 일이 잦은데 마음이 허전하고 삶의 활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현역 은퇴 후에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시장 어딘가에 내 가게를 차리기 위해서다. 


20년 전 횡성 5일장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구들은 나의 이런 시도를 ‘한때의 불장난’이라고 폄하하면서 “심심하면 뒷짐 지고 나와 막걸리나 마시자”고 말한다. 젓갈을 팔다 이젠 버섯으로 품목을 바꾼 태수 씨 부부는 초등학생 아들을 혼자 해외 배낭여행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나의 시장 진출을 염려한다. 고맙다. 그런데 어쩌랴, 이건 20년도 더 전부터 내가 품고 살아온 단 한 가지 꿈이니까 말이다. 


풍물장터(원주 2·7장)는 장날에만 시끌벅쩍하지 나머지 4일은 소개령 내린 거리처럼 적막에 휩싸인다. 책 보고 번역하고 어쩌다 사소한 영상 알바라도 해가면 장터 친구들과의 유흥비는 충당하겠다 싶어서 풍물장터에 가게를 여는 게 좋겠다고 결심을 굳혔었는데….


중앙시장도 바깥에서 물건을 파는 난전 스타일인데 난전을 거느리는 상가 건물 2층이 자꾸 발길을 끈다. 실제로 올라가서 이 가게 저 점포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간 데 또 가고, 내가 어디로 들어왔더라 입·출구를 못 찾는다. 그래서 2층 상가 전체를 ‘미로 시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향수 만들기’, ‘비누 체험’ 등 예쁜 공방들이 줄줄이 붙어 있다. 여기는 내가 발붙일 곳이 아니다. 나는 노인 냄새 물씬한 곳에 가게를 열 거야.


‘미로 상가’가 가게 터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그냥 포기하기엔 아련한 그 무언가가 있어서 시내 나갈 일이 있으면 그냥 관광객의 발걸음으로 시나브로 들르곤 했다. 그렇게 여러 번 갔는데도 처음 보는 식당이 있었다. 잔치국수와 꼬마김밥. 소박하고 단출한 메뉴가 맘에 들어 일단 기웃거려보았다. 가게 왼편 벽에 쓰인 저 문장들! ‘나눔가게’, ‘이곳의 판매 금액은 전액 기부합니다’, ‘이곳의 모든 상품은 기증받은 것입니다.’

   

떠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밀어야 열리는 미닫이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인삼 씨 효소와 자주고구마 분말 등이 진열돼 있었는데 더 안쪽 깊숙한 곳엔 여성 의류와 가방, 구두, 심지어는 1700년대 유럽에서 결투용으로 쓰던 권총까지… 마치 ‘아름다운 가게’라도 들어선 듯했다. 


그러나 이곳은 식당이다. 꼬마김밥이 5종류였는데 한 줄에 1000원. 5000원어치는 시켜야 면이 설 것 같았다. 꼬마김밥 다섯 줄을 시키자 건장한 주방장이 내 생전 식당에서 처음 받아보는, 신선하고 감동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어르신, 제 생각엔 꼬마김밥 두 줄에다 국수(잔치국수, 4000원)를 드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벽에는 ‘조미료 사용 안 합니다’라는 글도 써놓았고 쇠고기는 호주산이지만 쌀, 국수, 김치, 오징어 모두 국산이고 사장님은 제주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국수와 김밥은 참 잘 어울렸다. 시골 잔칫집에서나 맛볼 만한 국수…. 김밥 두 줄까지 6000원만 내기가 좀 그래서 인삼 씨 효소 한 병(1만5000원)을 샀다. 또 찾아가고 싶은 그 식당은 ‘맹이네 가게’이고, 나는 내 가게 터의 위치를 계속 망설이게 됐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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