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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부추·달래·냉이·씀바귀…우리 몸에 생기 불어넣는 봄나물 열전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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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3  09: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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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3 P.42-45 Discovery]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헤집고 나와 움을 틔운 봄나물. 그 끈질긴 생명력을 섭취하는 건 우리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다름없다.

봄나물이 왜 얼마나 좋은지,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photo shutterstock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채는 건 우리네 입맛이다. 새콤달콤한 달래무침이나 달래간장으로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때, 겨우내 텁텁하고 무기력했던 입안이 쌉싸래한 씀바귀나물 한 접시로 활력을 되찾고 상큼한 기운마저 느낄 때, 된장 풀어 끓인 냉잇국 한 수저 떠먹으며 입속 가득 냉이 향이 퍼질 때 우리는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산채는 일렀으니 봄나물 캐어 먹세 /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농가월령가’ 2월령 구절이다. 달래,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소루쟁이 등 봄나물이 얼마나 몸에 좋으면 갖가지 약초 종류를 적어놓은 옛날 의학서인 본초(本草)를 참고해 나물이 아닌 약재를 캐오겠다고 했을까.

굳이 옛 문헌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또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봄나물이 좋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해서 예전에 할머니들은 겨울을 넘긴 나물 뿌리는 인삼보다도 명약이라고 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헤집고 나와 움을 틔운 것이 봄나물이니 그 끈질긴 생명력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봄나물이 얼마나 좋은지,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알아본다.

 

   

흔히들 대표 봄나물로 달래, 냉이, 씀바귀를 꼽지만 이들이 나오기 전에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는 미나리다. 미나리무침이나 미나리볶음, 겨울이 제철인 굴과 함께 식초로 버무린 미나리생채, 제육이나 편육에 미나리를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 삼겹살과 함께여도 좋고 그대로 먹어도 맛있는 미나리쌈, 미나리전, 한겨울 매운탕이나 전골에 데쳐 먹는 미나리에 이르기까지 향긋한 냄새와 입안에서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겨울의 묵은 입맛을 떨쳐내고 새 기운을 북돋아주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엔 음력으로 새로운 해가 열리는 설날과 봄이 시작되는 입춘을 전후해 미나리를 먹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고 나아가 동양의 공통된 풍속이었다.

예컨대 지금은 딤섬으로 더 유명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전통 입춘 요리가 스프링 롤(Spring Roll), 춘권이다. 봄 춘(春)자에 말 권(捲)자를 써서 봄을 둘둘 말아서 먹는다는 의미에서 춘권이고 이를 영어로 직역한 것이 스프링 롤인데, 말아서 먹었던 봄의 내용물 중 하나가 미나리였다. 일본의 옛 새봄맞이 풍속도 비슷하다. 일본은 입춘 격인 음력 1월 7일이면 미나리를 포함해 일곱 가지 채소로 끓인 나나쿠사가유라는 칠초죽(七草粥)을 먹으며 일 년 동안의 무병과 무탈을 기원했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동국세시기>에 입춘이면 미나리, 파, 마늘, 달래, 부추 등 다섯 가지 채소, 즉 오신채(五辛菜)를 먹으며 새봄을 축하하고 건강을 빌었다고 나오니 한·중·일 세 나라의 새봄맞이 음식에 미나리가 빠지지 않는다.

   

입춘 무렵은 절기상으로만 봄이지 아직 한겨울이다. 이때 특별히 미나리를 먹으며 건강을 챙겼던 배경은 시기적으로 미나리가 달래, 냉이보다 먼저 나오는 봄채소이기도 했지만 겨우내 저장음식만 먹다 신선한 채소를 먹으니 영양가를 떠나 그만큼 몸에 좋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옛사람들은 미나리에 해독작용을 비롯해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복어탕을 끓일 때 미나리가 빠지지 않는 경우가 그런 예다. 맛도 맛이지만 미나리가 복어 독을 중화시켜준다고 믿은 것이다. <동의보감>에 처방이 나온다. 옛날엔 복어 먹다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다”며 고민했을 정도였는데 <동의보감>엔 “복어를 미나리와 같이 끓이면 독이 없어진다”고 적혀 있다. 미나리로 해독을 시도했던 것인데, 다만 민간요법이라고 덧붙여 놓으면서 의학적 근거가 없음은 분명히 밝혔다.

어쨌거나 요즘도 미나리가 미세먼지 배출에 좋다며 먹는 사람도 있으니 옛 믿음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새봄에 먹는 미나리가 생기를 불어넣는 활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먹을 수 있기에 특별히 봄채소라는 느낌은 없지만 옛날 절기상으로 봄이 왔다는 입춘 무렵에 빠지지 않고 먹었던 채소가 부추다.

   

6세기 무렵 중국 문헌인 <형초세시기>에 입춘에 부추를 비롯한 오신채를 먹는데 그 이유를 몸 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새해 첫날인 설날이나 입춘은 모두 봄이 시작되는 날로 양의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날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아직 음기가 강하게 남아 있으니 양기가 강한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먹음으로써 양기가 솟는 걸 돕고 부족한 양기를 보완하기도 했던 것인데 그 중심에 부추가 있었다.

부추를 다른 말로 기양초(起陽草)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양기를 일으키는 풀이라는 뜻이다. 원래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말로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양기를 북돋아 강장 효과가 뛰어나기에 성적 능력이 위축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부추는 더운 성질을 지녀 인체의 열을 돋워주며 혈액순환에 좋다고 했으니 양기를 일으키는 것과 통하는 것 같다. 명나라 때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부추는 잎이 뜨겁고 뿌리는 따뜻해 피의 순환을 좋게 한다고 했다. 조금 더 부연하면, 당나라 때 의학서 <본초습유>엔 채소 중에서도 부추가 가장 따뜻하고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에 항상 먹는다고 적혀 있다. 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 <황제내경>에도 봄에 부추를 먹으면 따뜻한 기운이 몰려 몸속의 찬 기운을 몰아내기 때문에 양기가 순환하는 것을 돕는다고 했다.

부추는 일반 사람에겐 양기를 보충해주는 채소이지만 수행하는 수도승한테는 성적 충동을 일으켜 청정심을 사라지게 만드는 위험한 채소다. 이 때문에 불교에서는 부추를 수행할 때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 식품으로 여겼다. 그만큼 부추가 생명력이 강했기에 양기의 상징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싶다. 속설에 부추는 게으른 사람이 가꾸는 채소라고 했다. 부추를 욕하는 게 아니라 한번 심어놓으면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부추의 생명력을 강조한 말이다.

 

   

달래는 냉이, 씀바귀와 함께 동요에도 나오는 봄을 대표하는 채소다. 겨울 끝 무렵에 나오는 달래는 그 향긋한 내음만으로도 군침이 절로 돌게 한다. 된장국에 넣고 끓여도 맛있고, 양념해서 무쳐도 맛있다. 달래간장에 비비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달래는 옛날부터 먹으면 힘이 솟는 음식이라고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불교에서 먹지 못하게 금하는 오신채에 달래도 포함돼 있다. 힘이 넘치게 만들어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왔을 때 먹고 힘내던 채소였기 때문인지 옛사람들은 달래의 효능에 남다른 믿음을 가졌다.

2세기 말 중국 후한시대 명의로 소문났던 화타라는 의사가 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수술해 살려냈다는 바로 그 의사다. 옛 문헌엔 화타의 기적 같은 치료술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보이는데 그중에 달래도 포함돼 있다.

어느 날 화타가 길을 가다 소화불량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백약을 써도 효과가 없다며 가족이 화타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통사정했다. 화타가 들판에 나가 달래를 캐오라고 시킨 후 즙을 내서 환자에게 두 되를 먹였다. 그러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아 환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삼국지연의>가 아닌 역사책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니 소설적 창작이 아닌 역사 기록이다.

단군신화엔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로 변했다고 나오는데, 따지고 보면 이때 곰이 먹은 것도 마늘이 아니라 달래였을 가능성이 높다. 마늘은 원산지가 지중해 일대다. 중국 문헌 <박물지>에 기원전 2세기 때 한나라 사람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왔다고 나온다. 기껏해야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이다. 그러니 단군을 낳은 웅녀가 곰이었던 시절, 마늘은 한반도에서 먹을 수 있는 작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왜 단군신화에선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고 했을까 싶은데 한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단군신화를 기록한 옛 문헌에선 곰이 먹은 채소를 산(蒜)이라고 적었다. 달래 혹은 마늘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한자로 마늘은 대산(大蒜), 달래는 소산(小蒜)이라고 쓴다. 둘 다 같은 마늘과 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곰이 먹은 것은 신화시대엔 없었던 외래 작물 마늘이 아니라 토종 식물 달래였을 것이다.

달래는 이렇듯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동물도 인간으로 변신시키는 신비한 봄채소였으니 봄철에 나른해질 때, 그리고 기운이 달린다 싶을 때 기운을 살리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봄나물은 모두 몸에 이롭지만 옛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냉이를 으뜸으로 꼽았다. 냉이는 우리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봄철 반찬이었다. 먹는 방법도 다양해 살짝 데친 후 오이, 양파를 비롯한 다른 채소와 초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초무침도 맛있고, 된장 풀어 끓인 냉잇국과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 냉이김치, 냉이장아찌, 냉이부침개 또한 별미다. 양념 맛이 아닌 순수한 냉이 향기를 즐기기엔 그중에서도 냉잇국이 으뜸이 아닐까 싶은데, 그 때문인지 옛사람들도 냉잇국을 특별히 여겼다.

냉잇국의 별명이 ‘백세국’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냉이는 먹을 수 있고, 100세를 넘은 노인도 능히 먹고 장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냉이는 순한 식물이기에 노인이 먹어도 아무 부담이 없다는 것인데, 먹으면 부담이 되지 않으니 몸에 좋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냉이는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만든다면서, 송나라 때 채원정이 냉이를 먹고 학문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며 냉이의 효능을 평가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채원정은 공자와 맹자의 뒤를 잇는 유교의 성현 주자가 존경했던 인물로 주자학의 대가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채원정은 서산(西山)이라는 곳에 들어가 글을 읽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 냉이를 캐먹고 지냈지만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학문을 연마한 채원정이 주자의 소문을 듣고는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청한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본 주자가 그의 학문적 깊이에 놀라며 “이런 사람을 제자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제자가 아닌 학문적 동지로 대했다.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은 백이숙제는 굶어 죽었지만 서산에서 냉이를 먹으며 공부한 채원정은 학문의 경지를 이뤘으니 냉이가 보약에 버금간다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동의보감>엔 냉이가 눈을 밝게 한다고 나오는데 혹시 채원정이 학문을 성취한 배경도 냉이를 먹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속담에 입에 쓴 것은 몸에 좋다고 했는데 씀바귀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부터 이른 봄 씀바귀를 먹으면 그해 여름엔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올여름 지긋지긋한 폭염에 시달리기 싫다면 미리 씀바귀를 먹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씀바귀는 춘곤증을 막아 봄철 정신을 맑게 한다고도 했으니 사실 여부는 직접 먹어보고 확인할 수밖에 없겠는데 옛 속설에 모두 근거는 있다.

<동의보감>에 씀바귀는 맛이 쓰며 성질이 차서 열기를 없앤다고 했으니 진짜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켜 잠을 덜 자게 한다니 춘곤증 예방에도 좋다. 이 때문에 예부터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함께 봄철 춘곤증을 막아주는 대표적인 나물로 꼽혔다.

씀바귀는 쌉싸래한 맛 때문에 먹는다. 쓴맛이 되레 입맛을 당기게 하는 핵심 요소인데 어렸을 때는 이 쓴맛의 진가를 잘 모른다. 세상살이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후에야 인생이 무엇인지, 참맛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시경> ‘곡풍(谷風)’에 씀바귀의 참맛을 노래한 여인이 있다. 낭군에게서 버림받고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했나요. 내게는 달콤하기가 냉이와 같네요”라고 읊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버림받은 아픔에 비하면 씀바귀의 쌉싸래한 맛쯤이야 오히려 달콤하다는 비유다. 봄에 씀바귀를 먹어보자. 맛이 쓴지, 단지에 따라 심리 상태도 알아볼 수 있다.

 

 

윤덕노

청보리미디어 대표 겸 음식문화평론가로 음식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 베이징특파원과 사회부장, 부국장을 지냈으며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음식이 상식이다> 등 음식문화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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