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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품격’, 그 기본은 ‘신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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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28  13: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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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3 P.42-45 Food  Essay]

   

우리 나이로 89세에 세상 떠나신 아버지께서는 늘 걸어 다니셨다. 7층 아파트에 사실 땐 마치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처럼 계단을 밟아 오르내리셨다. 악천후로 외출이 어려우면 오랜 시간 거실을 빙빙 도셨다.

“내가 다 어지러우니 그만 돌아요.”

어머니가 짜증을 부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손쉽고, 돈 안 들고, 효과적인 건강법이 걷기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아버지는 제때에 소식(小食)을 하셨다. 육류보다는 나물을 좋아하셨다.

음식에 대한 철학은 소식 말고 딱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신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생 근검절약하셨으나 음식이 조금만 때를 넘기면 가차 없이 버렸다.

맛집과 맛있는 요리가 시대정신이 됐다. 나는 솔직히 음식에서 맛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현상을 떨떠름하게 바라본다. 성형 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같은 것이리라. 나이 들수록 아버지를 더 닮아간다. 술안주로도 두부와 콩나물이 더 끌린다. 메밀전병이나 녹두부침개는 막걸리와 환상적인 조합이다.

전통시장은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딱 맞는 장소다. ‘연금생활자의 품격’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고액의 연금을 받는 이들도 풍물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쪼가리 의자에 걸터앉아 배추전이며 순대 따위가 먹고 싶어지니까 나의 품격이 손상될 일도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깔끔한 분들은 전통시장에 와서도 ‘먹음직하긴 해도 비위생적이지 않겠는가’, ‘신선한 재료를 위생적으로 조리하는 것일까’를 꺼림칙해하며 구경만 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원주 남부시장은 이 지역 최초의 주상복합시설로 과거엔 중산층의 로망이었다. 넓은 지하주차장에다 1, 2층은 통째로 시장이고 그 위에 7층 아파트가 올라선 형태인데, 지금은 아파트도 많이 낡았고 전통시장 역시 얼마간 쇠락했다.

그러나 음식을 파는 장소는 여전히 인기가 많아서 좁은 식당들이 그런대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나의 첫 번째 단골집은 ‘추억 만들기’라는 상호를 내걸고 있어서 처음엔 무슨 찻집인 줄 알았다. 그곳에서 처음 맛본 음식은 비지장이었고 두 번째는 부추전이었는데, 나는 이 부추전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장에 5000원이라 쓰여 있는 부추전을 주문하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손엔 부추 한 단이 들려 있었다. 아, 마침 재료가 떨어졌구나. 그런데 다음에 가서 부추전을 또 시켰을 때도 아주머니는 잠깐 나갔다가 부추를 들고 돌아왔다. 한번은 생선구이 정식(좀 비싸서 망설이긴 했지만)을 먹기로 했다. 1만5000원에 생선 세 가지가 나온다니 오랜만에 호강 좀 해보자, 그런 심산이었는데 아주머니는 또 밖으로 나가더니 금세 생선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의 식당은 음식을 만들 때마다 지척에 있는 채소가게나 생선가게에 가서 필요한 만큼만 재료를 사들고 오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냉장고와 냉동고가 따로 필요 없다는 이야기이고, 알맞은 양만 사 오기 때문에 뭐 남고 말고 할 것도 없으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인가.

우리처럼 신선한 음식 내놓는 식당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의 자랑이 맑고 싱싱하게 들렸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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