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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속이는 최고의 방법, 쌈밥 한민족 입맛에 담긴 쌈 사랑 DNA
음식과사람  |  food79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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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4  16: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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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06 P.42-45 Discovery]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음식문화 중 하나가 쌈 문화다. 따지고 보면 김치나 비빔밥보다도 더 한국적이다. 그만큼 역사가 길며 예부터 대대로 내려오면서 폭넓게 사랑받아온 우리 특유의 음식문화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우리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꼽으라면 김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다.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비빔밥도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쌈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쌈 문화는 김치나 비빔밥보다도 더 한국적이다. 역사가 그만큼 깊기 때문인데, 쌈이야말로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오면서 폭넓게 사랑받아온 우리 특유의 음식문화이니 옛 문헌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상님 중에 쌈을 사랑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조선 후기의 다산 정약용도 그중 하나다. 그는 기발한 방법으로 쌈밥 예찬론을 펼쳤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서울에 두고 온 두 아들에게 교훈의 편지를 남겼는데, 사람이 사는 동안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성실함으로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면서 살면서 제일 나쁜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니 양심에 꺼리는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다만 한 가지, 자기의 입맛만큼은 속여도 된다며 입맛을 속일 수 있는 구체적인 비법까지 전했다.

무엇을 먹든 맛있다고 느끼는 건 순간일 뿐이니 좋은 음식 먹겠다고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이 어떤 음식이든 달게 먹으면 된다면서 쌈밥을 예로 들었다. 꽁보리밥도 상추에 싸서 맛있게 먹으면 비싸고 귀한 요리를 먹는 것 못지않게 입이 즐거우니 입을 속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인데, 뒤집어 말하면 쌈밥이 그만큼 맛있다는 소리다.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교훈적이어서 참고할 만할뿐더러 재미도 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가져라. 화장실(변소)을 비싸게 채우기 위해 정력과 지혜를 다해가며 애쓸 필요가 없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고 난 후엔 모두 소화돼 똑같은 배설물이 될 뿐이니 고급스러운 배설물을 남기려고 지나치게 미식에 탐닉하지 말라는 뜻이다.

쌈밥이나 비싼 요리나 맛있게 먹으면 입에는 다 똑같은 산해진미라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 “쌈밥이 그렇게 맛있었던가?” 하며 다산이 남긴 교훈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다. 하지만 쌈밥이 산해진미에 버금간다고 할 만큼 맛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고, 대다수 한국인이 쌈밥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싱싱한 채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으로 싸 먹는다. 밥도 채소에 담아 쌈으로 먹고 삼겹살도, 꽃등심도 그리고 생선회까지 음식 재료가 무엇이 됐건 일단 쌈으로 싸서 먹는다. 값비싼 쇠고기 특정 부위나 고가의 생선회 같은 경우도 재료 자체의 식감과 맛을 즐기려면 쌈 대신 그냥 먹는 게 더 좋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마저도 쌈으로 먹는다.

채소를 채소로 싸서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음식 재료를 모두 쌈으로 싸서 먹을 정도니 실제 우리가 싸 먹는 쌈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가장 흔하게는 상추쌈을 비롯해 찐 호박잎에 배춧잎, 깻잎, 곰취 같은 산나물에다 미나리, 쑥갓과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는다. 비단 채소뿐만이 아니다.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로도 쌈을 싸서 먹는다. 김은 당연하니 말할 것도 없고 미역과 다시마로도 쌈을 싸 먹는다. 그래서 한국인이 먹는 쌈 재료는 그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쌈을 먹다 보니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음식문화 중 하나가 바로 쌈 문화다. 우리가 얼마나 쌈을 좋아하는 민족인지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우리 민족은 채소 중에서 잎사귀가 조금 크다 싶으면 모조리 쌈으로 싸 먹는다고 했다.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것도 쌈을 싸 먹기 위한 것이라며 쌈을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으로 꼽았다.

근대의 육당 최남선 역시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상식>에서 쌈을 우리나라의 특이한 밥 먹는 법이라고 정의했다. 싱싱한 채소를 먹으며 맛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서양의 샐러드와 비슷하고, 밥을 싸서 먹는 것은 일본의 김초밥과 비교할 수 있다고 했으니 동서양 쌈 문화의 특징을 뛰어넘는 복합과 융합의 맛이 우리 쌈 문화의 특징임을 강조했다.

다양한 재료를 쌈으로 싸서 먹는 문화는 세상 곳곳에 많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표적으로 당장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외국 음식 중에선 월남 쌈이 있다.

월남 쌈은 라이스페이퍼(Rice Paper)라고 하는 쌀로 만든 전병에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을 싸서 먹으니 이것도 일종의 쌈이다. 밀전병에다 고기나 채소와 같은 갖가지 재료를 싸서 말아 먹거나 튀겨서 먹는 춘권이라고도 하는 스프링롤(Spring Roll) 역시 쌈의 한 종류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면 옥수수가루로 만든 전병에 역시 다양한 채소나 고기를 얹어 먹는 멕시코의 토르티야(Tortilla) 역시 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쌈이 있지만 한국의 쌈은 다른 나라 쌈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외국 쌈은 많은 경우 쌀 또는 밀로 빚은 전병에 채소나 고기를 싸 먹는 형식인 반면에 우리나라 쌈은 채소에 밥이나 채소, 고기를 싸 먹는다. 싸 먹는다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쌈을 싸는 주체와 객체가 바뀌었다. 우리의 쌈 문화를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로 꼽는 이유 중 하나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각별하게 쌈을 좋아하는 한국인인데, 그런 만큼 우리의 쌈 문화는 뿌리가 깊다. 언제부터 쌈을 즐겨 먹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우리나라에서 채소 잎에다 밥을 싸서 먹는 풍속은 아주 먼 옛날부터 비롯됐다”고 적었다.

 

   

그러고 보니 한민족은 옛날부터 채소에 밥을 싸서 먹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외국에까지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원나라 때 시인 양윤부가 고려의 상추에 대한 시를 썼는데 스스로 주석을 달아놓기를 고려 사람들은 익히지 않은 채소(生菜), 즉 상추에다 밥을 싸서 먹는다고 적었다며 우리나라 쌈 문화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했다.

참고로 양윤부는 기행문인 <난경잡영>이라는 글에 “고려의 맛 좋은 상추를 이야기하노라”라는 시 구절을 남겼다. 양윤부는 원나라 혜종 때 사람으로 1354년에 사망했는데,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을 조달하고 또 맛을 보는 벼슬을 지냈던 인물이다. 난경은 상도(上都)라고도 하는데 북경 이외의 또 다른 원나라 수도로 몽고족의 고향에 있었던 도시다. 원나라 때 끌려간 고려 사람들이 그곳에 살면서 상추로 쌈을 싸 먹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도 한때 상추쌈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익은 양윤부의 시를 인용하며 상추쌈은 고려 때 유행해 원나라에까지 전해진 음식 풍속으로 약 400년이 지난 조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감탄했던 것인데, 이익이 살았던 숙종 때로부터 2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니 쌈 문화의 뿌리가 최소한 650년은 넘을 정도로 꽤나 역사가 깊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쌈 사랑은 극진했는데, 오죽하면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 먹는다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밥을 얻어먹는 상황에서도 슬금슬금 눈치 보며 상추에 밥을 싸 먹었으니 쌈밥이라면 체면도 벗어던졌을 정도다. 귀하신 몸도 예외가 아니었다. 밭일 하던 농부가 즉석에서 푸성귀 따다 고추장, 된장 척척 발라 볼이 미어지도록 한입 가득 쌈 싸 먹는 모습이야 예나 지금이나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심지어 왕실 어른인 대왕대비마저도 쌈밥의 유혹만큼은 참기 힘들어했던 모양이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의 수랏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대왕대비 아니라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상추쌈을 먹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승정원일기>에다 수랏상에 상추쌈을 올렸다는 기록까지 남겼을까 싶지만, 사실 여기엔 사연이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이 임금의 진지를 짓던 수라간의 실수로 상추에 담뱃잎을 섞어서 올렸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였다. 대왕대비 역시 그만큼 상추쌈을 좋아했기에 벌어진 사달이다.

위로는 대왕대비부터 아래로는 농민까지 우리 민족의 쌈 사랑은 옛 문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선 초에 유방선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세종대왕도 뛰어난 학식을 인정해 토론을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은퇴한 그에게 집현전 학자를 보내 자문했을 정도였던 대학자다. 유방선이 남긴 문집 이름이 <태재집>인데 여기에도 쌈밥을 예찬하는 시가 한 수 실려 있다.

“병 고치러 산속으로 들어가니(避病投山寺) / 산중에는 일마다 특이하다(山中事事奇) / 채소로 밥을 싸 먹으니 부드럽고(野蔬包飯軟) / 고사리로 국 끓이니 살이 절로 찌네(溪蕨入羹肥).”

병을 고치러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특별한 약초를 캐 먹은 것도 아니고 산에서 자라는 산나물을 뜯어다 밥을 싸서 먹고, 고사리를 캐어 국을 끓여 먹었더니 저절로 살이 쪄서 병이 치유됐으니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신기하다고 읊은 것이다. 산나물에 싸 먹은 쌈밥이 결국 약초 못지않았다는 소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쌈에 밥 싸서 먹는 것을 좋아할까?
뻔한 소리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반찬 없이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로 쌈밥을 꼽았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식욕이 떨어질 무렵 어육진미(魚肉珍味), 그러니까 맛있는 고기나 생선 반찬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름 동안 맛과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이 바로 상추쌈이라고 했다.

쌈이야말로 마음대로 고기반찬을 먹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봄여름 최고의 반찬이라는 것인데, 상추쌈이 뭐 그리 대단해서 고기를 대신할 정도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는 시점을 과거로 돌리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린 요즘이야 신선한 채소 정도가 별것 아니겠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양념이 제대로 된 김치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배추김치나 깍두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기껏해야 짠지라고 하는 소금에 절인 무 정도의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옛날에 많이 먹었던 부추김치나 파김치도 날씨가 더워질 무렵이면 그나마 떨어질 때이니 상추와 같은 신선한 채소나 곰취 등의 산나물에 된장 발라 먹으면 없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꿀맛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 초기 유방선은 산나물에 밥을 싸서 먹으니 밥이 목으로 넘어갈 때 부드럽다고 한 것이고, 정약용 역시 거친 잡곡밥을 쌈으로 싸서 달게 먹으니 이것이야말로 입을 속이는 방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쌈밥이 맛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조선시대 쌈밥은 야외로 놀러 가서 먹는 도시락이었고, 또 채소 잎의 향기가 밥에 스며들어 독특한 맛을 내는 별미 밥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밥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지혜가 담긴 밥그릇이었으니 쌈밥의 용도가 정말 다양했다.

옛날 문헌을 보면 선비들이 놀러 갈 때는 주로 채소에 밥을 싸서 지금의 도시락처럼 가지고 가거나 현지에서 즉석으로 산나물을 뜯어다 별도로 반찬을 장만하지 않고 밥을 싸 먹었다. 예컨대 낚시나 천렵 갈 때면 연잎으로 밥을 싸 가져가거나 혹은 고기를 잡는 곳에서 바로 상추나 나물을 뜯어 밥을 싸 먹었다.

조선 후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연잎에 밥 싸두고 / 반찬이랑 장만 마라”라는 구절이 보이고, 조선 중기 문인 이현보도 <어부가>에서 “청하(靑荷)에 밥을 싸고 / 녹류(綠柳)에 고기 끼워 / 노적화총에 / 배 매어두고”라고 노래했다.

청하(靑荷)는 푸른 연잎이니 연잎이 바로 도시락 역할을 했다. 반찬은 장만하지 말라고 했으니 버들가지에 끼워놓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회를 쳐서 연잎 도시락에 싸온 밥을 먹었다.

게다가 연잎에 밥을 싸서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했으니 연잎, 나아가 연잎을 포함한 다양한 쌈밥의 용도는 다목적이었다. 예컨대 명나라 때 한의학서 <본초강목>에선 연잎은 더위를 물리치고 피를 깨끗하게 하고 잘 돌도록 만든다고 했으니 산나물로 싼 쌈밥을 약초로 여겼던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쌈밥은 평범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어 맛있는 별미가 되는 데다 자녀에게 교훈까지 전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다고 여겼으니 역사 깊은 한국의 쌈 문화,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역시 입맛을 속이기엔 최고다.

윤덕노 청보리미디어 대표 겸 음식문화평론가로 음식의 역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 베이징특파원과 사회부장, 부국장을 지냈으며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음식이 상식이다> 등 음식문화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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