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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소스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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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3  11: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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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10 P.84-87 Discovery]

   

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⑫

마라 소스의 뿌리를 찾아서…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photo shutterstock

 

 

   

얼얼하고 매운 중국 ‘마라’ 요리가 유행이다. 요즘 거리에선 열풍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마라 음식점 찾기가 어렵지 않다. 심지어 ‘하루 1마라 실천’에서부터 ‘혈중 마라 농도’, 역세권이 아니라 마라탕 전문점이 밀집해 있다는 뜻의 ‘마세권’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마라 위크’, ‘마라 빌런’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마라 빌런은 하루 한 번 마라 음식을 반드시 먹을 정도로 마라에 빠진 괴짜(Villain)라는 뜻, 마라 위크는 마라 음식 먹는 주 내지는 일주일에 한 번은 마라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마라 열풍이 왜 이렇게 뜨거울까? 표면적 이유는 간단하다. 맵고 자극적이니 그만큼 맛있기 때문일 것이고, 혀가 얼얼하게 매우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기 때문일 텐데, 얼얼한 향신료에 중독성이 있어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얼핏 생각해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적인 추론이겠는데 마라 열풍, 그 뿌리를 찾아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마라 향신료의 역사와 중국사에서 향신료가 갖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고, 마라의 유행 배경에서 중국 사회구조와 경제 발전의 변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그런 걸 우리가 알아서 뭐하나 싶겠지만 그 속에서 중국 풍속과 역사를 이해할 수 있고, 외식업 경영의 관점에서라면 중국 음식의 유행 추이를 유추해볼 수도 있다.

마라 요리로 돌아가서, 마라는 얼얼하고 맵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비된다는 마(痲)자와 매울 랄(辣) 자를 써서 중국어 발음으로 ‘마라’다. 중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좋아하는 지역도 있다. 후난(湖南)과 쓰촨(四川) 지역은 매운 음식을 아주 잘 먹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중국인은 음식이 매울까 봐 두려워하지만 후난 사람은 매운 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촨 사람은 음식이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怕辣 不怕辣 怕不辣)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중국어로 맵다와 두렵다는 단어를 놓고 하는 일종의 말장난인데, 어쨌든 지역별 중국인 입맛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중국에서 언제부터 그렇게 맵고 얼얼한 마라 요리가 퍼졌을까? 유행의 시작은 대략 2000년을 전후해서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맵고 얼얼한 충칭훠궈(重慶火鍋) 전문점이 이 무렵 베이징에 생겼다. 이전 베이징엔 순한 맛 육수에 양고기와 소고기를 데쳐 먹는 훠궈가 주류였다.

조금 늦게 베이징에 마라룽샤(痲辣龍蝦)가 등장했다. 마라 향신료로 요리한 가재볶음이다. 2001년 혹은 2002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 마라룽샤 음식점이 생겼는데 충칭훠궈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요리였다면 마라룽샤는 서민층을 상대로 퍼졌던 음식이다.

충칭훠궈나 마라룽샤나 마라탕 등의 마라 요리는 중국에서도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쓰촨과 후난에서 생겨난 요리다. 그런데 왜 하필 2000년을 전후로 수도인 베이징에서 퍼지기 시작했을까?

여러 배경이 있는데 사실 2000년대부터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도 마라 요리가 퍼진 적이 있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널리 먹는 마파두부다. 한국 사람 기준으로 마파두부와 마라탕, 마라샹궈, 충칭훠궈는 달라도 한참 다른 음식이지만 중국 현지 기준으로는 조리법의 뿌리가 같다. 한국 마파두부는 대부분 매운맛만 있지만 중국 마파두부는 매울 뿐 아니라 얼얼한 맛이 함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마라 요리는 마파두부의 맵고 얼얼한 맛이 좀 더 강해졌을 뿐이다.

 

   

음식의 역사, 음식 인문학은 이렇게 두부 자르듯 흑백으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중국의 향신료, 마라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역사인데 마라의 뿌리는 어떻게 될까?

얼얼하고 매운 마라 요리 중에서 일단 고추가 만들어내는 매운맛의 뿌리는 그다지 깊지 않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를 일반적으로 명말청초로 보니까 임진왜란 전후라는 점에서 우리나라나 시기가 비슷하다.

고추를 현대 중국어로는 매운 산초라는 뜻에서 라자오(辣椒)라고 부른다. 옛날엔 번초(蕃椒)라는 말을 사용했다. 번(蕃)은 외국에서 전해졌다는 뜻의 단어인데, 명나라 말 이시진이 쓴 의학서 <본초강목>엔 고추인 번초에 대한 기록이 없다. <본초강목>이 발간된 해가 임진왜란 막바지인 1596년으로 고추가 널리 퍼지지 않아 누락된 것인지, 아니면 약용이나 식용이 아니어서 기재를 하지 않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이것이 어쨌든 중국에 고추가 상당히 늦게 전해진 것으로 보는 근거다.

   

물론 <본초강목> 이전 문헌에 고추인 번초 기록이 나오긴 한다. 1591년의 <준생팔잔>에 번초라는 글자가 보인다. <준생팔 잔>은 <본초강목>과 달리 의학서나 농학서가 아니라 관상용 식물을 기록한 책이다. 또 역시 명나라 때 발간된 <초화보>에도 번초 기록이 나오는데 ‘번초는 꽃이 하얗고, 맛은 매우며 색이 붉은데 보기가 좋다’고 적혀 있다. 반면 청나라 문헌인 <화경>에 비로소 ‘번초는 무리를 지어 자라며 꽃이 하얗고 늦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머리를 아래로 해 거꾸로 매달린다. 초록색이었다가 나중에 주홍색으로 변하는데 맛은 맵고 겨울에 후추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기록으로 유추해보면 고추가 처음엔 관상용 화초로 이용됐다가 나중에야 식용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맵다는 뜻의 라와 달리 얼얼하면서 맵다는 의미의 마(痲)는 그 뿌리가 깊다. 얼얼한 맛은 산초의 한 종류인 화자오(花椒)에서 나오는 맛인데, 중국에서 화자오로 추정되는 향신료가 처음 보이는 문헌은 기원전 7세기 무렵의 <시경>이다. 주나라 노래에 ‘산초 향기 널리 풍기니 평안하고 장수할 수 있겠다(有椒其馨 胡考之寧)’ 하는 구절이 보인다.

이 노래에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주나라 노래인 만큼 최소 기원전 7세기 이전에 산초를 향신료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주나라에서도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후추를 향신료이면서 동시에 약으로 여겼던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도 산초를 향신료 겸 장수의 약, 불로초로 여겼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경> 이외에 산초는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말기 굴원의 <이소>에도 보이고, <신농본초경주>라는 농업서엔 산초가 기원전 3세기 때인 진(秦)나라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중국에선 이 무렵 향신료인 산초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진나라 때는 물론 한나라 무렵에도 중국엔 아직 후추가 퍼지지 않았을 때다. 아직 후추 산지인 동남아와의 교역로가 열리기 전이었다. 서역과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연 한무제(漢武帝)가 남쪽으로 진출한 곳은 남월(南越)까지였다. <사기>의 ‘서남이(西南夷)열전’엔 건원 6년인 기원전 135년 군사를 일으켜 서남부의 동월(東越)을 정벌한 후 당몽 장군을 남월에 사신으로 보내 출병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때 남월의 왕이 당몽을 접대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번우성에서 나오는 구장(枸醬)이라는 향신료였다.

번우성은 지금의 광둥지역이니 후추 산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한나라 이전 중국의 향신료는 쓰촨 등지에서 주로 나오는 산초 종류로 마파두부처럼 맵고 얼얼한 음식에 많이 쓰는 화자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옛날 중국에선 화자오를 불로초처럼 여겼다. 산초 종류인 화자오를 비롯한 향신료에 묘한 신비감마저 품었는데 대표적인 증거가 초방(椒房)이다. 초방은 한나라 때 황후가 거처하는 궁전인 미앙궁에 있던 방으로 산초 가루를 흙에 섞어 벽을 발랐기에 생긴 이름이다. 이렇게 하면 은은한 향기가 날 뿐만 아니라 산초의 기운을 받아 방이 따뜻해지는 온실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산초나무엔 열매가 많이 열리기 때문인지 혹은 산초의 향기가 리비도(Libido)를 자극하기 때문인지 초방에 머물면 자손을 많이 낳는다고 믿었다.

   

향신료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이 옛날 새해가 되면 무병장수를 빌며 마셨던 초주(椒酒)다. 도소주라고도 하는데, 향신료로 담근 술로 한나라 무렵엔 산초를 술에 담가 마셨고, 후추가 전해진 당나라 전후로는 술에 후추를 담가 마셨다. 도소주(屠蘇酒)라는 이름 자체가 한자로 잡을 도(屠), 되살아날 소(蘇) 자를 쓴 것처럼 나쁜 기운을 잡아내고 새롭게 기운을 살린다는 뜻으로 정월 초하루에 이 술을 마시면 일 년 내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설날 산초나 후추를 넣어 만든 초주를 마시는 풍속은 중국은 물론이고 근대 이전 우리나라에도 이어져 내려왔는데 향신료가 질병을 물리친다는 주술적 믿음 말고 근본적인 이유는 동양은 한나라 이전, 서양은 로마 이전에 향신료가 워낙 값이 비쌌기에 약으로나 사용했던 것에서 생겨난 믿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추가 됐건 산초가 됐건, 혹은 산초의 한 종류인 화자오가 됐건 향신료를 구하기 힘들다 보니 향신료는 조미료라기보다는 약으로 쓰였다. 옛날 의사들한테 향신료는 건강을 지켜주는 신비한 약재였고, 도인들한테는 늙지 않고 신선이 되는 불로장생의 선약이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는 도교가 유행했던 시기다. 그런 만큼 도사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후추나 산초, 화자오 등의 향신료를 먹으면 양생(養生)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향신료를 태운 연기를 마시며 호흡을 하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했고, 방중술에서도 향신료는 더할 나위 없는 강장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중국에서 마라 음식이 양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나 중국인들이 마라 요리의 맛에 빠지게 된 이면엔 강력하고 자극적인 맛의 유혹과 중독성에도 이유가 있지만 그 속에는 중국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후추와 화자오 같은 향신료에 대한 원초적 욕망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생에 대한 욕심, 원초적 욕망은 고대의 환상일 뿐이고 마라 소스가 위장에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현대인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마라 요리가 유행하는 데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중국 사회구조와 경제 발전의 변화가 큰 요인이 됐다고 보는데 유행의 배경을 살펴보기에 앞서 최근 퍼지고 있는 마라 요리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옛날엔 귀했던 후추와 화자오가 대중화되면서 근대 이후엔 대부분 쓰촨과 후난의 서민음식, 시장 음식에 뿌리를 두고 발달했다.

예컨대 많이 알려진 마파두부는 청나라 말 시장에서 두부 팔던 곰보 아줌마의 음식에서 비롯된 요리다. 충칭훠궈도 노동자 음식에서 나왔다. 여러 유래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쓰촨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 그중에서도 배를 밧줄에 묶어 강물을 거슬러 끌고 올라가던 선부의 음식이 뿌리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이었으니 제대로 된 고기를 사 먹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내다버리다시피 하는 소 창자와 천엽, 오리 내장 등 부스러기 고기를 긁어모아 잠시 잠깐 쉬는 틈에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는 서둘러 배를 끌러 갔던 것이 충칭훠궈인 홍탕의 시작이다. 육수가 새빨갛고 얼얼한 홍탕이 된 것도 쓰촨의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매워야 오히려 시원하면서 더위를 이길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강한 향신료를 쓰지 않으면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 재료가 형편없었던 것도 홍탕이 생겨난 이유다.

마라탕은 충칭훠궈와 비슷하니 설명을 생략하고 마라룽샤 역시 근대에 생긴 시장 음식이다. 룽샤(龍蝦)는 원래 바닷가재지만 마라룽샤의 재료는 가재일 뿐이다. 그런데 이 가재가 중국 토종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미국산 가재를 1920년대 후반 후난 지방에서 많이 먹는 황소개구리의 사료로 들여온 것이 널리 퍼졌다. 가재가 넘쳐나자 음식 재료로 쓰기 시작해 마라 소스로 요리한 것이 마라룽샤다.

그러면 맵고 얼얼한 요리가 어떻게 중국에 퍼지게 됐을까? 물론 여러 복잡한 배경이 있다. 일단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마라 음식에 익숙한 쓰촨·후난 출신이 많았다는 점도 있고, 경제 발전으로 외식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크다. 하지만 개혁·개방으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시에 특유의 사회주의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한 것도 마라 요리가 유행하게 된 하나의 배경이다. 여행의 자유, 거주 이동의 자유가 허용돼 허가증 없이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마라 음식은 물론 양꼬치, 우육면 등 여러 종류의 지역 특산 음식이 수도 베이징으로,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마라 요리 유행의 배경엔 이런 시대적 변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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