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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집 공기밥과 대미식당 녹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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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9  17: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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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10 P.83 Food Essay]

   

서울 강남에 내가 아는 일식집이 있다. 가격 대비 내용 충실하고 주인이 친절하다. 이 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으려 하니까 ‘요즘 같은 시절에 일식집은 좀 그렇지 않은가…’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 사람이, 우리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에다 메이드 인 코리아 간장·고추장 찍어 먹는 식당인데도 꺼림칙하단 말인가.

원주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정통’ 일식집에서 따끈한 청주를 주문했다.

“우리 식당에선 일본 술 안 팔아요.”

“누가 일본 술 달라고 했나. 백화수복 없어요?”

“아, 정종은 있어요.”

백화수복을 ‘정종’이라고 했다. 정종(正宗)은 ‘마사무네’라는 일본 사케의 한 종류다. ‘진로’가 소주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한국에서 제조된 ‘쌀술’을 따끈하게 데워서 생선회를 즐겼는데 ‘한국 청주’도 그 근원은 일본이니 마셔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일본 식당의 ‘죽기 살기 정신’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나가노국립공원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 외진 곳의 자그마한 소바집 아주머니(사장님인지 종업원인지 알 길 없지만)를 잊을 수 없다. 옛 국도를 따라 도쿄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시간은 점심때를 훌쩍 넘겼는데 다행스럽게 그 식당이 나타났다.

카메라맨 장성호는 구운 청어 한 마리가 올라와 있는 니싱 소바를 맛있게 먹어치우고는 “아, 이 국물에다 밥을 좀 말아 먹었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었다. 여주인(종업원인지 모르는)에게 “밥 한 공기 주세요” 하니까 죄지은 사람처럼 몸을 꼬면서 “밥은 점심때 다 떨어졌는걸요. 조금 기다리셔도 괜찮다면 제가 집에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하더니 150m쯤 떨어져 있는 마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으며, 우리 일행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녀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밥 한 공기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보름쯤 전, 우리 동네에 아주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후배와 함께 막걸리나 한잔하기로 했는데 그날따라 녹두전이 유난히 당기는 것이었다. 골목에 막 들어서자 이게 웬 떡, 아니 녹두전이냐.

‘50년 맛집 대미’라는 식당 간판에 ‘녹두전’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시다가 우리 쪽으로 눈길을 확 쏟아부었다.

“사장님이…?”

맨 앞자리 할머니가 “나요” 하시기에 “녹두전 되나요?” 간판에 써놓기는 하되 안 하는 곳도 더러 있는지라 그렇게 물었다. 할머니 사장(?)께서는 아주 짧은 시간 주춤하더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밖으로 뛰어나가셨다. 그리고는 일본의 소바집 아주머니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란색 양동이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녹두 재료가 밖에 있었던가 보다. 그런데 금세 주방에서 다른 할머니(이분이 진짜 사장님)가 나오시더니, 미안하지만 녹두전이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오늘 녹두 재료가 다 떨어졌는데 주방 사정을 잘 아는 동네 친구가 얼른 집에 가서 자기 먹으려고 담가놓았던 녹두를 들고 온 것이란다. 하지만 물에 너무 오래 불려놓아서 이런 재료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말씀이었다.

보름쯤 후 다시 ‘50년 전통 대미집’을 찾아갔다. 프라이팬에 돼지비계가 한 주먹 먼저 올라가더니 들기름과 콩기름을 반반씩 섞은 윤활유가 좍 깔리고 드디어 손바닥만 하게 녹두 반죽을 올렸다. 고사리, 양파, 숙주나물, 대파,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는 녹두전. 78세, 이원자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감동의 녹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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