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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집 숨은 비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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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7  13: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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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사람 2019.11 P.68-72 Real Interview]

   

고기를 근으로만 떼어 팔던 시절이 있었다. 돼지고기 한 근, 소고기 반 근은 웬만한 가정집의 한 끼 식사에 쓸 재료로 요긴했다. 유통망이 발달하지 않아 정육점 주인이 새벽부터 지방의 축산물시장을 돌며 경매해오던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 들여온 돼지 두 마리, 소 한 마리를 부위별로 새김질해주던 사람도 사라지고, 더 이상 새벽 축산물시장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축산 인프라는 확장됐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 속엔 길모퉁이 정육점의 잔상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2019년의 ‘한일정육식당’을 찾았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한강을 지척에 둔 서울 용산구 보광동 길모퉁이의 작은 중고 책방이 정육점으로 탈바꿈한 건 1986년의 일이다. 근처에 양조장들이 몇 개 있었고, 바로 앞 2층짜리 건물이 제일 컸을 정도로 주변은 휑했다. 그래도 당시엔 동네에서 유일한 정육점이라 날마다 고기를 끊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지방의 축산물시장을 돌아다니며 소와 돼지를 경매해오고, 어머니는 정육점을 지키며 동네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정구봉(54) 대표가 외식업에 뛰어든 건 어머니 김춘자(79) 씨가 그때까지 운영하던 정육점을 폐업하고 그 자리에 식당을 열면서다.

   

“당시엔 고기를 저울에 달아서 한 근, 반 근 이런 식으로만 팔았는데 지금처럼 유통업체가 있어서 고기를 부위별로 갖고 오는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경매해오신 소고기, 돼지고기는 새김질하는 사람이 와서 삼겹살, 목살, 등심, 토시살 이런 식으로 정리해주고 갔죠. 두툼한 칼집에 자기만 쓰는 전용 칼 몇 개를 넣고 다녔는데 요즘엔 사라진 직업이에요. 정육 유통 방식이 이렇다 보니 고기를 빨리 소진하는 게 장기적으로 선도 유지에 좋을 거라 생각해 2003년도에 한일정육식당으로 간판을 달고 생고기 전문점으로 새로 출발했습니다.”

자동차영업소장에서 고깃집 사장으로 변신한 그는 한 가지 철칙을 세웠다. 정육점으로 유명해졌으니 최고의 정육만 팔자고. 장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바로 옆 가게를 얻어 한일갈비를 오픈하고 6개월간 LA갈비를 팔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눈 파는 일 없이 오로지 생고기만 판다. 메뉴를 가공하면 아무래도 고기 본연의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육점 할 때부터 드나들던 손님들은 이미 생고기의 퀄리티를 알기에 굳이 양념갈비 같은 메뉴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거래처를 바꾼 적이 없기에 고기 맛이 변하지 않고 늘 신선하다는 걸 손님들도 알았다. 매주 두 번 배송되는 생고기들은 한 번도 얼리지 않은 상태로 즉석에서 썰어서 낸다.

“저희 식당에서는 단 1인분이라도 절대 미리 썰어놓은 걸 드리지 않아요. 주문과 동시에 주방에서 저와 어머니, 바쁠 땐 아내까지 칼질을 해요. 어머니는 내년에 여든이신데 오랜 내공이 있으셔서 저보다 칼질을 잘하시죠. 대충 써는 것 같으셔도 결이 다 살아 있거든요.”

여기선 특이하게도 메인 메뉴가 나가기 전에 애피타이저로 양념한 돼지주물럭 한 움큼을 무료로 준다. 주문한 고기를 주방에서 써는 동안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공짜로 주는 고기지만 200g에 1만 원에 팔기도 하는 최상급이다.

“애피타이저가 제일 맛있어야 하는 건 장사의 요령이에요. 손님들은 먹으면서 메인 메뉴에 대한 기대감을 갖거든요. 이게 맛이 없으면 메인 메뉴까지 망치게 돼요.”

 

   

한일정육식당의 메뉴는 크게 한우와 한돈이다. 한우는 전체가 원플러스 등급이며 등심, 치마, 토시, 제비추리, 차돌 등을 팔고 이걸 한데 모아 한우소모둠으로 팔기도 한다. 500g짜리 모둠 한 판에 8만4000원. 1등급 암퇘지 한돈은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 가브리살 등이며 500g 모둠 한 판에 3만7000원으로 싼 편이다. 한돈과 한우는 7 대 3의 비율로 팔린다. 베스트 메뉴는 역시 삼겹살이고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모든 생고기들은 육안으로 보기만 해도 찰진 탱탱함이 느껴질 정도인데 노릇노릇 구워 멸치젓에 찍어 한 점 먹어보면 그 두툼하고 쫄깃한 식감에 너무도 행복해진다. 누구든 화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여기 한일정육식당에 데려오자. 먹으면서 소통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그 어떤 곳보다 원재료에 치중하지만 이곳의 사이드 메뉴는 전국에서 배워갈 정도로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정 대표가 초창기부터 열과 성을 다해 개발한 결과다.

“오픈하고 처음 몇 년간은 힘들었거든요. 하루 매출이 10만 원일 때도 많았어요. 그때 몇날며칠을 새 메뉴를 개발하려고 밤을 새곤 했어요. 지금은 여느 식당에도 흔한 청국장이라든가 콩나물파무침, 묵은지볶음김치 같은 것도 주방장과 제가 궁리해서 만든 거예요. 묵은지 사다 볶아서 이 맛을 내려고 엄청 버렸죠. 그냥 먹어도 새콤하니 맛있고 숯판에 올려 먹으면 더 맛있어서 손님들이 아주 좋아하세요. 예전에 부산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이 묵은지볶음김치만 상품화하자고 한 적도 있어요.”

   

요즘엔 갱시기죽이라 하여 김치, 콩나물, 북어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것도 인기다. 경상도 음식인데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리필해서 먹는 손님들이 많다. 이 밖에도 기본 찬으로 명태식해, 씨앗젓갈 같은 흔치 않은 음식과 갈치속젓, 멸치젓, 양배추쌈, 열무김치 등이 나간다. 두부와 버섯, 감자 등은 고기와 함께 구워 먹으면 된다. 시원하고 아삭한 열무김치는 어머니 김 씨의 솜씨다. 부인 홍선경(51) 씨는 시어머니의 손맛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금도 열무김치, 갓김치 같은 건 다 어머니가 담그세요. 고기는 남편보다 더 잘 써시고요. 저희 부부는 거들 뿐이죠(웃음). 그 옛날 정육점 시절부터 어머니는 뭐든 척척 다 해오셨어요. 이윤을 너무 남기지 말고 좋은 고기를 속이지 않고 팔면 언젠간 되지 않겠냐고 하셨죠. 여기가 일반적인 정육식당처럼 손님이 직접 고기를 고른 후에 구워 먹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정직한 생고기로 이만큼 궤도에 오른 것 같아요.”

음식의 맛을 특정하는 요소엔 원재료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일정육식당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정 대표가 십수 년 전 사들인 숯판이다.

“지금도 더러 쓰는 식당이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숯을 강하게 압착해서 만든 건데 숯의 온갖 효능은 물론이고 숯이 기름을 빨아들여서 타지 않으니까 연기도 덜 나요. 저희 가게에 닥트 없는 것 보세요. 가끔 문을 열어서 환기시키기만 하면 되요. 확실히 숯판에 구우면 고기가 더 맛있어지는 건 맞아요. 그건 손님들이 더 잘 아시고요.”

숯판의 단점은 잘 깨진다는 것. 그동안 주방에서 깨먹은 숯판만 수백 개라고. 과격한 설거지도 안 되고, 가끔 불 위에 올려 구워줘야 오래 쓸 수 있으며, 주기적으로 재코팅해줘야 하니 관리비도 든다. 그래도 숯판을 고집하는 건 손님들이 좋아해서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한일갈비까지 포함하면 테이블만 31개나 되는 한일정육식당이지만 직원은 부부 포함 6명. 규모에 비해 교대하는 일손이 많지 않은 데도 운영이 되는 건 간이 화물용 승강기인 덤웨이터 덕분이다.

“이 건물 구조가 특이해서 주방은 지하에 만들었어요. 거기서 고기를 썰고 음식도 만들면서 되도록이면 손님들 식사하시는 홀에는 안 올라가요. 대신 덤웨이터가 1층과 2층으로 더 빨리 음식을 날라주죠.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손님과 주인 모두에게 합리적인 방식이에요. 주인은 음식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고 손님은 주인 신경 쓰지 않고 식사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저는 이미 고기 써는 사장님으로 소문 나 있어요(웃음).”

   

골목이 시작되는 도로가에 식당이 있지만 인도보다 높은 1층 내부는 사방이 트여 있어서 시야가 좋다. 개성 있는 벽면 일러스트와 원통형 테이블이 분위기를 돋우어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어린 시절 엄마의 심부름으로 고기 끊으러 왔던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찾아오고, 출가한 보광동 토박이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하러 함께 오곤 한다. 비 오는 날 오후면 가끔 혼자 찾아와 매번 똑같은 창가 자리에서 고기 구워 먹고 가는 손님도 있단다. 가게 앞 도로 저만치가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커플들도 많고 새벽 시간엔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으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 개그우먼은 단골이던 시절에 주변에 소문을 많이 내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이렇듯 광고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여태껏 입소문으로만 장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손님들 덕분이다.

   

“어머니도 늘 얘기하시는 건데 저희가 손님 복이 많은가 봐요. 하나같이 다 매너가 좋으세요. 단골손님들은 또 어머니와 친분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고요. 정육점 시절부터 동네에서 어머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저희 식당은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계절을 거의 타지 않는데, 아마 주차장이 있어서 오기 편하니까 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에서 건물 뒤에 있는 넓은 공터 주차장은 한일정육식당 손님만의 특권이었다.

 

   

삼겹살은 5kg짜리 한 팩에 비계가 1.5kg은 나온다고 한다. 주방에서 삼겹살을 써는 정 대표를 보며 파무침을 만들고 있던 어머니 김 씨가 얘기했다.

“고기를 저렇게 손으로 썰어야지 기계로 썰면 맛이 덜해요. 근데 세월이 바뀌니 돼지비계도 이제 쓸모가 없어졌네요. 예전에는 짜장면집에서 와서 비계 나오기 무섭게 걷어갔는데 요즘엔 워낙에 좋은 기름들이 많이 나오니까. 나야 몇 시간 안 하고 퇴근하지만 첫째 아들 내외랑 같이 일하니까 든든하니 참 좋아요. 일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볼 생각이에요.”

정 대표는 33년 전 정육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일손을 놓지 않는 어머니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정육에 대한 건 물론이고 손님을 응대하는 법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음식점 사장이 꼭 지켜야 할 것은, 남 얘기 하지 말고 손님들 얘기는 더더욱 들으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 말에 갈수록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더욱이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족이 답인 것 같아요. 바쁠 땐 서로 부딪치기만 해도 짜증이 나고 말도 곱게 안 나가지만 그런 것들이 앙금을 남기지는 않잖아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까. 대신 가족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해요. 제때 월급 주고 기분 좋으라고 가끔 보너스도 주고요. 어머니께서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저희 부부와 같이해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세 사람이 홀에서 나란히 찍은 사진은 고스란히 가족사진이 됐다. 어머니 김춘자 씨는 활짝 미소 지으며 “내가 제일 예쁘게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어머니가 조금만 더 같이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들 내외의 바람이 전해졌기 때문일 게다.

 

 



음식과사람 food79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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