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 논설위원
(전)기자협회장

올해 환갑을 맞은 여보가 ‘김장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결혼한 지 37년 만에 처음 제 손으로 김장을 담근 것이다. ‘아내의 손맛’도 집안분위기도 ‘일단 성공’이다.

돌아가신 두 어머님 맛만은 못하지만 그만하면 충분하다. 김장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 두 딸과 사위들, 그리고 막내 동생 내외와 두 자식들을 초대해 집에서 삶은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속, 햇김치, 배추 속 알갱이 등을 싸서 막걸리 안주로 축하잔치를 했다. 김장 덕에 두 딸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흐뭇했다.

몇 달 전부터 집사람이 “올해는 집에서 김장을 해볼까?”라고 나 들으라고 하는지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응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여보는 결혼 후 지금까지 자기 혼자 김장을 한 적이 없다. 결혼 후 2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살 때는 당연했고 이후엔 처가에서 김장할 때 가서 손을 보태고 항상 가져다 먹었다.

그래서 ‘한번 해본 소리겠지’ 했다. 그런데 고춧가루 타령을 하고 인터넷에서 ‘절인 김치’를 ‘맛있는 김장하는 법’ 등을 자주 찾아보는 걸로 봐서 일을 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2년 전 결혼한 큰 사위의 ‘카톡’ 한 줄이었다. “김장해 볼까?”라는 여보의 제안에 서울서 자란 사위가 올린 “저도 다른 집처럼 김장 해보고 싶어요.”였다. 여보는 당장 절인배추를 주문하고 가사도우미에게 김장날짜를 상의했다.

나도 약속을 취소하고 그날은 집에서 핀잔만 받겠지만 막걸리에 배추 속 쌈이나 싸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위가 약속이 잡혀 못 오겠단다. 집사람은 적이 실망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갔다.

김장하는 날 아침부터 부산해 김치 속 버무리는 걸 보고 집을 나왔다. 집 반찬이 10여 년 전 돌아가신 장모님 손맛을 점차 닮아가기에 “어릴 때 엄마가 해준 입맛을 되살려간다”는 말이 맞구나 생각해오던 터다.

사실 집사람의 첫 김장은 맞지만 김치는 가끔 담았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한창일 때 우리 4식구는 일본 동경에서 살았다. 한국일보시절 게이오대학교 신문연구소로 기자연수를 갔던 때다. 일본 TV에서 연일 한국특집이 이어지고 그중 한국음식과 음식점 소개가 무성했다.

지금의 우리 ‘먹방’ 유행이랄까. 동경교외의 우리 집 주위에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 또래들이 많아 구청에서 운영하는 아동관을 일본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일본인은 집에 초대를 안 한다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주부들은 거의 매일 서로 집에 초대해 식사를 같이했다. 일본 집에 가면 그라탱, 피자 등 서양음식이 주로 나오고 우리 집에서는 여보가 담근 김치가 인기메뉴였다.

이들도 TV속에서 보던 한국식 김치를 정말 맛있게 먹어 우리는 김치를 여러 번 만들었다. 수분이 많은 일본 배추, 무를 소금으로 절이기가 힘들었다. 욕조에 넣어 절인 배추를 비틀어 물기를 짜내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추억도 떠올랐다. 김치를 별로 즐기지 않았던 나였지만 어릴 때 식구가 모여 김장할 때의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설날, 추석명절에다 소풍, 운동회 그리고 김장과 모내기할 때가 가슴 설레던 잔치였다.

충북 영동의 고향집에서 김장을 하려면 먼저 배추가 앞마당에 산더미같이 쌓이고 우물가에서 소금으로 숨을 죽여 몇 번 씻어 내던 작업이 기억난다. 추워서 빨갛게 된 엄마 손과 나중에 고춧가루 물로 범벅이 된 빨간 손이 오버랩 된다. 학교 갔다 오면 가마솥에 달이던 멸치젓 냄새가 코를 찔렀다.

추풍령을 넘어 김천으로 이어지던 충청도 끝자락 황간면이라 고향에선 대부분 경상도식 김치를 담갔다. 엄마도 경북 성주분이어서 김치가 짜고 매웠다. 당연히 젓갈도 멸치젓이었다. 멸치가 그대로 보이는 젓갈 속에서 큰 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내어 씹어 먹다 형에게 “어린 게 별걸 다 먹는다.”라며 군밤을 맞은 기억도 난다.

새우젓은 67년 서울로 중학교를 올라와서 돼지족발 먹을 때 처음 먹어봤다. 결혼 후 처가가 마장동인데 김장때는 새우젓만 쓴다. 호박조림, 계란찜 등 보통 요리에도 새우젓국을 즐겨 쓰는 걸 보았다.

가정식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김치와 된장국은 집의 것이 제일 맛있다. 자랄 때 30여년을 엄마 손에 익은 입맛에다 결혼 후 그만한 세월을 처가 음식 맛에 길들여온 것이다. 그러니 시집살림도 해본 여보가 만들어주는 음식은 일단 무리가 없다. 게다가 두 딸을 키우면서 이들의 입맛을 맞추느라 얻어들은 음식 정보와 그 많은 가족 외식의 노하우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워낙 먹기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었다. 오죽하면 어린 두 딸과 식당에 가서 내가 먼저 음식 맛을 보고 “맛있다”면 “아빠 입에 맛없는 음식이 어디 있어?”라며 믿지를 않았다. 나도 속으로 ‘미식가’라고 자부하지만.

김장 후 며칠간 겉절이와 김치 속만 먹었다. 두 식구만 먹으니 김장김치 맛이 들 때까지 좀 걸릴 거다. 우리 속담에 ‘겉볼안’이라고 김치냉장고에 들어있는 싱싱한 김치를 보니 먹음직하다. 시든 겉절이도 명동칼국수 김치 정도는 안 되지만 ‘그런대로’ 맛이 들었다. 눈 내리는 날 저녁식탁에 쭉쭉 찢어서 ‘쏘주’ 한잔 곁들여볼까.

주) 겉볼안 : 겉을 보면 속은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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