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 대한 별별 이야기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넌 밸도 없니?”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다른 표현도 있다. ‘자존심 없는 사람’은 ‘속도 없는 사람’이다. 밸은 창자다. 밸은 자존심이자 속이다. ‘밸 없는 사람’은 욕이다.

장황하게 ‘밸’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에 ‘또’ 말썽이 된 미쉐린 가이드 (MICHELIN Guide)의 ’별’ 때문이다. 이런 저런 잡음이 들려도 용케 버틴다 싶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현직 셰프가 미쉐린 가이드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 내용은 모욕 혐의다. 동아일보 2019년 11월 18일 자 기사를 부분 인용한다. 제목은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 오른 건 모욕’…어윤권 셰프, 고소장 제출”이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을 운영하는 현직 셰프가 심사 기준의 공정성 문제 등을 제기하며 미쉐린 측을 검찰에 고소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어윤권 셰프는 지난 15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발간하는 ‘미쉐린 트래블 파트너’를 모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이 올라간 식당 셰프가 공식적으로 법적 문제를 제기한 첫 사례다." (후략)

우스운 일이다. ‘별’은 그동안 많은 화제를 낳았다. ‘별’을 주는 사람들이 마치 암행어사처럼 다니면서 검증을 하는 바람에 정작 레스토랑 주인이나 매니저는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가 ‘전설’로 떠돌아 다녔다. 구미 어느 레스토랑 셰프가 ‘별’이 줄어들자,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공정성과 오랜 권위를 내세운 ‘별’이었다. 한국에서는 달랐다. ‘금품 수수’ 이야기부터 ‘별’에 대한 별별 이야기가 다 터져 나왔다. 아름다운 전설,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외식업체에서는, “정당하게 컨설팅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느 식당은 (선정 댓가로)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 폭로(?)했다. 미쉐린 측에서는, “금품을 요구한 사람은 우리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해명(?)도 나왔다.

‘밸’이 없으니 ‘별’을 둘러싸고 생긴 일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치를 떠는 민족이 또 다른 식민 지배를 원하는 격이다. 한식을 모르고, 한식에 대한 ‘밸’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긴다. ‘밸도 없는’ 짓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밸’은 자존심이다. 우리 음식, 한식에 대한 자존심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긴다. 한국 된장과 일본 미소[味噌]의 차이를 모르고, 한국 청국장과 일본 낫또[納豆]의 차이를 모른다. 그러고는 무작정 일본음식을 벤치마킹(?)하고, 프랑스 잣대로 한식을 재단한다. 음식의 식민 지배다. 더 불행한 면도 있다. 외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식민 지배를 불러 들였다. 그것도 돈을 들여서.

음식을 그저 돈벌이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외국인들은 별을 받은 식당을 선호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허울만 번드르르한 ‘세계화’다. “우리 것을 외국에 널리 알린다”는 말에 속았다. ‘무엇을?’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외국에 널리 알린다는 생각만 했다. 한식이 어떤 음식인지,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광고, 홍보만 생각했다. 왜 식민 지배라고 하는가? 역사 깊은 우리 음식의 평가를 외국인에게 맡겼으니 식민 지배다.

음식은, ‘다르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그들만의 고유 음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음식, 한식은 프랑스 음식, 일본음식과 다르다. 일본, 프랑스는 식품 산업이 발전한 나라다. 음식이 앞선 나라는 아니다. ‘다른 나라의 음식’에 앞서는 ‘우리만의 음식’은 없다. 다른 음식이 있을 뿐이다.

한식은 어떤 음식인가? 한식의 특질은 무엇인가? 한식 세계화에 앞서, 한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유럽의 뿌리는 로마다. 로마 건국 신화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우유와 치즈와 버터다. 한민족은 단군신화다.

단군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웅녀(熊女)다.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굴속에서 기다렸다. 한민족 음식의 뿌리는 쑥과 마늘, 그리고 100일 간의 ‘기다림’이다.

엉뚱한 외국의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우리, 우리 음식, 한식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외국인들도 홀대한다. 우리가 한식의 ‘다름’을 모르는데 외국이 알아줄 일은 없다. 우리가 ‘밸’ 없는 짓을 하니, 외국의 ‘별’이 우리 음식을 하찮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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