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유발 '말 폭탄' 대신 '경청의 힘'에 관심 가져야

김정순 객원논설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언론학박사
김정순 객원논설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언론학박사

지난 1일 JTBC ‘뉴스룸’에서 신년특집 대토론이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데 여전히 높은 열기 속에서 연일 이슈의 중심에 있다. 토론 당시 시청률이 8.3%였다. 종편에서 여간해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다. 이 정도 높은 시청률이면 토론을 주최한 매체 입장에서는 재미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러나 토론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비판과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패널의 멘트를 논리적으로 지적하고 그 비판의 논거가 명확해 공감을 얻고 있다.

주최 측에서 토론방송 비판에 대해 반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기사는 토론이 아니라 패널 중 한 사람인 진중권 전 교수의 ‘살풀이 한마당'으로 전락했다고 혹평했다. 또 다른 매체는 비이성적인 자세로 시종일관 화를 내는듯한 진 전교수를 빗대 ‘성난 황소’같다며 희화화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토론을 주관한 매체 측은 “진중권은 로고스(이성적)로 질문하고 유시민은 파토스(감성적)로 회피했다”며 회피 프레임을 덧씌우는 등 말 잔치를 벌였다. 이에 “스펙터클한 패널과 노이즈를 노려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의 태도는 기만 아니냐”며 진중권과 JTBC를 싸잡아 맹비난하는 한 네티즌의 글이 눈에 띈다.

글쓰기 전문가로 알려진 이 네티즌은 “진 전교수의 화법에는 도무지 핵심을 알 수 없고 남는 것은 ‘화’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논지의 비난성 글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청자 댓글도 비판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수준 있는 토론을 기대했는데 손가락질하며 삿대질에 기본 예의도 없어 너무 실망했다”며 댓글을 남긴 시청자도 다수였다. 물론 진중권의 발언이 사이다 폭격이라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갑론을박 속에서 급기야 토론 다음 날 진 전 교수는 조국 관련 공개적인 ‘맞짱 토론’을 제안,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여의도 중진 이종걸 국회의원은 진 전교수를 향해 ‘지적 퇴행 심각’이라는 지적 멘트로 역시 언론지상에 회자 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 토론이 핫 이슈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한 패널 구성에 토론 MC의 정석으로 불리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했지 않은가. 이뿐이 아니다.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며 이용자가 감소하고 있는 때에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라는 신박한 주제의 신년 토론은 시청자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높은 기대감을 줬던 토론은 기대 부응은 커녕 실망과 허탈만 안겨줬다.

결국은 손석희 앵커의 진행자로서 역할 방치가 문제

무엇보다도 사회자가 진행자로서 역할을 방치한 듯한 자세가 문제였다. 시작부터 진 전교수의 작정한 듯, 주제와 무관한 발언을 사회자가 제지하지 않았다.

진 전교수의 독주로 다른 패널은 말할 틈도 없이 점점 주제와 동떨어진 토론 방향으로 흘렀다. 공정하고 날카로운 사회자로 정평이 난 손석희 앵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느긋하게 관전을 즐기는 듯한 진행만 있었다.

그나마 주제에서 점점 멀어지며 아슬아슬한 순간에 “토론 주제에 맞는 말씀을 해야죠. 사회자 비용도 주나요”라며 우회적으로 사회자의 진행을 촉구한 이창현 교수의 적절한 발언이 중심을 잡아 줄 정도였다.

균형 잡힌 토론을 유지하려 노력하던 이창현 교수의 매끄러운 지적과 정준희 교수의 역할이 없었다면 아마도 토론은 더 심각하게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날 토론은 주제와 관련된 깊은 논쟁도 없었고 상호 이견을 설득하는 과정도 없었다. 특정 패널이 계속 토론 주제와 무관한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는데도 제재가 없이 ‘사회자의 방치’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적합한 말이 떠 오르지 않는다.

주제에 대한 논쟁이나 대안 제시, 감동도, 그 흔한 재미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패널의 노이즈를 이용, 전례 없이 높은 시청률만 있을 뿐이었다.

이 토론을 지켜보면서 암울한 기분이 든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자기 말 폭탄을 터트리는 토론 장면을 보면서 갈등과 분열의 여의도 국회 정치 장면이 떠올랐다.

토론 문화는 국가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정치, 경제, 사회 주요 사안에 대해 토론을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잘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절제의 언어'에서 강한 울림과 설득력이 뒤따라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신년 대토론에 대한 주최 측의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시청률이 목적이라면 그 속내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천하의 명 사회자 손석희 앵커가 그것도 뉴스룸 마지막 진행을 단순하게 시청률 때문에 역할을 방치하면서 논점도 대안 제시도 없는 막무가내식 토론을 진행했을 리가 없다. 신년특집 토론이라면 논거를 갖춘 품격 있는 논점과 그에 상응하는 솔루션이 있어야 했다. 분노 속에 갈등만 유발하는 한 패널의 말 폭탄을 토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지지하는 진영을 향한 어떤 노림수가 있다 해도 신년특집으로 갈등 유발을 도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언론에 대한 문제 진단과 해결 방안을 기대했던 시청자 입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토론이란 이견을 가진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상대방의 말을 차분하게 경청할 수 있어야 이견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상대 설득이 가능해진다.

이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대신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청하는 마음 자세로 갈등을 야기하고 반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우리 사회는 유독 갈등하고 분열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는 갈등보다는 화합과 소통이 절실하다. 동네식당끼리도 아웅다웅 서로 반목하고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소통해야 한다. 바로 우리 가까이 있는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소통하면 화합의 길이 열리고, 화합하면 상생의 길도 보이는 것이다.

듣기의 시작이 곧 소통이다. 말하는 양과 속도는 줄이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자세에서 소통이 시작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절제의 언어가 가능해진다. 감정을 절제하면서 담아낸 언어는 강한 울림이 있어서 설득력이 뒤따른다.

말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도구이자 모든 관계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이번 JTBC 신년 토론에서 패널이 말을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혹은 토론 전에 경청의 힘을 알았더라면 훨씬 더 토론다운 토론이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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