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식신문 2020.01 Food  Essay]

한국을 대표하는 떡 인절미 ⓒpixabay
한국을 대표하는 떡 인절미 ⓒpixabay

수화(手話)를 배우고 있다. 손으로 하는 말, 농인(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말인데 이 손말도 언어이므로 수어(手語)라고 불러야 한다. 15년 전에 기초반을 수료했고 사이사이 농인들에게 수업을 받았건만 뒤돌아서면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아가버리던 그 손짓언어들! 이번엔 독하게 마음먹고 원주농아인협회에 등록해 기초반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했다.

스마트폰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온 방을 헤집으며 “내 전화기 어디 갔느냐”고 절규하는 나이에 스스로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시험 보고 수료증 드릴 때 책거리 할 거예요.”

아! 책거리라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책 한 권 다 읽었다고 떡 잔치 해주는 게 책거리다. 국수도 빈대떡도 고기도 아닌 떡이 나오니 이럴 때 떡의 의미는 우리 삶(역사)을 관통하는 고결한 정신이며 품위가 서린 잔치 의식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 말씀 한마디가 분위기를 풍비박산을 낸다.

“햄버거 드실 거예요.”

나는 반사적으로 욱! 뭔가 치밀어 올라왔다. <천자문>이나 <소학(小學)>을 지금 누가 배우겠는가마는 그 책거리에도 햄버거가 나올지 모르는 세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 말고는 모두 학생(2명), 아줌마(3명)들인데 거부감은커녕 죄다 좋아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따로 “제가 떡을 좀 마련해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했다.

햄버거를 ‘고기겹빵’이라고, 피자를 ‘종합지짐이’라고 부르면 그는 틀림없이 북한 사람이겠지만, 책거리에 떡을 가져온 나도 이방인이었다. 햄버거에다 콜라를 곁들인 수료생들은 아무도 떡에 손대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 체면 살려주려고 “하나씩 가져가서 엄마나 아빠 드리세요”라고 말했지만 그나마 두 팩이 남아서 사 온 내가 도로 가져가는 형상이 되었다.

떡… 이러다가 정말 떡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K-팝 덕분에 K-뷰티와 K-푸드도 인기라는데 K-떡은 어떻게 안 될까? 오래전 J교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

“영국 유학생 시절이었는데 한국도 참석할 거냐고 룸메이트가 묻는 거예요.”

유학 첫해라 몰랐는데 해마다 늦가을에 서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자기 나라 음식을 출품하고 맛보면서 즐기는 페스티벌이 있다고 했다. 축제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아서 기권할까 하다가 ‘한국 음식이 세계 최고’라고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아온 터라 무조건 참석하기로 했단다. 그때 그가 쉽게 구하고 또 조리할 필요도 없었던 한국 음식이… 가래떡이었다. 조그만 화로 위에 석쇠 올려놓고 그냥 노릇노릇 구웠을 뿐인데 어럽쇼? 손님들이 줄을 서더라는 것이다.

“아, 외국에서 반응하는 우리 음식의 가치는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단순한 가래떡 한 가지로 유학생 음식축제에서 인기상을 받았다면 다양하고 맛있고, 영양 성분 골고루 갖춘 우리 떡 문화가 K-푸드의 확산 기세에 힘을 보태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쫄깃쫄깃한 질감을 외국인들이 싫어하더라는 조사 보고서가 무수히 많긴 하지만 그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냥 물러서는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김치도 처음엔 외국인들에게 일종의 혐오식품 아니었는가.

주변을 둘러보자. 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 일본 다 우리의 적수가 못 된다. 이제는 우리 떡이 분발할 차례다. 막걸리 맛이 나는 증편에다 와인 증편도 흥미롭지 않겠는가.

editor 윤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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