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식 리필 방식, 고향집 느끼게 해

김희정 논설위원 (전)KBS 아나운서
김희정 논설위원 (전)KBS 아나운서

몇 달 전 주상복합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요즘 유행하는 부동산용어로 ‘슬세권’이다. 급하면 슬리퍼를 신고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상가가 함께 있다. 식당이 대여섯 개쯤인가. 그 중 어디를 갈까 기웃거리다가 ‘순정키친’이라는 곳에 들렀다.

이름이 독특해 호기심이 들었다. ‘키친’이 영어이니 앞 명칭도 영어로 그럴듯하게 지을 만도 하건만 순수함과 촌스러움의 중간쯤 되는 우리말이라 시선을 끌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청결 상태도 좋아 일단 촌스러움은 면했다.

접객을 하는 이는 서투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손님을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여자사장님인 듯했고 주방을 담당하는 이는 남자사장님인 눈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 나는 카레라이스를, 함께 간 아들은 돈가스를 시켰는데 기다리기 지루하지 않은 시간에 딱 맞춰 나왔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적정한 양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한 끼 양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었다. 먹을 것이 지천인 세상이고 모두들 다이어트에 골몰하는데다 중년에 이르면 대부분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 성인병 진단 하나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 지나치게 푸짐한 양을 내놓으면 적잖이 거북하다.

양이 많으면 남기면 될 것 아니냐 하겠지만 일단 음식물을 남겨서 버리게 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식후에 돈 계산할 때, 음식을 남기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애초에 적당한 양이 나오면 마음도 편하고 대신 질적으로 신경써줄 것 같아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기쁜 마음으로 접시를 다 비웠을 때쯤 여자사장님이 살포시 곁으로 다가왔다. “부족하면 더 드릴게요. 저희 집 모든 음식이 리필되거든요” 곱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얼굴 위로 ‘순정’이라는 이름이 겹쳤다. ‘순정’은 여자사장님의 이름일 수 있다. 아니면 식당을 운영하는 이 부부의 ‘순정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

나는 물론 리필을 하지 않았지만 이 식당이 좋아졌다. 모든 음식이 리필이라니. 밑반찬부터 메인 요리까지 손님의 양에 맞춰 내어주는 자세가 고향집처럼 넉넉해서 행복했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 음식점의 경쟁력인지는 몰라도, 적당한 양을 제공하고 모자르면 더 먹을 수 있게 하는 ‘순정키친’ 방식이 현대인에게 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남는 음식도 줄이면서 고향집의 후한 인심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향집에서 설을 쇠고 올라왔다. 명절이지만 되레 서울 집에는 먹을 게 없다. 고향에서 바리바리 꾸려 준 설음식이 있건만, 코앞에 고향집 같은 순정키친이 있어서인지 다시 데우고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오늘은 순정키친 가는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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