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절반을 어린이재단에 후원하는 ‘담양愛꽃’ 박영아 대표

[음식과사람 2020.02 P.80-82 Volunteer]

▲ 가게 앞에 선 박영아 대표

“해피데이에 나눌수록 담양엔 사랑꽃이 활짝 핍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용기로 시작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그런 의미다.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도록 등불을 밝혀주는 사람, 행동함으로써 주변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사람,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하다. 전남 담양의 선한 영향력, 기부가 생활이 돼버린 ‘담양애꽃’ 박영아 대표를 만났다.

editor 조윤서   photo 김성남

담양 슬로푸드 명소, 수제 떡갈비 전문점 담양애꽃
“담양에 오시면 국내산 재료만으로 만든 건강한 밥상 받으세요~”

광주대구고속도로 담양나들목에서 1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수제 떡갈비 전문점 ‘담양애꽃’. 그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죽녹원, 소쇄원 등이 차로 10~20분 거리 이내에 있어 ‘금강산도 식후경’을 하기에 아주 적격인 곳이다.

전남 무안이 고향이라는 박영아(46) 대표는 기계설계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던 자신이 250여 평이나 되는 음식점의 주인장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삼촌 따라 광주에서 과일유통업도 하고, 비수기엔 개인 화물차를 사서 한 3년간 농산물 유통업도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현장에서 농산물에 대해 배웠고 지역 먹거리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죠.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경험들이 후에 외식업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더라고요. 1년 반 정도 갈빗집을 운영한 후 2008년 11월에 담양애꽃을 오픈했습니다.”

메뉴는 잘 지은 밥에 정갈한 한정식을 기본 콘셉트로 했다. 국내산 원재료들에 화학조미료를 일절 안 넣고 죽염과 천연효소로 간을 하며, 나주에서 나는 ‘왕건이 탐낸 쌀’과 강원도에서 나는 누룽지찹쌀을 섞어서 가마솥밥을 지었다.

그 당시 이미 떡갈비 정식을 도입해 평일 8000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에 내놓았더니 6개월째 접어들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60평 식당이 4배 증축돼 250평이 됐고 마당 끝에 그럴 듯한 직원식당도 갖출 만큼 성장했다. 테이블 55개에 담양의 명소를 방 이름으로 붙인 룸이 15개, 직원도 스무 명이나 된다.

“고맙게도 저희 담양애꽃의 한정식은 건강한 밥상이라고 인식돼 있어요. 환자라든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저희 음식 드시고 실제로 몸으로 느끼신대요. 참 건강한 맛이라고요. 친한 사이에서 ‘나랑 밥 한 끼 먹자’고 할 때 가게 되는 그런 정겨운 식당으로 자리 잡기도 했어요.

계산할 때 밥값을 본인이 내겠다고 하거나 중간에 카운터로 나와서 미리 계산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아요. 여기서 밥을 먹는다는 게 어느덧 소중한 ‘한턱’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저는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하루 매출의 50% 후원 
“기부라는 건 그저 직원 한 명 더 둔다고 생각하면 돼요~”

“2011년 말에 식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승합차가 필요하게 됐어요. 현대자동차에서 자기네 차를 사면 가격을 할인해주고 그 돈을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고 하더라고요. 참 좋은 마케팅이었죠. 당장 그 승합차를 샀고, 그때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어린이재단과 협의해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해피데이(Happy Day)’라 정했고, 이날 담양애꽃에서 판매되는 매출액의 절반을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다각적으로 돕는 데 사용한다. 9년째 이어오는 이 사업에 손님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있다고. 자신들의 주문금액에서 절반이 기부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첫 달엔 20만 원 정도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점점 금액이 커져서 매달 300만 원은 돼요. 비수기 월요일엔 손님이 다른 날보다 없어서 매출의 50%가 300만 원이 안 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땐 채워서 드려요. 재단에서도 계획이 다 있으실 테니까요. 기부금의 일부는 재단 내 드림오케스트라에 보내는데,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이 음악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뜻깊은 사업이에요.”

전남대에 후원금을 내고, 전남문화예술협회라는 개인 단체에 매달 40만 원을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밥집이니만큼 어르신들을 식당으로 모셔서 대접하기도 한다.

담양군 내 혜림복지재단에서 1년에 한두 번씩 어르신들을 모셔오면 푸짐한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있는 것. 거꾸로 그가 잘 몰랐던 일로 식당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도 있다.

“어느 날 담양애꽃 소재지인 봉산면사무소 직원분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동네 어르신들에게 매일 두유를 보내드리는데 사정상 중단됐다며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요. 그때부터 매년 1월에 1년 치 비용 200만 원을 지원해드리고 있어요. 마침 어제 봉사자분이 식사하러 왔었는데 어르신들께서 매일 두유 받는 걸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비단 두유만이 아니라 매일 말동무가 함께 찾아오니 더 좋으신 거겠지요. 제가 막 행복해지더라고요.”

이처럼 박 대표의 후원은 어른과 아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묵묵히 세상을 밝혀준다. 담양남초등학교와 연계해 평일 저녁 식사쿠폰도 발행하고 있다. 담양애꽃의 인기 메뉴인 담꽃정식을 가족이 함께 와서 먹을 수 있도록 4장 묶음 단위로 준다.

주로 다문화가정이라든가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는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학교의 복지 담당 선생님이 쿠폰을 만들어오면 그저 도장만 찍어주는 게 일이라고. 

“꼭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게 기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기부라는 관념 자체가 어느 날 머리에 각인된 계기가 있어요. 2013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증축을 하느라 좀 어수선한 상황이었는데 밖에 눈이 내리는 거예요. 여기는 외곽이라 눈이 많이 오면 손님이 별로 없거든요.

홀에 앉아 창문 밖으로 눈 오는 걸 하염없이 쳐다보는데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어요. 천진난만하게 눈싸움하는 모습, 투정하거나 배고파 보채거나 해맑게 웃는 미소까지요.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깨달았어요. 아,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크구나 하고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부인은 그가 하는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믿고 따라주니 고마울 뿐이란다. 평소 기부나 후원은 그저 계속해야 하는 습관 같은 것이려니 했는데 한번은 자녀를 통해 새삼 그 소중함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다. 

“어린이재단에서 매년 10월 초에 음악회를 열어요. 이제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큰딸과 둘이 갔었죠. 그때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애티튜드가 있어서 알았어요. 제가 그간 기부한 금액이 1억 원이 넘었다는 걸요. 딸아이가 아빠는 정말 착한 아버지라고 얘기하데요. 멋쩍어서 저도 그랬어요. ‘너희들도 크면 다 이렇게 기부해야 하는 거다’라고요.”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을 보살피며 사는 게 앞으로의 소망
“장차 사회적기업을 세워 이웃과 사회에 더 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손님들도 박 대표의 선행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박 대표는 손님들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신규 후원자로 등록하면 밥값의 50%를 할인해주고 있다. 갈수록 기부활동이 인색해지고 있는 요즘 세상에 솔선수범하는 그의 노력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적은 금액이라서 미안하다며 정기 후원자에 등록하고 가는 손님들이 늘었다. 

박 대표는 장기적 플랜으로 그동안의 경험을 주춧돌 삼아 사회적기업을 세울 꿈을 갖고 있다. 디저트 카페든 국숫집이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외식업소를 차려서 사회적 약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만큼 이윤이 사회에 자동 환원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벌써 5~6년 전에 ‘나눌수록’이라는 상표도 등록해뒀다. 외식업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전남대 평생교육원, 전주대 향토음식과정 등을 수강하면서 외식업 전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어요. 올해는 건강한 음식을 테마로 한 새로운 외식 트렌드를 적용해볼 생각이에요. 다른 무엇보다 담양애꽃을 지금처럼만 잘 운영해서 직원들이 월급 잘 받아가고, 제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면 바랄 게 없어요.

또 한 가지 지켜야 할 도리는 나를 낮추고 주변을 잘 보살피며 살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에요. 제가 스님이 됐으면 참 잘했을 것 같은데 총각 시절엔 몰랐지 뭐예요(웃음).”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의 뒤쪽으로 깊은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스쳐가는 듯했다. 참 평화롭고 선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 곁에 서면 느껴지는 자연의 공명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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