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기행

[음식과사람 2020. 02 P.83 Food Essay]

 

식당 아줌마가 관광지를 살린다

editor   윤동혁

야생 버섯을 촬영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다가 이 말씀 꼭 하신다. 

“그 버섯 먹는 거예요?”

식용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면 이 질문이 반드시 뒤따른다. 

“맛있나요?”

이러한 맛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집요한 관심이 오늘날 K-푸드를 글로벌하게 확산시키고 있는 저력일지도 모른다.

관광지에서는 이런 현상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힌다. 오로지 식당에서 먹은 밥 한 끼가 맛없고 비싸다는 이유로 “다신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분개하는 분도 계시지 않은가.

“세상에… 애기 손바닥만 한 갈치 한 토막 구워주고 3만 원이나 받지 뭐야.”

머리 식힌답시고 강릉 경포대를 거쳐 정동진에 도착했다.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모래시계를 보았고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이 바닷길은 많이 아름다웠으므로 아이스크림을 아껴서 조금씩 핥아먹듯 몇 걸음 가다 쉬고, 또 조금 가다가는 바위 틈새에서 겨울바람에 떨고 있는 식물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이내 ‘고독한 미식가’가 됐다. 살짝 두려움이라고 해야 할 그림자가 덮쳤다. 식당은 많고 메뉴도 풍성했으나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마뜩찮았다. ‘혼밥·혼술 환영합니다’ 이런 문구를 써 붙여놓은 식당은 (물론) 없었다. 망치(학명은 고무꺽정이) 매운탕이 궁금했지만 보나마나 1인분은 안 된다고 할 게 뻔했다.

파도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바닷가에서 초당두부를 먹는다는 것도 그렇고… 조개구이도 아마 (혼자라서) 퇴짜 맞지 않겠는가. 늙고 외로운 여행자의 가슴에 비애의 파도가 포말을 흩뿌리며 솟구쳤다.

그때 나는 오로지 술 생각에만 휩싸여 가장 가까이 있던 그 식당 문을 씩씩하게 밀고 들어섰다. 술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엄청 당당해진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면서 “막걸리 한 주전자!”라고 지엄하게 주문했다.

“여긴 백반집인데요.”

나는 카운터펀치를 맞고 쓰러질 뻔했으나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저기 메뉴에 소주, 막걸리라고 씌어 있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생선구이도 있잖아. 꼭 백반만 먹어야 하나?

다소 시비조로 나서는 나를 보고 초로의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는) 아주머니가 배시시 웃으며 두 손으로 우선 앉으시라는 신호를 보냈다.

“열기, 삼치, 가자미 다 구워드릴 수 있는데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먼저, 생선 모둠은 비싸다. 혼자서 생선구이만 안주 삼아 막걸리 드시자면 양도 많을뿐더러 좀 비리지 않겠느냐. 우리 백반 한 상에 8000원인데 생선은 기본이고 고사리, 달래무침에다 김, 달걀말이… 엄청 많이 나오니까 한 젓가락씩 안주 삼아 드시면 천천히 막걸리를 오밀조밀하게 즐길 수 있을 거다.

그러면서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백반 한 상을 차려 내왔는데(사진) 나는 한정식집에 앉아 있는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지시한 대로 달래무침에다 한 잔, 고사리나물에다 한 잔… 생선(이날 올라온 녀석은 열기였다) 발라가며 또 한 잔…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술상이었다. 술은 막걸리 한 병으로 끝냈으니 황태국을 그냥 물릴 수 없어서 배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관광지의 미래는 관광지에서의 ‘총체적 식사 경험’에 달렸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확신을 준 그 식당은 ‘어머니의 밥상’(033-643-1518)이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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