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섞임, 변형, 변화, 진화의 음식이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가 한식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한식이다. 짜파구리는, 한식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한식 중의 한식이다.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라면)의 혼합이다. 섞임이다. 짜파게티와 라면을 섞었다. 짜파구리를 만드는 정확한 레시피는 없다.

애당초 연구실, 식품 대기업이나 외식업체가 개발한 ‘정식 음식’도 아니다. 네티즌이 장난스레,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만든 음식을 인터넷에 올렸다. 레시피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만든 이마다 조금씩 다른, 계속 달라지는 재미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재미있다고 느끼고, 외국인들은 신기하다고 느끼는 음식이다.

짜파구리는 변화와 진화(進化)다. 영화에서는 ‘냉장고에 남아 있는 한우 등심을 넣은 짜파구리’다.

‘기생충’ 팀을 초대한 청와대에서는 대파를 더한 짜파구리를 내놓았다. 다르지만 모두 짜파구리다.

어느 호텔 행사장에서는 영화의 ‘원형’과 가까운 ‘한우 채끝 등심을 넣은 짜파구리’를 내놓았다.

짜파구리는 섞임이자 변형이다. ‘국수, 대파, 쇠고기’를 섞는다. 모두 다르다. 변형으로 변화한다. 달라진, 더 나은 것도 나온다. 짜파구리는 끊임없는 변화와 진화다. 한식의 정체성이다. 한식은 섞임, 삭힘(발효), 변형, 진화다.

신화(myth)는 상징(symbol)이다. 상징은 많은 것을 아우른다. 신화는, 숱한 내용을 정제, 압축해 핵심을 전한다.

한민족은 단군신화다. 한민족은 한복을 입고, 한옥에 산다. 한식을 먹는다.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음식, 한식의 뿌리다.

한식 ‘짜파구리’는 단군신화와 닿아 있다. 섞임, 변형, 변화, 진화의 음식이다. 한식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함이다. 단군신화의 음식은 특이하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한식 짜파구리’를 특이하게 여기는 이유다.

단군신화에는 두 종류의 식재료가 등장한다. 쑥[艾, 애]과 ‘마늘[蒜, 산]’이다. 마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많다. 우리가 먹는 마늘은 단군신화 시절에는 없었다.

마늘이 마늘이 아니라, 달래 혹은 산마늘(명이나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2017년 개천절에는, ‘산’이 마늘도 달래도 아닌 무릇이라는 주장도 나왔다(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대부분 신화에는 음식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엎어진다. 유럽의 뿌리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여러 신이 등장한다. 갈등하고 싸운다. 화해하고 약속한다. 갈등, 다툼, 약속, 화해가 서양 문화의 뿌리다.

일본 건국 신화에는 ‘저승의 음식’이 나온다. 그뿐이다. 어떤 음식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승의 음식을 먹고 나면 이승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코멘트 정도다. 구체적인 음식은 없다.

‘로마건국신화’에는 ‘늑대 젖’이 등장한다. 로마를 건국한 이는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형제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다.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의 ‘늑대 젖’은 유럽 음식이 유장(乳醬, 乳漿)임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유럽은 우유, 버터, 치즈, 고기다.

단군신화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곰과 호랑이다. 곰은 채식을 주로 하는 잡식성이다. ‘단일품목 늑대 젖’이 아니라 쑥과 마늘이다.

쑥을 상식<常食>하는 나라는 드물다. 유럽인들도 쑥을 먹지만, 대부분 약용이다. 식용이 아니다. 우리는 쑥국, 쑥떡 등 여러 방법으로 먹는다. 우리는 다양한 식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단군신화의 음식은 ‘기다림’이다. 쑥과 마늘을 먹고 일정 기간 굴속에서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인간이 된다. 곰은 기다려서 인간이 됐다. 우리는, 쑥과 마늘을 ‘섞어서’ 먹고, 긴 시간 ‘기다린’ 곰의 후손이다.

그까짓 쑥 몇 줄기와 마늘 몇 톨이다. 한꺼번에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쑥과 마늘은 서늘한 동굴에서 삭힘 과정을 겪는다.

삭힘은 발효다. 발효된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은 인간이 된다. 웅녀다. 웅녀가 한민족의 어머니자, 할머니다. 우리는 나물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을 먹는 민족이다. 섞고, 기다린다. 변화, 진화가 뒤따른다.

한식은 섞고, 비비고, 삭힌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기생충의 짜파구리는 섞임, 변형, 진화다. 유럽의 짜파게티와 동양의 국수, 라면, 한국의 너구리를 모두 섞었다.

레시피? 없다. 채끝 등심을 넣어도 되고 대파를 강조해도 된다. ‘기생충’의 ‘짜파구리’는 단군신화와 닿아 있다. 한식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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