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3월호

[음식과 사람 2016-3 p.57 The Kitchen]

 

3월, 바야흐로 봄이다. 입춘과 우수를 지나 경칩이 눈앞이다. 땅심이 솟고 산천의 나무와 풀들도 봄맞이 채비로 분주하다. 새싹이 고개를 내밀면 세상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진다. 이렇듯 겨울을 견뎌낸 대가는 늘 청푸르다. 혹독함을 참고 견딘 보람이다.

하늘을 믿고 땅에 의지하며 살아온 조상들은 하늘의 약속과 땅의 근면을 천금처럼 여겼다. 대지의 언어는 금과옥조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지배했고, 그 삶은 다시 하늘을 거스르지 않았다. 이처럼 자연의 심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서도 똑같은 품세로 세상과 맞서게 하는 힘을 준다.

 

음식인이나 외식인들의 삶도 어쩌면 혹독함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즐거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고객인 ‘그들’을 위한 것이고, 그들로부터 보람을 얻고 그들의 반응과 표정에 의해 우리들 세상의 풍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면은 그들에게 믿음이 되고, 남다른 정성은 굳은 약속이 된다. 근면과 정성이라는 금과옥조가 믿음과 약속으로 자리 잡기까지 우리가 땅과 하늘로부터 받은 유일한 언어가 있다면 ‘인내’가 아닐까 싶다. 보람은 그 후의 일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든 음식을 파는 일이든 음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든, 음식과 함께하는 이런 모든 일들을 일컬어 필자는 ‘음식과 만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듯 음식과의 만남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는 기초에서 전문가 과정까지 다양한 조리교육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데, 많은 수강생들 중에는 실의에 빠져 있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들이 수시로 눈에 띈다.

나름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분들도 예외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배우기 위해 용기를 냈던 마음조차 흔들리기 일쑤다. 고민 끝에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 음식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해서 그렇답니다. 그러나 염려 마세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리듯이 똑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고 마중할 수 있는 마음을 먼저 만들고 나면, 그 마음이 음식과 만나는 길을 알려준답니다.”

힘겨워하던 수강생들은 머지않아 그렇게 음식과 만나게 되고 깊이를 더한 눈빛과 발걸음으로 연구소를 나서게 된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음식 전문가로 활약하거나 외식업 저변을 일구며 성공의 길을 걸어간다. 참고 기다리고 발견해가는 혹독한 시간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영국의 문호 새뮤얼 존슨이 “위대한 작품은 힘이 아닌 인내로 일궈진다”고 했듯이 내가 음식과 만나고 음식이 고객과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음식인 특유의 ‘인내’가 필요하다. 이는 음식인들이 지녀야 할 확고한 믿음이다. 결국 인내는 고객과 제대로 만나기 위한 아주 소중한 절차이자 가교인 셈이다. 그리고 보람은 인내로 놓인 그 다리를 건너오는 고객들의 발걸음이다.

소자본 창업의 대표적인 업종이자 영세상공인들을 대표하는 업종이 외식업인 이유는 소위 진입장벽이라고 하는 문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식업은 쉬 지치고 주저앉을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더욱 성공의 문은 좁을 수밖에 없다.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견디는 것도 인내지만, ‘음식과 제대로 만나기 위한 인내’는 분명 가혹하다. 그럼에도 모든 외식인들이 그 혹독함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 진정한 음식인이 되어야 성공하는 외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봄이 그 해답을 주는 진정한 봄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진 = 한국전통음식연구소

editor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