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9월호

[음식과 사람 2016-9 P.52 Food  Essay]

 

시곗줄을 바꾸려고 서울 동묘 앞 골동품 거리를 찾아갔다. 강원도 촌마을에서 시곗줄 하나 때문에 서울 한복판까지 (이런 말 쓰면 안 되는데) 기어나갔다.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 시외버스는 꼬불꼬불 고개 넘어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안을 한 바퀴 휘돌고 나와서 복잡한 시내 중앙시장, 남부시장 다 들른 다음 나를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놓는다.

1시간 40분이면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에 도착하고, 지하철(종로3가에서 갈아타고)이 동묘역에 이르면 자, 이제 새 세상이 펼쳐진다. 이미 골목 밖 인도에까지 물건들이 펼쳐져 있다. 우선 시곗줄부터 어떻게 해보자. 다행히 이곳에선 도처에서 시계 장수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구입한 헌 시계에 천 원짜리 새(?) 시곗줄을 연결하니 마치 대단한 숙제라도 마친 양 마음이 가뿐해졌다.

이제부턴 자유 관람과 선택 구매의 시간이다. 구닥다리지만 지금도 카메라 어댑터에 갖다 붙이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렌즈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헌책방에 들어가서는 마치 대단한 인문학자라도 된 양 (주인이 보면 대단히 어색한 자세로) 오래된 전문서적을 서가에서 꺼내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어떤 그럴듯한 명분도 ‘식사’ 앞에서는 자리를 양보한다. 고물과 헌책들 속에서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라도 찾을 듯 기세등등했던 나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나의 빈 배와 허기진 영혼에 어떤 음식을 제공해야 본전을 뽑을까… 식당 간판을 형형한 눈초리로 째려본다.

시계를 샀던 1년 전엔 짜장면을 먹었다. 또 먹는다 해도 나쁘지 않겠지만 다른 메뉴를 찾아보기로 한다. 녹두전에 막걸리 한잔 걸친다? 이런 장소에선 순댓국이 더 어울리는 거 아닌가… 이 골목 저 골목 방랑의 여정 끝에 눈이 번쩍 뜨이는 식당이 있었다.

▲ 사진 = Flickr (http://flickr.com/photos/abex/246501719)

매우 허름했다. 40년도 더 전, 학교 다닐 때 교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대폿집과 많이 닮았다. 매일 그날의 특선(?) 요리 한 가지(5000원 균일)만 파는 전문식당이었다. 그날은 7월 17일 일요일이었고 추어탕만 파는 날이었으나 ‘초복 특별메뉴’가 제공된다고 입구 유리창에 쓰여 있었으므로 눈이 번쩍 뜨였던 것이다. ‘반계탕 5000원’. 만일 싼 게 비지떡이라면 원주로 돌아가는 발길이 짜증스러워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왠지 횡재수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물을 파는 사람과 고물을 사는 사람들로 특화되어 있는 장소에서 값이 싸다고 허투루 음식 내놓았다가는 그 가게 몇 달이나 가겠는가. 대견스럽게도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니, 그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꽤 두툼한 인삼도 두 뿌리나 들어갔다. 뽀얗게 떠오른 기름 위에 들깻가루 듬뿍 뿌려졌고 대추도 굵은 게 두 알이나!

그런데 이건 지나쳤다. 삼계탕엔 그저 김치나 곁들일 것이지 가지 · 호박 · 비름, 나물만 3가지에다 겉절이김치, 오이김치··· 또 한 가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모두 ‘엄마 손맛’ 반찬들이었다.

정가 10만 원인 고급 화보집을, 그것도 거의 새것을 2만 원쯤에 산 기분이랄까. 나는 입이 간질거렸지만 남원 5남매 집 맏딸이라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맛의 비결을 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도 않았다. 대신 다시 오마고 (굳게) 다짐했다. 시곗줄 대신 5000원짜리 특선 요리를 맛보기 위해 고달픈 여정을 즐겁게 감수하고야 말리라.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