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채식주의자의 ‘외식’ & 채식의 역사

[음식과 사람 2016-9 P.82 Food & Ingredient]


영양 과잉 시대다. 현대에는 못 먹어서 아픈 사람보다 많이 먹어서 아픈 사람이 훨씬 많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로 건강과 웰빙이 부각되면서 채식 선호가 크게 늘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채식, 채식주의자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영양 과잉을 걱정하는 시대에 채식 위주의 절식하는 식습관이 새로운 건강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채식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 현대인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ditor 강보라 

 

건강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영양 결핍은 사라졌지만, 영양 과잉으로 질병이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채식과 슬로푸드 위주의 전통 음식과는 점점 멀어지고, 인스턴트 가공식품이 식탁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 불규칙한 식습관과 폭식, 과식이 늘고 영양 불균형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성인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 건강은 이제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건강한 삶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채식이다. 최근에는 채식의 장점을 밝혀낸 여러 연구 결과와 채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채식주의자들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들은 일반인들보다 20% 이상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근경색증이 일어날 확률도 일반인에 비해 25%, 뇌출혈은 32% 각각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 사진 = Pixabay

과거에는 동물 보호나 환경  ·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개인의 건강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당시 패스트푸드와 기름진 고기를 사랑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녔다. 하지만 퇴임 후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변했다.

이처럼 채식을 부작용이 없는 만성질환 치료법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비건(Vegan, 완전 채식)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육식 소비량이 월등한 서구인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비만이나 성인병 발병률은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서구화되는 식생활을 고려한다면 채식을 시대의 흐름으로 보는 시각도 일리가 있다.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면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았지만, 이제는 개인의 취향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다.

 

채식주의자의 ‘외식’

고기가 주류를 이루는 외식 시장에서 채식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식당에 채식주의자 메뉴가 따로 있는 외국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한식의 다채로운 레시피는 채식에 큰 도움이 된다. 고기 위주의 외식에서도 채식 실천이 가능한 것은 한식 특유의 반찬 덕분이다. 서양의 채식인들이 부러워하는 갖가지 나물, 두부, 버섯류가 대표적이다. 제철 채소와 나물로 생채, 숙채를 해서 된장, 고춧가루, 간장 등으로 양념한 반찬과 면류, 부침류도 다양한 편이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채식은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단계별로 나뉜다. 흔히 ▲세미채식(육류는 먹지 않고 닭이나 칠면조 등의 조류나 해산물을 먹는 상태) ▲페스코채식(조류를 포함한 육류를 먹지 않고 회 등 해산물은 먹는 상태) ▲락토오보채식(조류를 포함한 육류와 해물을 먹지 않는 상태로 우유 등 유제품과 계란 섭취) ▲비건채식(계란과 우유를 비롯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상태) ▲프루트채식(과일, 곡물, 잎사귀만 먹는 상태) ▲생채식(채소를 요리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먹는 상태) 등으로 분류한다.

이를 감안하면 프루트채식이나 생채식처럼 완강한 채식주의자를 빼면 외식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한국은 채식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인지 모른다. 곡식과 채소가 주재료인 한국의 전통 밥상이 채식과 가깝기 때문이다. 곡식, 콩, 채소, 해조류, 견과류 등으로 이루어진 한식은 채식을 실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봄나물 / 한국외식신문DB

채식은 건강뿐만 아니라 시장 상황도 밝은 편이다. 비슷한 메뉴들로 포화 상태를 이룬 외식 시장에서 채식은 매력적인 키워드다. 채식 전문 식당처럼 식재료나 전문 조리법, 주요 고객 등으로 차별화를 꾀해 틈새시장을 노려볼 만하다.

채식주의자들을 공략한 비건 전문 프랜차이즈도 있다.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성업 중인 비건 전문 쇼핑몰  ·  레스토랑 브랜드 ‘러빙헛’은 국내에서도 점차 매장을 넓혀가고 있다. 러빙헛은 모든 음식에 육류 성분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완전한 채식 요리를 제공한다. 채식의 기본 원칙만 지키면 해당 지역의 재료로 뷔페식과 주문식, 카페 등 여러 형태로 운영할 수 있는 융통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채식이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사실은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맥도날드는 인도의 271개 매장에서 당근, 배, 감자 등으로 만든 패티를 사용한 ‘맥베지’와 전통적인 인도 치즈 패티로 만든 ‘맥스파이시 파니르’ 등을 판매하고 있다. 도미노 피자 역시 뭄바이와 인도 서부지역 일부에서 채식주의자 전용 매장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비건 레스토랑이나 비건 베이커리가 속속 늘어나고 있어 채식에 대한 선택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채식의 역사

우리나라는 건국시대부터 채식을 실천하던 국가였다. 살생을 엄격히 금하고 육식을 금기하는 법령은 고려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고려시대까지 내려오던 채식 문화는 조선시대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나라(몽골)의 침략으로 육식 문화가 유입된 것이다. 고기를 넣은 만두나 뼈째 고아 먹는 설렁탕은 원나라의 풍습 중 하나다.

여기에 조선의 건국으로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면서 육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고기와 생선이 포함됐던 유교의 제례 의식은 왕실뿐만 아니라 사대부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조선 왕조에는 36명의 왕이 나오는데 이들의 평균수명은 47세에 불과했다. 태종에서 성종까지 전기의 왕들은 풍질, 당뇨, 종기, 이질 등을 앓았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이것은 대부분 육식과 관련된 질병이기도 하다.

고기를 특히 좋아한 왕은 세종이었다. 세종은 54세에 승하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상중에도 세종에게만은 고기를 허하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그리하여 세종은 안질, 종기, 부종, 설사 등을 수시로 앓았고 서른을 넘기면서는 당뇨로 고생했다. 말년에 앓은 눈병, 안질도 당뇨 합병증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전보다 고기를 더 먹게 되었다는 조선시대라 할지라도 식문화는 여전히 쌀을 중심으로 한 채식이었다.

▲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한 장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육식으로 생기는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196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양소 결핍의 시간이었다. 1960년대 이후 화학비료 등이 널리 이용되면서 곡물 생산량이 30여 년 동안 급속히 증가했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곡물을 해결하기 위해 가축 사료로 곡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축산업 부흥과 과다한 육류 소비로 이어졌다. 선진국에서는 영양소 과다로 암, 골다공증, 당뇨, 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퇴행성 만성질환이 급격히 늘어났다.

고기 위주의 식단은 만성질환을 초래한다. 그에 따라 과다한 의료비용 등 사회적 부담 역시 증가한다. 이 때문에 육류 소비가 많은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영양 섭취와 질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해법이 채식 중심의 식단이었다.

음식 섭취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양 권장량 제정은 1940년대 미국의 군대 급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영양소 부족으로 생기는 질병이 많던 때라 높은 기준치를 영양 권장량으로 정한 것이다. 당시 영양학계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절반 이상이 영양소 결핍과 관련된 내용일 정도로 음식의 질보다 양에 대해 집중할 때였다. 이제 시대가 바뀐 만큼 영양소 섭취의 가이드라인 역시 정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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