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이 있는 곳에 장사터를 정하라

밥 먹고 나서 / 오숙

밥 먹고 느릿느릿 채마밭을 나서는데

병든 아내는 뒤따르고 아이는 앞장서네

인생의 이 즐거움 더 바랄 게 없더라

그 누가 백 년 인생 고생고생하며 사는가

식후서행향채전<食後徐行向菜田>

병처수후치아선<病妻隨後稚兒先>

인생차락여무원<人生此樂餘無願>

수자노로송백년<誰自勞勞送百年>

칼 라르손, '큰 자작나무 아래에서의 아침식사(Breakfast under the big birch)', 19세기,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미술관
칼 라르손, '큰 자작나무 아래에서의 아침식사(Breakfast under the big birch)', 19세기,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미술관

해주 오씨. 17세기 조선의 선비 오숙(1592~1634)의 아호는 천파<天坡>다.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날렸다. 벼슬은 황해도관찰사가 끝이었다. 문장이 간결하였다. 앞의 칠언절구의 시는 친아우 오빈이 진주 목사로 활동할 때, 편집 간행한 시문집'천파집'(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 그 출처인 셈이다.

한시로 가족의 사랑과 인생의 즐거움을 노래했는데 그 울림과 파장, 감동이 결코 적지 않다. 예쁜 글씨(캘리)로 적어서 가족이 마주치는 유일한 공간 거실 벽 중앙에 걸어두고 싶어진다.

서울대 국어국문학 이종묵 교수는 “밥 먹고 한가한 틈을 타서 가족이 함께 산책을 가는 일. 그보다 인생에서 즐거운 일이 있겠는가. 무엇하러 벼슬을 한다고 애쓰겠나. 이렇게 한가하게 살아가면 그뿐인 것을”(이종묵, '한시 마중', 277~278쪽 참조)이라고 설명했는데, 저절로 공감이 된다. 서른의 나이는 너무 이르고 마흔, 혹은 쉰의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시 읽는 맛이 깊고 넓게 심연에 가닿으며 저절로 느껴질 것이다.

조선의 선비 오숙. 그가 생전에 꿈꾸었던 이상적인 집 (家庭)은 아마도 당나라 시인 두보의 유명한 ‘완화복거<浣花卜居>’가 그 모델일 테다.

복거<卜居>란 ‘점을 쳐서 집 자리를 정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대개 사람이 살만한 곳을 고를 때 두보의 「거처를 정하다<卜居」>라는 명시를 실은 참고하곤 실행에 옮기곤 했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로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그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 즉, 생리<生利>가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 그 고장의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수<山水>가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

이 말은 사학자 신정일이 2012년에 출간한 '새로 쓰는 택리지'(다음생각 펴냄)에서 꼭 메모해야할 최고의 명언이 이미 되었지 싶다. 말하자면 중국 당나라 때, 대시인 두보의 「거처를 정하다(복거<卜居>)」를 다시 읽는 기분이 든다. 그 시의 전문은 이렇다.

완화계 흐르는 물, 물의 서쪽 머리에,

숲과 못이 그윽한 데 주인이 살 터를 점복<占卜>했노라.

성곽 밖으로 나왔으니 일이 적음은 이미 알겠는데,

맑은 강이 나그네 시름을 삭여줌이 더하여 있도다.

수없는 잠자리가 나란히 오르내리고,

한 쌍의 비오리(물닭)가 마주 보며 자맥질을 하는구나.

동으로 만리<萬里>에 가 흥을 돋음직하니,

모름지기 산음<山陰>을 향하여 작은 배에 오르리.

완화류수수서두<浣花流水水西頭>

주인위복림당유<主人為卜林塘幽>

이지출곽소진사<已知出郭少塵事>

갱유징강소객수<更有澄江銷客愁>

무수청정제상하<無數蜻蜓齊上下>

일쌍계칙대침부<一雙鸂鶒對沈浮>

동행만리감승흥<東行萬里堪乘興>

수향산음상소주<須向山陰上小舟>

지난 주말이었다. 친구와 몇이서 경기도 오산 서랑저수지로 소풍을 다녀왔다. 서랑저수지 산책길 끝에 예쁘게 핀 무더기 패랭이꽃과 접시꽃, 양귀비, 부들 등을 보면서 우리는 깔깔, 호호 웃으며 참 행복했다.

일행 중 한 친구가 머잖아 카페 창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랑저수지를 끼고 있는 ‘아내의 정원’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런 곳이야말로 자기가 나중 장사할 만한 곳이 아니겠냐고.

앞의 그림을 보자.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Carl Larsson 1853~1919)’이 그린 것이다. 그는 아내 카린 베르구(Karin Bergoo)와 사이에서 무려 8명의 아이들을 두었다고 전한다. 그림 속에 나오는 집은 전원주택 ‘릴라 히트나스(Lilla Hytnas)’일 테다.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에서 식탁에 식구들이 빙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 모습이 실은 소박하나 진정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 집(家)만 있고 채마밭이나 마당(庭)이 없다면 ‘가정’은 단란해지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도 이제는 맘껏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아이들이 앞장서고 아내는 뒤따르는 산책길이 많아져야 한다. 외식업은 그런 인심<心>이 깃든 곳에 입지를 정해야 한다. 장사할 터를 복거해야 한다.

나무가 주는 연녹색이나 물이 주는 파란색이 많이 보이는 곳. 그 경관<景觀>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찾아서 가족들, 소비자가 외식으로 행복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외식업 창업자는 이제는 안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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