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등은 편하다. 1등이 있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으니 뒤만 잘 따라가면 된다. 안정적이고 편한 2등은 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2등만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잔혹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른 나라였다. 꼴찌에서 버둥댄 나라니, 2등이 아니라도 받아들일 사정이었다.

한국, 그동안 2등이 되려고 노력했다. 절대 빈곤 시절에는 원조도 받았다. 죽는시늉을 하면 도와주는 나라도 많았다. 이젠 남을 돕는 나라가 되었다.

코로나-19가 터졌다. 1등인 줄 알았던 국가들이 더 헤맨다. 백신이 시작되면서 한국도 어려운 국면이다. 그 이전에는 이른바 K 방역이 힘을 발휘했다. 1등인 줄 알았던 국가들을 제치고 잘 대처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서울, 수도권이 쑥대밭이다. 외식업을 비롯하여 영세자영업자들은 휴업, 폐업으로 몰리고 있다. 도무지 앞장서서 ‘나’를 안내해줄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썩 잘하는 나라도 별로 없다.

뻔한 이야기다. 나라나 개인이나 늘 1등, 스승이 필요하다. 앞서가는 이들이 필요하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게 없으니 더 미칠 노릇이다.

제법 긴 기간 음식 공부를 하면서 늘 안타까웠던 것도 마찬가지, 스승이 없었다. 왜 우리나라에만 쇠로 된 뾰족한 젓가락이 남았는지? 고대 중국에는 있었던 숟가락이 왜 사라졌는지? 왜 한반도에만 수저 문화가 남았는지?

한반도는 고기 문화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맥적(貊炙)’은 진짜 우리나라 쇠고기, 불고기 문화의 시작인지? 된장, 간장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된장과 간장을 가르는, 장 가르기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신라 시대 왕실의 혼인예물로 썼다는 ‘장(醬)’은 뭘까?

왜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달래)을 주었는지? 호랑이는 육식성이다. 고기를 먹어야 산다. 곰은 잡식성이다. 나무 열매나 잎도 먹는다, 곰과 호랑이에게 같은 조건으로 쑥과 달래를 주는 것은 불공정 경기다. 왜 쑥이나 달래가 아니고, 쑥과 달래라고 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은 많은데, 정확하게 알려주는 이는 드물었다. 개인적으로 스승을 찾기 힘들었다.

왜 한반도에만 비빔밥, 쌈밥이 남았는지, 라는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비빔밥의 경우, 엉뚱하게도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씨의 1994년 인터뷰가 스승이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설명하면서, 비빔밥의 정체성, 비빔밥의 원리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공부, 음식 공부의 스승은 엉뚱한 곳에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 시대 기록들이 도움이 되었다. 한반도의 우유, 고기 문화에 대한 적확한 설명도 마찬가지.

조선 시대에 치즈가 있었다고 하면 대부분 “무슨 소리?”라고 반문한다. 조선 시대에도 치즈가 분명히 있었다. 기록에 또렷이 남아 있으니 의심할 필요는 없다.

세종 3년(1421년) 11월 28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치즈는 수유였고, 치즈를 만드는 이들은 수유치(酥油赤)다. ‘치’는 벼슬아치, 장사치처럼 ‘직업’을 드러낸다. 태상왕이었던 태종이 ‘수유치 마을’에서 수유, 치즈를 만든다고 병역을 피하는 이들을 죄다 병역에 동원한다.

한반도의 고기 문화, 우유에 대한 역사도 쉽게 엿볼 수 있다. 흔히 몽골족의 고려 침공이 고기 문화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그보다 앞선 거란의 한반도 침입 때 많은 기마, 유목, 수렵 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온다. 이들이 도살, 치즈, 고기 문화를 전한다. 모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스승이다.

어쩔 수 없다. 힘든 시국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설혹 이 위기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역시 앞날이 캄캄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코로나 19 이후 시대’의 상황은 역시 짐작하기 힘들다. 온라인 세상이 더 펼쳐질지, 밀키트가 대세인 세상이 될는지, 알 수 없다. 살아남기도 바쁜 판에 앞날을 걱정하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거센 물살을 넘어서서, 저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도 준비해야 한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너는 것은 저 건너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아무리 물살이 거세더라도 힘을 모아서 강을 건너는 이유다.

모두 지칠 만큼 지쳤다. 지금 상황도 막막하고, 앞날도 더 막막하다. 앞선 이도 스승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승을 찾든, 앞서가는 이를 찾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길을 찾든, 살아남아야 한다.

자영업자, 특히 외식업 종사자 여러분,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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