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장사로 삼대, 사대, 오대……를 이어가자

한여름/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김득신, '성하직구(盛夏織屨)', 종이에 담채, 18세기, 간송미술관
김득신, '성하직구(盛夏織屨)', 종이에 담채, 18세기, 간송미술관

“한 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 문화의 꽃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건 미술에 당대의 미감과 창의성이 고스란히 담긴다. (중략)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과거로 여행하며 옛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말인즉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맛깔나게 소개하는 책, 미술평론가 탁현규의 '그림소담'(디자인하우스, 2014년) 서문에 보인다.

앞의 그림 '성하직구<盛夏織屨>'는 풀자면, ‘한 여름의 짚신 삼기’가 되겠다. 다시 그림을 보자. 한눈에 봐도 뜨거운 여름철이다.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가 보인다. 그 옆으로는 마당에 돗자리를 놓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하여 열심히 신발을 삼는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희끗한 수염의 할아버지 신발을 먼저 완성한 다음에 자신의 신발을 능숙하게 삼는 품새가 그럴 듯하다. 이 그림이 참 재미가 있는 이유는 한쪽에서 배를 땅에 붙이고 헐떡이는 강아지 모습에서 쉽게 여름 무더위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압권은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의 시선이다. 곰방대를 입에 문 연로한 할아버지도 그렇고, 할아버지 등에 기대어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이의 눈이 향한 곳도 ‘짚신 삼는 노동’에 집중하여 머무른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아들의 솜씨가 많이 능숙해진 것을 대견히 지켜보는 감독자와도 같고, 어린이는 아버지가 언제쯤이나 자기의 신발을 새로 삼아 줄 것인가, 잔뜩 기대하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 저도 얼른 커서 아버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짚신을 삼는 솜씨를 배우고 싶은 욕망의 눈빛을 그림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같기도 하다.

어쩐지 할아버지의 눈은 “이만하면 됐다”는 말을 내뱉는 것도 같고, 손자는 무심하게 신발을 삼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곧 저렇게 할 수 있어”라고 소원을 비는 것도 같다. 아무튼 이 그림은 18세기 조선의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작품이다. 그는 아호를 ‘긍재<兢齋>’라고 했다. 그 까닭이 있다.

자기의 그림 실력을 은근히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나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과 같은 자리에 놓고 평가를 받고 싶은 욕망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긍(兢)’ 자는 두려워서 ‘떨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상은 라이벌에 대한 경쟁을 의미하는 ‘경(競)’ 자의 자존감을 겸양을 갖춰서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재’라고 하지 않고, ‘긍재’라고 자호를 정한 것이다.

어쨌든 호랑이를 그리려고 맘을 정하면 실은 엇비슷한 고양이는 최소한 그린다고 그랬던가. 그렇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외식업도 다를 바 없다. 아주 잘 나가는 식당 경영 노하우를 후학인 외식업 창업 희망자라면 배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롤-모델이 되는 스승이 될 수 있는 업소가 반드시 몇 개쯤은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외식업 CEO로서 김득신의 그림에서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삼대를 잇는 솜씨’에 있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두부전문점,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내려온 반찬전문점 등등이 우리 외식업 시장에선 일본과 달리 세습이 되지 않고, 자랑이 되지 않는 현실은 이제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왔다.

20대 외식업 창업 희망자여! 부디 ‘삼대를 잇는 음식 솜씨’를 함부로 소홀히 여기거나 쓰레기로 여기지는 제발 말자. 성공의 관건은 스토리에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아니면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에서 외식 아이템을 가까이 가만히 찾아보고 준비할 일이다.

내 할머니가 죽기 전에, 내 어머니가 죽기 전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자주 찾아뵙자. 그리하여 “아 이젠 안 계시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생전에 친가가 됐든, 외가가 됐든 간에 기막힌 외식 아이템이 될 만한 솜씨, 대를 잇자.

음식장사로 삼대, 사대, 오대……를 이어가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자 시인 고두현의 명시 「한여름」은 그런 의미에서 20대 외식업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이라면 줄줄 암송하고 외울만한 짧은 시다. “남녘 장마 진다 소리”가 물러나는 한여름 휴가철엔 말이다.

나는 고두현 시집, '남해, 바다를 걷다'(민음사, 2020년)를 펼쳐 시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어렴풋이 김득신의 그림에서 삼대의 남자 중에 사립문 안에 “여보! 물?”하고 부를 만한 이는 누구일까. 할아버지, 손자는 아니다. 그렇다. 중년의 사내, 그 한 사람 밖엔 없을 테다. 그러니, 이런 상상력을 가져다주는 시와 그림 속으로 어찌 내가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있으랴.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