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 정책 대안 촉구 위한 외식인 단체행동 설문조사 진행 中

[음식과 사람 2016-12 P.36 Hot Issue + Cover Story]

 

김영란법 한 달, 텅 빈 음식점들

고급음식점뿐 아니라 서민형 음식점도 된서리

음식점 10곳 중 7곳 매출 감소

10곳 중 3곳은 휴·폐업 또는 업종 전환 고려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국외식업중앙회(회장 제갈창균, 이하 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원장 장수청, 이하 한외연)은 김영란법 시행 한 달을 맞아 419개 회원 업소를 대상으로 ‘국내 외식업 매출 영향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김영란법으로 발생한 외식업계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외연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영란법 시행 한 달, 외식업 현장을 들여다본다.

 

editor 김선호

 

음식점 68.5% 매출 감소, 매출액 4분의 1 증발

중앙회를 비롯한 외식업계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불경기로 힘든 외식업계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따라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외식업을 제외하거나 3만 원으로 규정된 식사 한도를 늘려달라는 청원을 계속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국가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낙수 효과가 있을 것이므로 전체 외식업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객단가 3만 원 이상의 손님이 줄어드는 대신 3만 원 이하의 손님이 늘어서 전체적인 매출 규모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부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소규모 음식점들의 매출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세한 외식업체들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낙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한외연의 조사 결과를 보면 기대했던 낙수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낙수 효과로 매출 증가를 예상했던 평균 객단가 3만 원 미만의 업소 중 실제로 매출이 증가한 업소는 단 2%(7곳)에 불과했고 오히려 65%(227곳)는 매출이 감소했다. 3만 원 미만 업소들도 대부분 김영란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외식업체의 매출 감소 폭은 예상보다 컸다. 3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은 86.2%(50곳), 5만 원 이상은 83.3%(10곳)가 매출이 감소했고, 조사 대상 419개 업소 중 3분의 2가 넘는 68.5%(287곳)가 평균 36.4%의 매출액 감소를 보였다. 매출이 감소한 업소 비율에 평균 매출 감소액을 곱해서 산출한 전체 외식업체의 매출 감소액도 24.9%로 나타났다.

결국 김영란법 시행 한 달 동안 전체 외식업체의 매출액 중 약 4분의 1이 증발된 셈이다.

김영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균 객단가 3만 원 미만 서민형 식당들이 고급식당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외연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매우 넓어 모임과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법 적용 대상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영향을 미친 결과’로 추측했다.

 

구내식당, 편의점으로 몰리는 손님들

외식업계의 매출은 감소된 반면 대형마트 식품군의 매출은 늘어났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올해 10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늘었고 특히 식품군 매출 상승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10월 식품군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13.1% 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전체 평균 매출 증가율 11.5%보다 1.6%포인트 높은 수치다. 식품 매출 중에서 농수축산물과 같은 신선식품 매출도 14.1%나 늘었다.

롯데마트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는데, 특히 반찬류 매출이 지난해 10월에 비해 35.7%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형마트에서는 식품뿐만 아니라 양주 매출도 늘었다. 이마트는 10월 양주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3% 늘었고, 롯데마트는 위스키 매출이 14.6%, 브랜디 매출이 43.9%나 증가했다. 편의점 식품군도 매출이 증가했다. CU에 따르면 냉장 안주류의 매출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부터 10월 28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7.1% 늘었다.

비슷한 시기 GS25는 92.4%, 세븐일레븐은 41.7%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트렌드 중 하나였던 편의점 도시락의 매출 증가세도 계속 이어져 CU의 경우 김영란법 시행 전에 비해 매출 신장률이 243.3%까지 올라갔다. 올해 들어 가장 급격한 증가 폭을 보인 것이다.

구내식당은 예상했던 대로 인기가 높아져 점심시간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중앙회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구내식당을 폐지하거나 휴무일을 늘려달라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일부 지자체들은 취지에 공감하며 구내식당 휴무일을 늘리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왔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구내식당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그동안의 성과가 무위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용인시처럼 김영란법으로 손님이 줄어든 지역 식당들을 위해 매주 1회 운영하던 ‘직원 외식의 날’을 2회로 확대하는 지자체도 등장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비용에 관계없이 외식업체 이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식점 대신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저녁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다가 집에서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외식업체 매출의 일부를 차지했던 저녁 술자리도 술과 안주를 사서 집에서 먹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경향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외식 트렌드 변화를 등에 업고 더욱 확산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전 외식업계가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P 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회식이나 술자리가 줄고 저녁을 집에서 먹는 횟수가 확실히 늘었다”며 주변의 다른 공무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휴·폐업, 업종 전환 고려하는 음식점들···

외식업 고사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 필요

한외연의 이번 조사에서 전체 조사 대상 음식점 중 메뉴를 조정했거나 조정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업체는 32%(134곳), 메뉴를 조정하지 않았으나 향후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업체가 29.6%(124곳)로 나타났다. 나머지 38.4%(161곳)는 메뉴를 조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메뉴를 조정했거나 조정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업체들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신메뉴 출시(52.2%)를 꼽았다. 흔히 ‘김영란 메뉴’로 불리는 3만 원 미만 가격의 메뉴를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외식업소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 대해 모두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경남 창원시에서 한우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는 K 씨는 “주변에 관공서와 병원이 많아 매출이 줄었다. 하지만 억지로 김영란 메뉴를 만들려면 식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저가 메뉴를 만들 계획은 없다”며 무리한 메뉴 가격 낮추기에 대해 경계했다.

한편, 음식점에서 더치페이 문화가 급격히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무원들은 위법 여부가 모호한 경우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그 결과 전체 과반수인 50.4%(211곳)의 음식점에서 더치페이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외식업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시작된 매출 감소가 장기적으로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 불안감 때문에 휴 ·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업체는 13.4%(56곳),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업체도 16%(67곳)나 됐다. 조사 대상 업체 10곳 중 3곳이 휴·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중앙회, 정책 대안 촉구 위한 ‘외식인 단체행동’ 설문조사 실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는 우려도 높다. 보통 외식업체들은 연말이 가까워지면 연말 특수를 누린다. 연말 특수의 대부분은 회사나 각종 모임의 연말 행사로 생기는 매출 상승 효과다. 하지만 올해는 많은 회사들이 눈치를 보느라 연말 행사 계획을 축소하거나 아예 취소하고 있다. 동창회 같은 각종 모임들도 공무원 회원들을 고려해 연말 모임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한외연의 김삼희 연구원은 “김영란법으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외식 자체를 줄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외식업체가 가격을 조정해서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메르스 등으로 근래 몇 년 동안 연말 특수를 거의 누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는 더욱 심각한 것 같다”며 “1월과 2월은 전통적으로 외식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인데, 이 시기를 어떻게 버텨나갈지 걱정이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한 “현재 외식업계가 겪고 있는 매출 하락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휴 · 폐업이 속출하는 심각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외식업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식업 경기는 김영란법이 헌재의 합헌 판결을 받아 시행이 결정된 지난 7월 28일부터 지속적으로 위축돼왔다. 김영란법이 미치는 영향은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현장에서 만난 외식업체 종업원과 경영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으로 벌어진 외식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더욱이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외식업체 이용을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많은 영세한 외식업체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한외연의 조사 결과는 김영란법 실시 이후 많은 외식업체들이 휴 · 폐업이나 전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중앙회는 김영란법의 보완·개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12월 15일까지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외식인 단체행동’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란법 개정과 의제매입세액 공제한도 폐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 개최 및 특정일 휴무 등 ‘외식인의 단결된 집단행동’을 통해 정부에 각성을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 앞장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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