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2월호

[음식과 사람 2016-12 P.40 Hot Issue]

 

editor 김선호

우리 사회의 관습과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됐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김영란법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벌어진 다양한 모습을 담아봤다.

 

김영란법 1호 수사 대상은?

김영란법 위반에 관한 최초 신고는 법이 발효된 9월 28일 낮 12시 4분에 있었다. 한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신고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접수됐다. 경찰은 김영란법 위반의 소지가 있으나 금액이 경미하고 신고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출동 없이 종결했다.

김영란법 1호 수사 대상의 불명예는 신연희 강남구청장에게 돌아갔다. 신 구청장은 9월 28일 관내 경로당 회장 160명을 초청해 민속촌 등을 관람하고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신고됐다. 경찰은 행사에 참석한 노인들이 ‘공직자 등’에 해당하지 않아서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김영란법 1호 재판 대상은 9월 28일 춘천경찰서 수사관에게 4만5000원 상당의 떡을 제공한 한 민원인이었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떡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해당 수사관에 의해 접수돼 춘천지방법원의 재판을 받게 됐다. 이 민원인은 재판 결과에 따라 2~5배의 과태료를 내야 하는데 최대 22만5000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

권익위가 직접 수사를 의뢰한 사건은 11월 7일에 발생했다. 권익위는 감리자에게 청탁과 함께 현금 300만 원을 제공한 시공사 임원을 대검찰청에 넘겨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예상보다 적은 신고… 파리 날린 ‘란파라치’

경찰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10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112 전화신고가 289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9.6건 접수된 신고 중 수사 대상이 되는 신고는 12건에 불과했다. 이 중 3건이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1건은 재판에 회부하고 2건은 과태료 부과를 통보했다. 나머지 9건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검찰에 송치할 만한 중대한 위반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예상보다 위반 건수가 많지 않음에 따라 위반사항을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기 위해 대기하던 ‘란파라치’들은 파리만 날렸다고 한다. 경찰은 무분별한 신고를 막기 위해 신분을 밝힌 서면 신고만 접수하고, 정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 과장 부친상 조의금 논란

김영란법의 과도한 규제가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법 시행 2주가 된 10월 10일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스승의 날에 선물하는 카네이션이나 교수에게 주는 캔커피가 김영란법 위반으로 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 “경찰서 과장의 부친상에 부하직원이 조의금을 낼 수 없다는 권익위의 해석은 미풍양속에 맞지 않다”라는 지적을 했다.

이에 답변에 나선 황교안 국무총리는 일부 혼란이 있는 점을 인정하고 시행 과정을 모니터링해서 법이 취지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됐던 스승의 날 카네이션에 대해 권익위는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아리송한 해석을 내놓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몸을 사린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 각종 모임 Stop!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4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이들은 광범위하면서도 모호한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공무원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민원인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공무원에게 민원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도 규모를 줄이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영란법의 대상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포함되기 때문에 공직자 부인들의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인근 카페에 모였던 엄마들의 브런치 모임도 규모를 축소하는 모양새다.

 

다양한 김영란법 앱 봇물, 식사권 선물 꼼수까지

위반 여부가 모호한 김영란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다양한 요령이 동원된 가운데 김영란법과 관련된 앱도 다수 출시됐다. ‘영란이’라는 앱은 법을 해석해서 위반사항에 해당하는지를 알려준다. 또 언제 누구를 만나 얼마를 썼는지 기록하는 일지 기능을 제공해 큰 인기를 얻어 출시 일주일 만에 약 4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또 ‘N빵 정산’, ‘김밥’, ‘링마이빌’ 같은 앱들은 더치페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계산해주고 그 결과를 카카오톡이나 문자 등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리브’, 우리은행의 ‘위비뱅크’ 같은 앱들은 더치페이 금액 계산과 함께 직접 송금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이구구’, ‘식신’ 같은 앱들은 3만 원 미만의 메뉴가 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앱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을 소개하고 앱에서 식사 비용을 결제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이 중 ‘식신’은 식사권을 선물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식사권은 선물로 규정돼 5만 원까지 선물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3만 원 이상의 식사가 가능하다.

 

예식장은 무풍지대?

김영란법상 결혼식에서 제공하는 식사 금액에는 한도가 없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식사는 사회 상규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혼주들이 평상시 김영란법을 의식해 대접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고액의 점심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김영란법에는 축의금 상한선이 10만 원으로 규정돼 있다. 하객들은 비싼 식사를 대접받고 10만 원까지 낼 수 있는 축의금을 그 이하로 내는 것이 눈치 보인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예식장들은 화환이 줄어든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회식 감소… 대리기사도 울상

김영란법 시행으로 회식 빈도가 감소하고 규모도 줄어드는 추세다. 회식 감소로 외식업체는 물론 택시기사와 대리 운전기사의 수입도 덩달아 줄었다. 특히 대리 운전기사들은 하루에 한 건의 콜을 받기도 힘들어 대리운전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과거 대리운전의 노른자위여서 많은 기사들이 대기했던 서울 여의도 인근이 이제는 기피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