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보약에서 복날 국민 보양식으로 변신

[음식과사람 2022.07. P.56-59 Discovery] 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여름철 보양식 '삼계탕' ⓒ한국외식신문
여름철 보양식 '삼계탕' ⓒ한국외식신문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머지않아 삼복더위가 시작된다. 올해 초복은 7월 16일로, 이날이면 한국인 대부분은 어김없이 연례행사로 삼계탕을 찾을 것이다. 길게 줄까지 서가며 꽤 긴 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복날엔 왜 삼계탕을 먹는 것일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 전통 복날 보양식으로 알고 있는데, 조상님들은 언제부터 복날에 삼계탕을 드셨을까? 이왕이면 그 이유와 의미, 역사를 알고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먼저 복날 삼계탕을 먹는 이유다. 복날 보양식을 챙겨 먹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다양한 이유를 말하지만 핵심은 여름철 건강 챙기기다. 그 배경엔 이열치열의 논리가 자리한다. 삼복은 일 년 중에서 가장 더울 때이니 이런 날엔 찬 음식보다 오히려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름의 이론적 근거도 제시한다. 더위 탓에 체내의 뜨거운 열이 인체 표면으로 몰려 몸속은 되레 차갑고 허해지므로 뜨겁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 속을 덥혀주고 보양해주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고 일리도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 삼계탕이어야 하느냐는 반문엔 딱히 답변이 궁해진다. 이열치열이 이유라면 삼계탕이 아니어도 뜨거운 음식은 모두 해당된다.

복날 삼계탕을 먹는 또 다른 이유로 전통 풍속을 꼽기도 하는데, 그럴듯하지만 역시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근대 이전의 우리 조상님들은 복날이라고 삼계탕을 먹지는 않았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닭백숙은 먹었을지언정 복날 시절음식으로 삼계탕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언제부터 복날 삼계탕을 먹었으며 복날 왜 보양식을 먹는지 그리고 왜 요즘은 삼계탕을 먹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되돌아오게 되는데, 복날 보양식 삼계탕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복날이 어떤 날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복날의 의미와 보양식의 조건

복날은 예전 음력으로 날짜를 따질 때 썼던 십 간지로 하지 이후 그리고 입추와 처서 사이에 오는 경일(庚日)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하지 후 셋째 경일이 초복,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인데 대략 한 달 남짓이다. 여름 중에서도 가장 무덥고 습한 기간이다.

복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쁜(?) 기운인 음기(陰氣)가 일어나 퍼지려다 양의 기운(陽氣)에 눌려 엎드려 숨은 날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복날이다.

황당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동양철학의 해석이 그렇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면 여름이 절정에 이르러 더위에 몸이 지치고 쇠약해지는 시절, 날씨가 습하고 무더워 온갖 해충이 판치고 전염병이 퍼지는 시절이다. 이런 것을 음기가 숨어 있다고 표현한 것 같다. 어쨌든 그래서 삼복은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계절이다.

복날 보양식의 개념은 여기서 비롯된다. 음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양의 기운으로 가득 찬 음식을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무 음식이나 복날 보양식이 되지 못했던 이유다.

그렇기에 삼계탕을 포함해 보신탕과 육개장 그리고 닭백숙과 팥죽까지, 예전 선조들이 삼복더위에 특별히 챙겨 먹었던 전통 음식엔 다 이유가 있다. 복날 시절음식이 되려면 무엇보다 기본 조건이 맞아야 했다. 첫째, 더위를 쫓아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영양이 풍부하고 특히 이열치열로 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음식이다. 시원한 냉면이 시절음식으로는 인기가 높아도 복날 보양식이 못되는 이유다.

둘째,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들어가니까 복잡해지는데 복날 자체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설명하니 음식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요즘처럼 전복갈비찜이나 장어구이는 여름 보양식으로는 먹었을지언정 복날 보양식으로 삼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돼지고기 역시 복날 음식으로는 먹지 않았다. 음양으로 봤을 때 차가운 기운과 음기가 넘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나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주술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나쁜 기운이 엎드려 숨어 있다는 복날의 성격과 관련이 깊다.

영양 많고 더위를 물리쳐야 한다는 첫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은 많지만 음양오행과 주술적 의미까지 만족시키는 음식은 많지 않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아무 음식이나 복날 음식이 되지는 못했던 이유다.

복날 보양식 삼계탕에 담긴 의미

그렇다면 삼계탕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삼계탕은 사실 근대 이후 현대에 퍼진 복날 음식이고 옛날엔 주로 닭백숙, 영계백숙을 먹었다.

기본적으로 닭고기엔 복날 음식에 필요한 필요조건이 두루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도 복날 닭고기가 좋은 이유는 닭이 동양철학과 의학에서 말하는 양기가 넘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닭을 양기가 가득한 동물로 보았다. <주역>에도 닭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새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닭백숙이나 삼계탕은 닭 중에서도 주로 어린 닭인 영계로 요리한다.

흔히 영계를 어린 닭으로 알지만 우리 상식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영계는 단순히 어린 닭이 아니라 특별한 닭이다. 명나라 의학서 <본초강목>에 영계는 특별히 석영을 먹여 키우는 어린 닭인데 쇠약해진 양기를 되살리는 데 좋다고 설명한다. 허약해진 기운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른 사람은 몸에 살이 오르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니 영계를 먹으면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추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삼계탕은 이런 닭에다 인삼을 비롯한 각종 한약재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인삼은 약효가 널리 알려진 데다 효과가 워낙 다양하니 특별히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몸을 덥혀주는 양의 기운이 강한 약재다. 그러니 양기를 북돋우는 닭고기와 어우러져 양기를 더욱더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삼계탕이 훌륭한 복날 보양식이 되는 까닭이다.

닭고기에 양기가 넘치니 복날 보양식이 된다는 것은 음양에 따른 해석이고, 오행(五行)에 따른 해석은 또 다르다. 오행에 따르면 복날은 쇠(金)에 해당하는 날이니 불(火)에 속하는 음식을 먹어야 쇠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 불이 쇠를 녹이기 때문인데 보신탕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닭은 흙(土)의 성질에 속한다. 이 때문에 복날 쇠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물리칠 수 없다. 그래서 평온한 흙의 성질을 지난 닭에다 인삼의 따뜻한 성질을 더한 삼계탕을 먹으면 복날 쇠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복날 먹는 삼계탕엔 주술적 이유도 있다. 닭은 귀신을 쫓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새벽에 닭이 울면 어둠 속에서 밤새 활동하던 귀신들이 모두 사라진다. 이 때문에 닭에는 귀신을 쫓는 축귀와 나쁜 기운을 없애는 벽사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복날 필요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음식이 바로 삼계탕이다.

18세기 그림에서 엿보이는 삼계탕… 대중화는 현대에

그러면 이런 삼계탕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삼계탕이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보양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삼계탕과 관련된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전통 보양식이라지만 역설적으로 대중화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이유는 워낙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민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삼계탕을 먹게 된 것은 1970년대 전후다. 이전의 삼계탕은 복날 보양식이라기보다 부자들이 먹는 보약에 가까웠다. 병을 앓고 난 후, 혹은 삼복더위에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려고 먹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귀한 고려인삼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반인은 인삼을 넣지 않은 영계백숙으로 몸보신을 했을 뿐이다.

삼계탕이 얼마나 귀했는지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생활풍속 자료집>엔 여름철이면 암탉의 배에 인삼을 넣어 우려낸 국물을 약으로 마시는데 중산층 이상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기록이 보인다. 더 이전인 조선 후기엔 삼계탕을 아예 음식이 아닌 약으로 취급했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을 정립한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 삼계탕 관련 기록이 보인다. “소음인의 치료에는 닭과 인삼이 효과가 있다”고 적어놓았으니 양기를 보충하는 치료약으로 지금의 삼계탕을 처방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닭과 인삼을 함께 처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으로서 삼계탕의 뿌리는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영조 때 궁중화가였던 변상벽이 그린 닭 그림이 있다. 어미와 아비 닭이 새끼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자웅장추(雌雄將雛)’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한편의 시가 적혀 있다. “의사에게 들은 신묘한 약을 달여야겠는데 닭고기에 인삼과 백출(白朮)을 함께 섞으면 기묘한 효과를 볼 것”이라는 내용이다.

후배 화가가 써넣은 시제로 알려져 있는데 당대의 궁중 어의가 그린 닭 그림을 보고 잡아먹을 궁리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만 어쨌든 닭과 인삼을 함께 요리한 음식, 삼계탕을 의사들이 신비한 효과를 내는 묘약으로 표현했다.

올여름엔 복날 삼계탕을 먹으며 신묘하다는 효과를 확인해보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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