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 내림음식-  경기 여주

[음식과사람 2022.07. P.69-71 Recipe]

전통한옥 ⓒ한국문화원
전통한옥 ⓒ한국문화원

사라져가는 전국 팔도의 우리 음식을 찾아내고 지키기 위해 각 지방과 집안에 전해져오는 ‘내림음식’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 각자의 어린 시절 집안에서 먹어오던 음식을 통해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고, 재현하고, 비교해보고, 후손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이들이다. 이분들이 공들여 완성해낸 명가 내림음식 레시피를 <음식과 사람>에 소개한다. 

editor 김진수


할머니의 손맛이 이끈 양조인의 꿈 
경기 여주 이숙 선생 댁 – 순향주, 홍삼꿀육포, 계당주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경기도 수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ㅁ자 형태의 기와집, 우물, 아궁이가 있는 부엌, 제사 때 나오는 유기그릇, 안방과 건넌방을 잇는 마루, 소여물 끓이는 냄새, 사랑방, 시루, 장독대 등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자랐고 전통음식의 뿌리와 문화를 누리고 살았다.

내가 술도가를 시작하고 전통음식을 연구하며 한복을 사랑하고 국악을 남달리 아끼는 것도 할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니 할머니의 술광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던 향기와 소리가 그립다.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팥시루떡, 꿀로 졸여 만든 무정과, 화로에 구운 가래떡을 찍어 먹던 쌀 조청, 술지게미에 생강·대추·배 등을 넣고 끓인 모주, 먹기 편하게 생강설탕가루를 만들어 찍어 먹게 했던 도라지정과 등 할머니의 손맛이 나이 들수록 점점 더 그리워진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엔 집안의 맏며느리인 어머니께서 제사와 차례를 지내셨다. 서울로 이사해 시골 풍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할머니께서 하신 대로 바람 불고 날이 선선해지면 육포를 말리고 햅쌀로 순향주와 막걸리를 빚고 명절이면 친척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준비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할머니의 손맛 중에서 특히 육포와 무정과, 술 빚는 일에 정성을 다하셨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제2의 고향 여주에서 양조인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예부터 쌀, 물, 누룩, 온도, 그릇(항아리), 위생 6가지 재료(六材)가 좋아야 술을 빚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선사유적지에서 ‘탄화미(炭化米)’가 출토된 쌀의 발원지 여주는 술을 빚기엔 최적지였다. 망설임 없이 여주로 귀촌했다. 그리곤 ‘추연당(䣯緣堂, 맛있는 술로 인연을 맺은 집)’이란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했다. 지금은 진상미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맛있는 우리 술을 빚을 꿈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를 그립게 하는 순향주(醇香酒)

시루에 고두밥을 찌는 날이면 시룻번을 붙이는 일이 소꿉장난처럼 재밌었고, 고두밥이 다 쪄진 다음 시루에서 시룻번을 떼어 먹으면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제사도 많고 행사도 많아서 할머니의 술광엔 항상 술이 익고 있었다.

술광엔 높은 독도 있었는데 술 익는 모습을 보려고 까치발을 딛고 낑낑대는 내 모습을 보신 할아버지께서 나무 발판을 만들어주셔서 술 향기, 술 익는 모습, 술 익는 소리를 마음껏 보고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항아리에 맑은 술이 올라오면 다른 항아리로 옮겨 보관했다가 차례 지낼 때 제주로 사용하셨는데, 한복 차림에 머리에 작은 은비녀로 쪽을 찐 채 술을 빚으시던 모습은 지금도 내겐 경이로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재료 및 분량 
밑술 멥쌀 4kg, 물 4L, 누룩 1kg, 밀가루 60g  1차 덧술 멥쌀 6kg, 끓여 식힌 물 6L  2차 덧술 멥쌀가루 400g, 찹쌀가루 600g, 물 1L

만드는 방법   
밑술
1 멥쌀을 7시간 정도 불린 다음 건져서 1시간 정도 물을 빼고 가루를 내어 물 700ml를 붓고 체에 내린다. 
2 찜기에 물을 넣고 끓어오르면 면보를 깔고 수분을 준 쌀가루를 올린다. 김이 오르기 시작하면 15분 찌고 불을 끈 후 10분 뜸을 들인다.
3 물 3L를 끓여서 뜨거울 때 뜸들인 백설기에 부어 풀어준 뒤 차게 식혀 누룩을 넣고 23~25℃에서 이틀간 발효시킨다. 

1차 덧술
1 멥쌀을 7시간 정도 불린 다음 1시간 정도 물을 뺀다. 이후 김 오른 찜기에 올려 1시간 동안 쪄준 후 펼쳐서 식혀준다. 
2 식힌 고두밥과 끓여서 식힌 물, 밑술과 혼합해 발효시킨다.

2차 덧술
1 1차 덧술이 익을 무렵인 14일 정도 후에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로 죽을 쑤어 식힌 뒤 1차 덧술 위에 살살 끼얹어준 후 5일간 발효시킨다.

Tip
1 불린 멥쌀을 잘 익혀야 발효가 잘되며, 술의 향과 맛이 아름답다.

할아버지의 건강식, 홍삼꿀육포 

가을 즈음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홍삼꿀육포는 별미 중 별미였다. 마른 체구에 평소 식사량이 적고 약주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인삼을 구증구포(九蒸九曝)하여 건조시켜 보관했다가 차로 달여 드리거나 음식 만드는 데 많이 활용하셨다.

안주로는 꿀에 홍삼을 넣고 달인 간장달임장으로 육포를 만들어 꾸덕꾸덕 말려 잘 보관했다가 살짝 구워 저녁 간식이나 손님의 주안상으로 내주셨다. 지금 내가 편식을 안 하고 무엇이든 잘 먹는 건 모두 할머니 덕분이다.

재료 및 분량 
쇠고기 6kg, 청주 2컵, 설탕 1컵  채소물 : 물 6컵, 양파 2개, 마늘 100개, 대파 2대, 배 1개, 통후추 1큰술, 건고추 3개, 홍삼 10g  간장달임장 : 채소물 2컵, 간장 2½컵, 청주 1컵, 설탕 1컵, 꿀 1컵  찹쌀풀 : 물 2큰술, 찹쌀가루 1큰술, 물엿 1큰술  고명 : 고추씨, 잣, 호박씨, 대추, 행인

만드는 방법   
1 쇠고기는 0.6cm 두께로 포를 떠서 기름기를 떼어내고 청주와 설탕을 넣고 주물러서 마른 면보로 덮어 눌러가며 핏물을 뺀다. 
2 냄비에 채소물 재료를 넣고 2컵이 되도록 끓인 후 간장달임장 재료를 넣고 5컵의 간장물이 되도록 끓인다.
3 간장달임장이 식으면 쇠고기를 넣고 양념이 잘 흡수되도록 주물러 채반에 펴서 널어 자주 뒤집으면서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4 냄비에 찹쌀풀 재료를 넣고 투명하게 풀이 되도록 쑨 뒤 식힌다. 
5 잘 마른 육포에 찹쌀풀을 조금씩 발라가며 고추씨, 잣, 호박씨, 대추, 행인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Tip
1 쇠고기를 0.2cm로 얇게 포를 떠서 양념하여 잣을 3개 넣고 반으로 접어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동그란 모양으로 오리면 육포쌈이 된다.  
2 쇠고기는 우둔이나 홍두깨살과 같이 기름기 적은 부위를 사용한다.

계피 맛 스며든 계당주(桂糖酒) 

계피를 좋아한 할아버지는 계피를 구해오면 항상 한지에 싸서 보관하셨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난 지금도 계피가 든 음식을 즐겨 먹는다. 겨울에 수정과를 만들 때 할머니께서는 가끔 맑은 술을 소줏고리에 내리셨다.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출구 밑에 계피를 받쳐놓고 작은 항아리에 술을 받으셨다. 술을 내리는 날은 아궁이의 불씨가 안정되면 고구마를 구워 동치미랑 함께 먹는 날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주 작은 독에 술을 담아 보관했다가 손님이 오면 꿀을 섞어 한잔 두잔 드셨다. 손님이 가시면 사랑방에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민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재료 및 분량 
약주(맑은 술) 30L, 계피 110g, 꿀 150g

만드는 방법 
1 베주머니에 계피를 넣는다. 
2 항아리에 준비한 계피와 꿀을 함께 넣는다. 
3 소줏고리에 증류할 약주(맑은 술)를 준비하고, 계피와 꿀을 넣은 항아리 안에 증류주를 받는다. 
4 기호에 따라 계피 주머니는 3~5일 사이에 건져낸다.

Tip
1 증류는 두 번 이상 하면 더 맛에 깊이가 있다.
2 계피와 꿀은 소주를 마시기 전에 기호에 맞게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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