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 이야기

[음식과사람 2022.07. P.76 Food  Essay]

한정식 ⓒpixabay
한정식 ⓒpixabay

editor 윤동혁

오랜 세월 벼르고 별러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존경할 만하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그 집의 상호는 ‘여보~밥 줘’였는데 당연히 밥보다는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별 흥미 없는 집이었다. ‘여보~술 줘’였으면 벌써 문 열고 들어섰을 그 집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지 어찌어찌 찾아가서 밥 대신 술을 달라고 했다. 홀이 넓고 테이블도 일반 식당의 두 배쯤 널찍한 건 마음에 들었다.

밑반찬이 먼저 그 널찍한 테이블에 놓이기 시작했다. 김치, 멸치, 달걀전… 고사리, 오가피잎장아찌까지는 알아보겠는데 커다란 가지가 속에 무언가 품고 올라왔을 땐 약간 당황스럽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는 술을 마시러 왔는데 왜 이런 안주를 내놓는가 말이다.

“아마 처음 맛보시는 것일 텐데 ‘가지쟁김치’라고 개성 사람들 먹는 가지김치입니다.”

가지 안에 김칫소를 넣어 장아찌처럼 절인 음식이다. ‘개성의 여름 별미’라는 가지쟁김치.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그런데 소주나 맥주 마시려고 잠깐 들른 사람에겐 고맙긴 하나 뭔가 코드가 맞지 않는 안주임이 틀림없었고, 나는 음식 칼럼 쓰는 사람이라고 신분을 밝힌 뒤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바쁘니 다음에 하자고 했다.

그 후로 세 번에 걸쳐 짤막짤막한 취재가 진행됐는데 이분의 안주(반찬) 만들기는 30년에 걸친 한풀이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올해 막 예순 고개를 밟았는데 서른세 살에 혼자되었고 두 아들 키우면서 꿈은 딱 하나, 내 식당 차리는 것이었다.

설거지와 잔심부름 3년 하고서 찬모가 되어 무공을 닦기 시작했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장분연 여사는 3, 4년에 한 번씩 식당을 옮겨가며 새로운 무술을 연마하고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여보~밥 줘’를 차렸다는 것이다.

25년 배운 무술이란 첫째가 ‘육수’ 우려내는 것이라고 했다. 육수(?)갈치조림을 예로 들었다. 물에다 멸치액젓, 된장, 간장 넣고 졸이면서 갈치무(갈치조림에 어울리는 무가 있다고 했다)를 푹 익힌 다음 갈치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육수는 매일 새로 뽑는다.

된장찌개 육수는 더 복잡하다. 다시마를 10분쯤 달달 끓이고서 무, 양파, 파뿌리 넣고 1시간 30분 달인 다음 멸치, 북어머리, 디포리(납작멸치)를 넣고 또 끓인다. 꽤 복잡하네요, 했더니 “그 건더기 다 건져내고 또 끓여야 해요”라고 받아치는 것이었다.

아니, 다시다 한 숟갈 넣고 뽀글뽀글 끓여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텐데 무슨 한이 서려도 제대로 서렸구나. 어쨌든 그 육수에다 된장(재래 60%, 공장 40%) 풀고 두부, 버섯 넣어서 다시 끓인 된장찌개는 별미였다.

국산 태양초와 신안 천일염 사용하는 건 기본이라는데 그래도 뭐가 남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장 여사는 지금 얼마 버느냐가 문제 아니라 25년 찬모의 무예 기술을 선보이고 있을 뿐이니까.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