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의 ‘경제 돋보기’

[음식과사람 2022.08. P.50-53 Marketing Point]

2023년 최저임금 9620원… 노사 모두 ‘불만’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시간당 9160원(월 노동시간 209시간 기준 191만4440원)보다 460원(5%) 오른 9620원으로 결정됐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01만580원(209시간 기준)이다.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200만 원을 넘어선 것은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1988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노사를 대표한 위원들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자 정부를 대표하는 공익위원들이 단일안을 제시하고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앞서 노사 양측은 각기 최초 제시안 1만890원과 동결로 협상을 시작한 이후 2~3차례 수정안을 통해 1만80원과 9330원을 각각 제시하면서 750원까지 격차를 좁혔지만 끝내 합의엔 실패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결국 단일안을 표결에 부쳐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위원 중 4명과 사용자위원 9명 전원이 퇴장했다. 결국 찬성 12표, 반대 1표, 기권 10표로 공익위원들의 단일안이 가결됐다. 8년 만에 법정시한을 맞췄다고는 하지만 노사 모두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을 공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최저임금을 2018년 16.4%, 2019년 10.9% 두 자릿수로 인상하면서 시간당 1만 원을 강력히 밀어붙였지만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2020년 2.9%, 2021년 1.5%, 2022년 5.1%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에서 9160원으로 2690원(41.6%) 올랐다. 5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7.2%였다. 이전 박근혜 정부 4년 평균 7.4%에도 못 미쳤다.

이번에 1만 원대 진입을 목표로 했던 노동계는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삭감이나 마찬가지”라며 올해 엄청난 물가상승률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낮은 인상률로 말미암아 저임금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반면 소상공인 단체는 “근근이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밀어낸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편의점을 운영하는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주가 주 5일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상된 최저임금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커지는 인건비 부담에 심야 할증제 카드를 꺼냈다.

편의점주들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편의점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물건값의 5% 정도를 올려받겠다는 취지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만큼 늘어난 임금을 감당하기 위해선 심야시간의 5%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택시나 배달 라이더들처럼 새벽 시간대에 할증요금을 받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편의점주들은 설명한다.

다만 편의점주들이 요구하는 심야 할증제가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판매 가격을 편의점 본사가 결정하는 구조인 데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2024년 최저임금도 알 수 있다(?)… 최저임금 계산식 논란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의 근거로 최저임금 계산식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더한 후, 취업자증가율 전망치를 빼는 식이다. 이들 전망치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3곳의 전망치를 평균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기관들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2.7%)와 소비자물가상승률(4.5%)을 더한 후 취업자증가율(2.2%)을 빼면 정확히 5.0%가 나온다. 이 계산식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한 중요한 근거라는 얘기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2024년 최저임금 계산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5%, 소비자물가상승률을 3.0%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 취업자는 15만 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증가율로 따져보면 1% 미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최저임금 계산식에 대입하면 202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5% 정도다. 결국 2024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100원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장률 전망치가 시시때때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4월 5일 첫 만남을 시작으로 근 석 달 가까이 노사정 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겨운 협상을 이어온 것을 감안하면 결과는 허탈할 정도다. 특히 최저임금법에 정한 결정 기준인 생계비, 노동생산성, 노동소득분배율과 유사근로자 임금 등 4가지 기준이 최저임금 계산식엔 반영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결정방식임을 주장하지만 노사 양측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올해는 특히 경영계가 요구해온 업종별 차등 적용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도입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 취지에 반한다며 강력히 반대해 결국 올해 도입은 무산됐다. 다만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업종별 차등화 연구용역을 권고하기로 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매년 경영계가 주장해온 사안이다. 최저임금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 1988년 첫해만 시행했을 뿐 이후엔 적용된 적이 없다. 경영계의 주장은 고용주의 규모, 대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물가와 고용 여건, 지불 능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데 전국 모든 사업장에서 똑같이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이 이미 최저임금을 연령이나 지역, 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허용된 업종별 구분 적용부터라도 우선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선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고 미국, 영국, 캐나다와 네덜란드 등지에선 근로자의 연령대별 차등화가 적용되고 있다.

‘을과 을의 대결’ NO! 최저임금은 ‘복지’로 접근해야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A씨. 한 달 일해서 버는 200만 원으로는 학자금 대출 이자는 고사하고 매달 내는 주택 월세와 교통비, 점심값만으로도 빠듯하다. A 씨는 요즘 인기 있다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투잡을 뛰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새벽부터 음식점에 나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시는 부모님. 인건비 부담 때문에 아르바이트 학생 1명을 내보내고 부부가 운영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자재값 인상으로 음식값을 올려야 하나 고민이지만 단골손님 뺏길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2년 정도 정상적인 영업을 못 한 상황에서 모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장사를 제대로 해보려고 하니 건물주로부터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음식점 사장님의 월급은 150만 원 남짓인데 아르바이트생에게 월급 200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하니 임금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누가 사장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 내가 이러려고 장사를 시작했나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수는 109만3000~343만7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불 능력이 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 자영업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제 아르바이트생과 영세 자영업자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양측 모두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더 이상 최저임금제도를 을(乙)과 을의 대결로 몰아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은 근로자들의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제도로 1988년 도입된 이래 꾸준히 올라 내년엔 월 환산 200만 원을 돌파했다. 앞으로 300만 원, 400만 원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상 매년 오르는 최저임금을 감내할 만한 자영업자 비중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최저임금제도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금도 일자리안정자금과 근로장려금 등 최저임금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있다. 일자리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30인 미만 고용주(사업주)에게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또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를 돕기 위해 근로장려금을 매년 지급하고 있다.

물론 많은 재원이 소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저소득 취약계층과 영세 소상공인 지원으로 소득 양극화가 다소나마 개선된다면 세금을 내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런 복지제도를 발전시켜 더 이상 최저임금제도가 을과 을의 대결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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