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 이야기

[음식과사람 2022.08. P.72 Food  Essay]

상호를 가린 간판 ⓒ한국외식신문
상호를 가린 간판 ⓒ한국외식신문

editor 윤동혁

“한국 국회에서 탄생하는 법안은 규제 대상이 아니던 것을 새로 규제하거나, 국민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나눠주는 것, 기존의 규제·처벌을 더 강화하는 것 등 세 유형뿐이다.”

국회에서 하루 3건씩 ‘규제’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이 새로 나올 때마다 꼭 하시는 말씀, 쓸데없는 규제를 풀어서 우리 경제가 더 활성화하도록 하시겠다고 하는 그 공약이 지켜지기는커녕 안 보이는 곳에서 (심지어는 보이는 곳에서도) 규제가 더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규제’는 한번 시행되자마자 20년이 지나가는데도 확고부동, 도대체 변할 줄 모르고, 더 답답한 것은 당하는 당사자들조차 그러려니 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나라 모든 식당 주인들께서 들고일어나야 마땅하지만 이젠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자, 영상으로 보여드리겠다. 한 외국인이 소문난 서울의 한 전통시장으로 들어선다. 외국인을 따라가던 카메라가 위쪽을 향하며 그곳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그때… 모자이크가 삭 가려버린다. 그곳은 광장시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외국인이 찾아가는 장소가 광장시장이란 걸 알면 안 되게 돼 있다.

하나 더, 이 장면은 여러 번 노출되었으므로 아시는 분들 많을 것이다. 전북 순창에 가서 고추장 촬영하자면 고추장 거리 전경 한 커트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 전경이 어떻게 처리되는가. 수십 군데의 간판을 모두 모자이크 친다. 마치 간판이 달린 높이에 뿌연 안개가 길게 서린 풍경이다. 한심하지 않은가. 한쪽에선 이제 K-푸드라고 들썩들썩하는데, 방송은 이게 무슨 꼴불견이란 말인가.

‘고독한 미식가’를 한편이라도 안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간판을 가리던가? 키다리 아저씨가 식당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일 때 모자이크가 동원되던가? 대부분의 일본 방송에선 프로그램 말미에 그 식당의 위치, 전화번호, 주차장 여부까지 ‘친절하게’ 표기해준다.

일본만 예외인가? 세계 어느 나라 방송이 식당을 포함해서 모든 간판이 화면에서 뿌옇게 가려지도록 통제한단 말인가. 명동 거리 전체의 간판을 모자이크로 처리해야만 방송의 공영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관리하시는 나라에서 우리 음식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모르겠다.

간판은 그 식당의 얼굴이고 주인의 경영철학을 엿보게 할 수도 있으며, 만들기에 따라서는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담당 피디가 식당 주인과 은근슬쩍 담합해서 돈 몇 푼 받고 간판을 찍어주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있는 규제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식당 운영자나 피디들뿐 아니라 모든 시청자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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