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월호

[음식과 사람 2017-1 P.62 Ingredient]

 

 

닭의 해인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우리 선조들은 정초가 되면 닭 그림을 대문이나 집 안에 붙여놓고 한 해의 행운을 빌었다. 닭은 대표적인 보양식이기도 하다. 더운 복날을 비롯해 속이 허하거나 기력이 없을 때마다 닭고기를 찾았다. 닭은 이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해왔다.

 

editor 강보라

 

정유년은 붉은색을 의미하는 ‘정(丁)’과 12간지 중 닭을 뜻하는 ‘유(酉)’의 해로, ‘붉은 닭’을 뜻한다. 닭은 12간지 동물 중 유일하게 날개 달린 짐승으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여겨졌다.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가 벼슬과 통하기 때문에 벼슬을 얻는다는 뜻이 있고, 매일 알을 낳아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등장했다. 전통 혼례를 치를 때는 닭을 보자기에 싸서 혼례상에 올린다.

이것은 매일 알을 낳는 닭처럼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다산, 알을 품는 모성애를 의미한다. 또 수탉처럼 가족을 지키는 남편의 도리와 암탉처럼 알을 많이 낳고 새끼를 잘 키우는 아내의 도리를 기원했다.

새벽을 알리는 닭은 예나 지금이나 길조로 여긴다. 밤과 낮의 경계인 새벽에 닭이 울면 새 날이 밝는다. 이 때문에 닭은 창조 신화나 탄생 설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는 닭 우는 소리로 태초의 이미지를 표현했고, 경주 김씨의 시조가 태어난 숲에서 닭이 울었다 하여 그곳을 계림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조상을 모시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메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닭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존재였기에 닭이 제때 울지 않거나 다른 시간에 울면 불길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한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며, 해가 진 뒤에 울면 집이 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모님 씨암탉 잡숴봤수?”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귀한 음식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에 닭은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다. 시골에서 암탉은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귀한 손님에게 씨암탉을 대접하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닭을 키웠다. 닭은 계란을 얻기 위해 집에서 키우는 귀중한 가금류였다.

달걀은 날마다 생산되었지만, 그래도 귀한 음식이었다. 손님이 와야 달걀찜이 상에 올라왔고, 먼 곳으로 떠나는 길손에게는 삶은 달걀을 싸주었다. 더러는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또 친척의 생일이나 결혼, 환갑 같은 큰 행사에 짚으로 달걀 꾸러미를 싸서 부조를 하기도 했다. 닭은 보통 하루에 하나의 알을 낳기 때문에 이것을 모아두었다가 10개가 모아졌을 때 한 꾸러미를 만들었다. 이것을 모으는 정성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요한 행사를 치르거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는 닭을 잡기도 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처럼 사위가 처가에 오는 날, 장모는 으레 씨암탉을 잡았다. 장모가 사위에게 씨암탉을 먹이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집에서 가장 귀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장모의 마음은 기본이다.

닭이 양기 넘치는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을 낳는 씨암탉을 먹고 다산하라는 바람도 담겨 있다. 닭이 귀신을 쫓고 새벽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으니, 장모가 사위에게 바라는 덕목을 모두 갖춘 셈이다.

 

“나, 과거엔 비싼 몸이었어!”

닭 한 마리=쇠고기 2.4kg, 달걀 10개=쇠고기 600g과 맞먹어

우리나라에서 닭을 기르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경주 천마총에서 계란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닭 사육 역사가 장구하지만, 1960년대 이전에는 농가에서 몇 마리의 닭을 마당에 기르는 정도였다. 물론 가격도 비쌌다. 1930년대 닭 1마리 가격은 2원으로 쇠고기 2.4kg과 맞먹었고, 달걀 10개가 쇠고기 600g 가격과 같을 정도로 비쌌다.

닭고기가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중반, 고기를 얻기 위한 육계가 대규모로 사육되면서부터였다. 부화한 지 30~40일 만에 1300~1500g으로 자라나는 육계종이 보급되고 닭고기 공급이 늘어나면서 요리 방법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종래의 삼계탕, 닭볶음탕의 보신 개념에서 벗어나 전기 통닭구이, 장작 숯불 통닭구이 같은 별식이 선을 보인 것이다. 기름에 튀겨 파는 통닭에 한국식 매콤달콤한 양념을 가미한 양념통닭의 등장은 닭고기 소비 증대에 큰 몫을 했다. 1970~80년 사이에는 소비량도 부쩍 늘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닭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입점한 것이다. 이 덕분에 치킨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치킨은 맥주와 함께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치맥(치킨+맥주)’ 관광 코스를 만들어낼 정도다.

 

“시대를 초월한 보양식”

삼계탕, 임자수탕, 초교탕, 초계탕… 변함없는 맛과 영양

닭고기는 갓 잡은 것일수록 맛있다. 다른 고기에 비해 부패되기 쉬워 구입 후 바로 조리해서 먹는 것이 좋다. 닭고기는 단단하고 껍질막이 투명하며 크림색을 띠고 털구멍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이 좋다. 살짝 눌러보았을 때 탄력이 느껴지고 윤기가 도는 것을 선택한다. 살이 너무 흰색을 띤다면 오래된 것이니 되도록이면 엷은 분홍빛이 나는 것으로 고르는 게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닭은 성질이 따뜻하고 오장의 허약 증상을 다스리고 기력을 늘린다’고 적고 있다. 닭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부드럽고 질기지 않아 소화 흡수가 잘된다. 병치레를 한 뒤에 섭취하면 허한 기를 보해주며 성장기 아이의 발육을 돕는다. 몸이 나른하고 지칠 때 섭취하면 좋은 음식이다.

전통적인 닭요리는 찹쌀을 넣고 푹 고아 만든 닭백숙이나 삼계탕이 있다. 특히 복날에 먹는 삼계탕은 제일로 꼽힌다. 어린 닭의 뱃속에 인삼, 밤, 대추, 마늘, 찹쌀 등을 가득 채우고 돌솥이나 뚝배기에 끓여내 뜨겁게 먹는 보양식이다.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이열치열의 참뜻을 실천하는 셈이다. 깨(임자)를 넣어 끓인 임자수탕도 복날 음식 중 하나다.

닭을 푹 삶아 건져 살은 뜯어놓고 닭 육수는 기름기를 걷어내고 차게 식힌다. 이때 흰깨를 볶아 닭 국물을 붓고 갈아서 체에 거른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고명으로는 고기 완자와 오이, 고추, 표고 등에 녹말가루를 묻혀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고, 황색 지단과 미나리 지단을 올린다. 대접에 닭고기와 고명을 두루 얹고 깻국을 부어내는 음식이다. 임자수탕은 깨의 고소함과 닭 국물이 잘 어우러져 맛도 좋고 영양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

궁중에서 즐기던 초교탕도 유명하다. 삶은 닭고기를 가늘게 가르고 도라지, 표고, 미나리 등을 밀가루, 달걀과 반죽해 한 수저씩 장국에 떠 넣어 끓인 것이다. 비슷한 이름의 닭요리로 초계탕이 있는데 이는 닭을 토막 내어 끓이다가 오이, 석이, 표고, 목이 등을 골패형으로 썰어 볶아 넣고 달걀 지단을 올린 탕이다. 차갑게 먹기도 한다.

요즘은 닭으로 맵게 끓인 국을 육개장에 비유해 닭개장이라고 하는데, 닭을 푹 삶은 다음 살을 뜯어서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해 육개장처럼 맵게 끓인 것이다. 얼큰한 닭개장 한 그릇이면 겨울 추위를 거뜬히 날릴 수 있다.

 

“먹으면서 살 빼는 고기”

다이어트, 노화 방지… 현대인을 위한 고단백 영양식

닭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근육섬유가 가늘고 연해 소화 흡수가 잘되기 때문에 위가 약한 환자나 노인, 어린이에게 좋다. 또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높다. 특히 닭가슴살은 단백질을 23.1%나 함유하고 있는 고단백 식품이다.

닭고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질도 우수해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장과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 부위별 단백질 함유량은 다리살 18.8%, 가슴살 22.9% 등이다. 다른 육류에 비해 칼로리가 매우 낮아 체중 조절이 필요한 사람, 회복기 환자, 신체 활동이 적은 노인,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다.

닭고기는 지방이 적어 맛이 담백하고, 전체 지방의 3분의 2 정도가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다른 육류보다 필수지방산이 많다. 이 밖에도 비타민A가 쇠고기의 10배 정도 많고, 필수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돼 있다.

닭고기는 돼지고기, 쇠고기는 물론 같은 백색육인 생선류보다도 낮은 칼로리를 지니고 있다. 껍질을 제거한 살코기는 100g당 100~110㎉에 불과해 다른 육류에 비해 월등히 낮을 뿐 아니라 일부 생선류(꽁치 165, 고등어 183㎉)보다도 저칼로리 식품이다.

닭고기의 필수지방산은 16% 이상으로 육류 중 가장 높은데, 특히 불포화 지방산 중에서 리놀렌산의 함량이 15.9%로 매우 높다. 이는 피부의 노화 방지와 건강 유지로 젊은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필수지방산은 체내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식품으로 공급을 해줘야 하는데, 닭고기에는 다양하고 우수한 필수지방산이 많이 있어 특히 좋다. 여기에 닭고기에 함유된 리놀렌산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 동맥경화나 심장병 예방에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혈액의 점도를 적절히 유지해주기 때문에 인체 내 생리 활성 기능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서도 다이어트가 가능한 것이 닭고기다.

 

“닭 날개 먹으면 바람난다고?”

콜라겐 풍부… 피부 보호, 강장 효과 좋아

‘닭 날개를 먹으면 바람 난다’는 속설도 있다. 닭 날개에는 살코기가 별로 없고 지방이 적당해 독특한 감칠맛이 있다. 그래서 다른 부위에 비해 질감이 쫄깃하며 끈끈하다. 이 끈끈한 물질을 뮤신(Muci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강장식품으로 알려진 장어나 곰 발바닥, 상어 지느러미, 달팽이 등의 끈끈한 성분과 같다. 뮤신의 한 종류인 콘드로이친황산은 피부를 구성하는 성분으로, 탄력 있는 피부일수록 함량이 높다.

닭 날개에는 콘드로이친황산을 함유한 콜라겐 성분이 많아 노화 방지와 강장 효과가 있다. 일부에서는 닭 날개가 맛있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하려고 지어낸 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영양학적으로 따져보면 닭 날개를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고 예뻐지기 때문에 생긴 말로 보인다. 항간에는 임산부가 닭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피부가 닭살처럼 된다,

산모가 닭을 먹으면 젖이 삭는다는 말도 있다. 이 때문에 임신 중에 닭고기를 기피하는 임산부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닭고기는 임산부에게 더없이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미역국에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는 것을 권해도 좋을 정도로 영양학적으로 완벽하다.

 

“AI에 쫄지 마!”

75℃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바이러스 사멸, AI 걸린 닭은 달걀 아예 못 낳아

흠잡을 것이 없는 닭고기에도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겨울마다 조류인플루엔자(AI)라는 반갑지 않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다. AI는 야생 조류나 닭, 오리 등 가금류에 감염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에게 오염된 물, 분변, 먼지 등이 눈, 코, 입 등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닭 소비가 크게 줄기도 한다. 닭을 재료로 하는 외식업도 타격을 입는다. AI가 사람에게도 옮길 수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것이다. 비위생적인 도축 환경에서 AI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닭과 오리는 현대적인 시설에서 도축되고 있다.

도축 후에는 전수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AI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 설사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고기가 유통되더라도 75℃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바이러스가 사멸하므로 일상적인 조리 방법만으로도 감염을 막을 수 있다.

AI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는 알을 낳지 못하기 때문에 달걀이나 오리 알을 먹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AI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새 도래지나 가금류 농장 방문을 피하고 야생 조류 사체를 만져서는 안 된다. 일반 독감과 마찬가지로 손을 자주 씻는 것이 도움이 된다. 손을 씻을 때는 30초 이상 씻고, 밖에서는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중국에서 발생한 AI 인체 감염 사례 중 대다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닭과 생오리를 만지거나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사람 간의 전파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방역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계절마다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닭고기는 가장 안전하고 친숙한 식재료다.

오랜 시간 함께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검증된 식재료라는 말이기도 하다. 닭고기가 있어서 서민들의 식탁이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2017년, 닭과 함께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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