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의 ‘경제 돋보기’

[음식과사람 2023.07. P.56-59. Marketing Point]

임대주택 ⓒPixabay
임대주택 ⓒPixabay

editor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

전체 전세의 절반 이상이 역전세 위험

전셋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집주인이 제때 전세보증금을 내주기 힘든 이른바 ‘역전세’ 위험에 노출된 가구가 전체 전세 가구의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역전세 위험 가구는 102만6000가구로 전체 전세 가구의 52.4%에 달했다.

지난해 1월 기준 역전세 가구가 51만7000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매매 시세가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깡통전세’ 위험 가구 비중도 2.8%(5만6000가구)에서 8.3%(16만3000가구)로 세 배 급증했다.

역전세 주택을 지역별로 보면 경기·인천이 56.5%, 비수도권 50.9%, 서울이 48.3% 순이었다. 이처럼 서울과 수도권에서 역전세난이 심화되는 이유는 바로 전셋값이 절정에 달했던 2년 전에 비해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급락했기 때문이다.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2021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초까지 정점을 찍은 이후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의 전셋값 추이를 보면, 역전세 주택의 전세금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평균 7000만 원가량 낮았다. 기존 보증금과 현재 보증금의 격차가 큰 상위 1% 가구는 무려 3억6000만 원이나 격차가 벌어졌다. 집주인 입장에선 평균 7000만 원이나 3억6000만 원을 임차인에게 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또한 매매가를 추월한 전셋값은 평균 2000만 원 정도 매매가를 웃돌았다. 상위 1% 깡통주택은 전셋값이 매매가와 1억 원 이상 차이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 대신 내준 전세보증 사고금액은 올해 1~4월 1조830억 원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사고금액(1조1726억 원)과 비슷했다. 그만큼 올해 전세보증금 관련 사고가 급증했다.

문제는 하반기다. 빌라왕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등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하반기부터 최악의 역전세난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역전세난은 비단 빌라, 다가구주택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서울 강남권 유명 아파트단지에서도 신규 입주 물량이 대거 풀리면서 인근 아파트 전세 가격이 급락한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최근 들어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매매 가격이 반등하고 있어서 아파트의 경우 깡통전세 우려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오히려 시중금리가 안정되면서 월세로 쏠렸던 수요가 일부 전세로 돌아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역전세난 심화는 세입자뿐 아니라 집주인에게도 부담 요인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집이 경매에 넘어가거나 세입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시장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정부, “전세금반환대출 규제 한시적 완화”

집주인이 충분히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임대인도 전세보증금을 받아 일부는 은행 대출도 갚고 재테크도 하고 일부는 생활비로도 사용해서 한꺼번에 수천 만 원에서 수억 원을 내줄 형편이 되지 않는다. 전셋값이 2년 만에 이처럼 급락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일부 지역에선 역월세가 등장하고 있다. 역월세는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기존 임차인을 잡기 위해 전세보증금 시세 하락분에 대해 연 4~5%대 이자를 세입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임대차시장의 갑을 관계가 바뀐 셈이다.

하지만 역월세도 역전세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순 없다. 정부가 이런 역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 임대인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때 규제를 소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큰 틀은 유지하되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역전세 주택에 한해서만 DSR 규제 일부를 한시적이고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DSR은 소득 기준 대출 규제로 대출자의 연소득에서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지표다. 현행 DSR 40%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금융당국은 정부 기조 자체가 DSR 전반에 대한 규제 완화로 돌아선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부의 DSR 완화 검토에 대해 “역전세 또는 전세금 문제를 타깃으로 한 것으로, 부동산 규제의 큰 틀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 역전세난을 해소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자칫 가계부채를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다. 가계 빚이 국가 경제 규모를 추월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또한 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기존 세입자는 제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그 집의 새로운 세입자는 추가 대출에 따른 은행의 선순위 채권금액이 늘어나면서 전세기간 만료 후 전세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런 이유로 대출 규제 완화가 사실상 세입자 돌려막기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따라서 임대인의 소득과 세금 체납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 상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추가 대출을 해줘야 한다.

“전세제도 폐지” vs “서민 주거 안정에 기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에 대해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고 언급한 이후 ‘전세폐지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주택정책을 다루는 주무부처 장관의 이 같은 강경한 발언에 대해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때 전세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내 집 마련의 디딤돌 역할을 해왔지만 잇따른 전세사기와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벌어지면서 극단적인 폐지론까지 등장한 셈이다.

전세는 일종의 개인 사금융으로 공적 금융 시스템이 발전하지 않은 과거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임대차제도다. 또한 전셋값 상승을 전제로 이른바 ‘갭투자’라는 투기적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 역할을 해왔다.

매매가와 전셋값이 동반 상승할 때는 전세제도의 치명적 단점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락기에 접어들자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와 전세사기극이라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이런 이유로 전세제도가 서민의 축복에서 재앙으로 돌변했다며 이제는 전세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세제도가 197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임대차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폐지해도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세제도가 없어지면 현재 임대차시장은 월세 형태로 전환돼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세보증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058조3000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모두 월세나 반월세로 전환하기엔 전세보증 규모가 너무 크다. 주거 취약계층이 매달 월세로 지불하는 금액이 커질수록 종잣돈과 내 집 마련의 꿈은 더 멀어진다.

또한 전세는 여전히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 등 순기능도 지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2개국 중 주거비 부담이 가장 낮은 국가로 한국이 뽑힌 이유도 사실상 주거비가 ‘0원’인 전세제도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주거비는 가처분소득의 14.7%로, OECD 평균(20.5%)보다 훨씬 낮았다. 전세제도를 지렛대로 활용해 내 집을 마련하려는 무주택 서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전세제도가 반세기 동안 임대차시장에서 자리를 잡아왔던 만큼 사실상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임대차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세제도는 주택 구매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주거의 기회를 제공하고, 주택시장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민간 사금융 성격을 지닌 전세제도의 민낯이 드러난 만큼 제도를 보완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전세제도가 필요악인지 아닌지는 처한 상황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전세제도는 주택시장의 안정성과 세입자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안으로 개선돼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