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이야기

[음식과사람 2023.08. P.80. Food  Essay]

김 ⓒ pixabay
김 ⓒ pixabay

editor 윤동혁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은 병력의 절반을 유럽으로 보냈고 나머지 전력으로 일본군과 싸웠다. 연합군으로 싸웠던 유럽에서보다 태평양전투가 더 힘겨웠다. 수많은 섬 어느 한 군데도 녹록한 곳이 없었고 많은 미군이 포로가 됐다.

당시 기록물을 보면 미군 포로들은 가축 이하의 대접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군이 먹고 남은 잔반 수준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가혹행위도 있었으니 포로들에게 검은 종이를 나눠주며 억지로 먹게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종이를 억지로 먹게 했다. 그것도 시커먼 종이였다.”

살아남은 미군 포로가 도쿄전범재판소에서 포로 학대에 관해 증거로 내세운, 세계가 경악해마지 않을 사례였다. 그런데 이 폭로가 오히려 일본 전범들을 크게 도왔다.

검은 종이는 김이었던 것이다. 일반 사람도 맛보기 힘든 김을 포로에게 나눠주다니…. 물론 미군 포로들을 희롱하기 위해 김으로 장난을 친 것이지만 어쨌든 일본 측엔 유리한 증언이었다.

우리 세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김 결핍’ 상태로 살았다. 막 구운 김에 흰 쌀밥을 올려 조선장에 찍어 먹는 사람은 10%나 됐을까. 소풍 갈 때도 김밥을 싸 갈 수 없었다. 어쩌다 김 한 장이 생기면 8등분 이상으로 잘게 잘라 밥 위에 살짝 얹어 먹었다.

그 김이 세계를 향해 힘찬 진격을 하고 있다. ‘수산물 한류’를 이끌면서 지난해에 수산식품 수출 첫 7억 달러를 돌파했다. 50년 동안 부동의 1위였던 참치를 제치고서 말이다.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57%를 점유하면서 프랑스, 태국, 싱가포르 등 114개국으로 진출했다.

이게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나는 1988년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시대’를 제작할 때 한국을 여행 중인 미국 대학생 데니를 취재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가 아니었던가. 미역국을 민박집에서 먹을 때 데니는 검은 종이를 먹어야 했던 선배들의 난처한 처지와 비슷했다.

그래도 결례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저질을 했다. 그날 밤 데니는 일기에 썼다. “미끈거리는 바다풀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런 음식을 앞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역이나 김이나 바다의 잡초(Seaweed)다. 구글에서 김을 검색하려면 ‘Seaweed’를 적어 눌러야 한다. 그 풀이 슈퍼푸드가 됐다.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해조류를 정기적으로 섭취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다풀이 바다의 채소(Seavege table)가 됐고 감자칩 대신 싸가는 영양식이 되었으니 엄청난 신분 상승이다.

미국에서 한국 김을 알려온 ‘김 전도사’ 애니 김(한국 이름 전정란)은 “김 먹는 법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한국 김의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한다. 현재 미국 전체 가구의 4%만이 김을 먹고 있다. 10%가 된다면 바다풀의 방탄소년단(BTS)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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