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의 ‘경제 돋보기’

[음식과사람 2023.09. P.58-61 Marketing Point]

아파트 오피스텔 시설 ⓒPixabay
아파트 오피스텔 시설 ⓒPixabay

editor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

철근 누락 LH 아파트 파장 ‘일파만파’

필자가 미국 유학 중이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학생들 사이에선 한국을 방문할 경우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 리스트가 나돌았다. 그 세 가지는 한국에 가면 백화점 가지 말고 다리 건너지 말고 지하철도 타지 말라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빗댄 얘기다. 나머지 하나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가리킨다.

앞의 두 건은 부실공사가 낳은 인재라는 점에서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부실공사 관행은 여전하다. 지난해 6명의 사망자를 낸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와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의 신축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역시 철근을 누락한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이들 2개 공사장의 시공을 맡은 현대산업개발과 GS건설은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면 재시공하기로 결정했다. 철근이 설계보다 부족한 ‘순살자이’나 아예 철근이 외벽 밖으로 튀어나온 ‘통뼈캐슬’ 등 아파트 부실공사 논란이 확산되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중에서도 검단 아파트와 같은 방식, 이른바 무량판 구조(기둥만으로 천장을 받치는 방식)를 적용한 91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15개 단지가 철근 일부를 빼고 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10곳은 설계 도면에서부터 작정하고 철근을 빼버렸다. 나머지 5곳은 설계 도면엔 철근이 있었지만 실제 시공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15개 단지 가운데 파주 운정, 남양주 별내, 아산 탕정, 음성 금석, 공주 송월 등 5곳은 이미 주민들이 입주를 마친 단지다. 나머지 10곳은 아직 공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철근을 빼먹은 시공사 명단엔 시공 능력 13위 DL건설을 비롯해 대보건설, 동문건설, 삼환기업, 이수건설, 한신공영, 효성중공업, 한라 등 중견 건설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번 사태를 두고 설계와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국식 건설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는 설계 과정에서부터 지하주차장 기둥 주변 철근을 누락했다. 일부는 설계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고의로 철근을 누락시키는 등 설계에서부터 시공, 감리 등 각 단계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양주회천 행복주택 단지는 보강 철근이 있어야 할 154개 모두가 누락된 것으로 조사됐다. 음성 금석지구 아파트는 123개 기둥 중 101개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철근 누락 15개 단지 공사 참여업체 중 설계 9개와 감리 11개 업체가 LH 출신 인사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드러난 설계, 감리뿐 아니라 구조, 기계, 전기 분야 등 외주업체 전 분야에 LH 출신이 포진해 있었다. 건설업계의 전형적인 전관예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파트를 짓는 데 무랑판 구조가 적용되는 것은 2010년 후반 들어 LH와 민간 건설사들 사이에서 지하주차장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무량판은 기둥 위에 천장을 얹는 방식이다.

하중이 기둥 부위에 집중되는 단점이 있지만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건설 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량판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좁은 기둥으로 하중을 버텨야 하는 만큼 설계와 시공, 감리가 모두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법이다.

무량판 구조 자체는 결함이 없었지만 국내 건설 현장의 고질적 병폐인 ‘더 빨리’, ‘더 싸게’ 문화와 이권 카르텔에 편승한 부실 감리, 여기에 최근엔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 중심의 건설 근로현장 체계까지 더해지면서 무량판 구조는 또 한 번 부실시공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전국 293개 민간 아파트도 전수조사

하지만 무량판 구조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건설 현장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더 시급하다. LH가 발주한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치명적인 하자인 철근 누락이 다수 발견되자 정부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전국 293개 민간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점검 대상 LH 아파트의 16%에서 문제가 발견된 만큼 민간 아파트에서도 부실시공 아파트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수조사 대상은 무량판 구조를 주차장에 본격 적용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입주했거나 공사 중인 민간 아파트의 주차장이다. 입주 완료된 아파트는 188곳, 공사 중인 단지는 105곳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선 대략 25만여 가구가 입주한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가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도 전수조사에 착수하면서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선 “과연 우리 아파트는 안전한가?”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안전점검 결과 문제가 확인되면 정밀 안전진단을 거쳐 보강공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라면 시공사와 협상을 통해 보수·보강 공사를 할 수 있지만 입주가 완료된 단지는 주민 동의 없이는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구 내부를 점검하려면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부실 시공 아파트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하는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조사 과정에서 철근 누락과 같은 하자가 발견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지하주차장은 기둥에 철판을 덧대거나 기둥을 추가 설치하는 방식으로 보강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주공간은 이 같은 조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철근 누락 사실이 공개되면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국토교통부는 LH 아파트처럼 단지명을 일일이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하자가 확인된 15개 단지에 대해선 신속하게 보강 공사를 완료하고 민간의 준공 아파트와 시공 중인 아파트의 전수조사에 대해서도 9월 말까지는 점검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아파트 단지에선 계약 해지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LH 15개 아파트 단지 중 12건의 계약 해지 신청이 접수됐다. 이들 단지는 모두 임대주택으로 입주예정자의 신청 8건, 현재 거주 중인 입주자의 신청이 4건이다.

만약 철근 누락을 사유로 계약 해지를 신청할 경우 임대주택 입주자 및 입주예정자에 대해선 보상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는 이미 완공돼 입주가 끝난 단지의 경우 ‘입주자가 만족할 수 있는 손해배상’을 하고, 공사 중인 단지의 입주예정자에게는 재당첨 제한 없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부실 시공 아파트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은?

이 같은 대책은 분양 주택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철근 누락 15개 단지 중 임대단지 10곳의 입주자와 입주예정자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정부는 임대 입주민이나 입주예정자들의 경우 다른 임대주택으로 옮기길 원한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인근에 비슷한 조건의 임대아파트가 없다면 이조차 무용지물인 셈이다.

정부는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도 LH에 준하는 보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부실이 얼마나 심각하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입주민과 건설사, 설계사 간에 법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에 책임이 있는 LH 아파트와는 달리 민간 아파트는 책임 소재를 두고 소송이 훨씬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후진국형 부실공사 재발 방지를 위해 LH의 모럴 해저드와 이권 카르텔을 차단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LH가 2년 전 땅 투기 사건 이후 내놨던 전관 특혜 근절책으로 취업이 제한됐던 사례는 단 한 건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6~2021년 3급 이상 LH 퇴직자 600여 명 중 계약업체 재취업자는 절반도 넘는다. 1년여간 진행된 LH의 용역 종합심사 낙찰에선 149건 가운데 무려 139건이 전관 업체에게 돌아갔다. 연간 10조 원 규모 공사 및 용역을 발주하는 LH 전관 출신들이 영업과 로비의 창구로 활용되는 구조를 근절하지 않는 한 부실시공은 이어지고 국민의 안전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와 국회는 무더기 대책을 쏟아내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실공사는 살인에 해당하는 중범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국의 건설 현장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통해 부실 징후를 사전에 찾아내야 한다. 건설 현장에 만연한 인허가 비리, 입찰 담합, 전관 특혜 등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고 단가 후려치기,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법 하도급 등의 낡은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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