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이야기

[음식과사람 2023.09. P.80 Food Essay]

다양한 종류의 주류제품 ⓒPixabay
다양한 종류의 주류제품 ⓒPixabay

editor 윤동혁 

술 마시러 갈 때 가벼운 배낭을 메고 간다. 손바닥보다 작은 반찬통 몇 개와 술병이 들어 있다. 술집에 들어가서 배낭을 열고 술병을 꺼낸다. 같이 간 사람들 얼굴이 변한다. 여기는 원주 변두리 문막. 나는 음주 문화의 무뢰한, 술 취해서 주정 부리는 인간보다 더 너절한 부류가 되고 만다.

자, 이제부터 가벼운 전투가 시작된다. 술집에 가서는 꼭 그 집 술만 사먹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소주 두 가지, 맥주 두 종류밖에 놓여 있지 않는 주점에서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이 없으면 어쩌란 말이냐.

그러면 다들 “그래도 이집 술을 팔아줘야지요”라고 말한다.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통금과 교복의 구속을 벗어낸 세대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성의 문화를 넘치게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세대가 음주만큼은 그 가게에 비치돼 있는 빈약한 두세 종류의 술에 음주 문화를 속박당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도 다들 “술은 그 술집에서 팔고 있는 것을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술에 관한 한 참으로 고지식하고 단조로운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술을 파는 입장에서도 이런 충성심이 유리하기만 한 것일까. 나는 내가 마시고 싶은 술을 반입했고 (‘외부 주류 반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도 않았으므로) 그 대가로 주인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입료를 지불했다.

물론 나의 단골 식당(주점)에서부터 시작했으므로 별다른 마찰 없이 그 음주 문화는 자리를 잡았다. 주인은 익숙해졌으되 나와 처음 가는 손님들이 되레 어색하거나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는 이야기다.

이걸 ‘콜키지 프리(corkage free)’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제 겨우(?) 50대 전후의 제자들이 묻는다. 콜키지가 무슨 뜻인데요? 콜키지란 코르크(Cork)에 서비스 요금이 붙는다(Charge)라는 뜻이야. 원래 프랑스 와인에서 시작된 말이지. 술집이나 음식점에 갈 때 자기 입맛에 맞는 와인을 들고 가면 코르크를 따고 잔 따위를 제공하면서 서비스료를 받았다는 거지. 지금은 위스키, 사케 안 가리고 모든 주류에 콜키지라는 말을 쓴다는 것인데….

서비스 요금을 넉넉히 받으면 식당 주인에게 많이 유리하다. 적당히 받으면 서로 좋다. 이 문화가 서울에도 퍼지고 있다. 그 속도는 아주 느려서 원주까지 오려면 10년도 더 걸릴 것 같다. 서울의 고급 호텔에선 무조건 와인 15만 원, 기타 고급주 30만 원을 받는다니 콜키지 문화의 부정적 측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도 구글이나 네이버 지도에 벌써 콜키지 프리인 식당, 주점들이 소개되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 우리의 음주 문화가 좀 더 다양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리란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