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의 ‘경제 돋보기’

[음식과사람 2023.11 P.56-59 Marketing Point]

건물 분양 ⓒPixabay
건물 분양 ⓒPixabay

editor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

가계부채 급증은 2030세대의 부동산 ‘영끌’ 탓

경제부 기자 시절 눈 감고도 쓸 수 있는 기사들이 있었다. 주제는 가계부채, 노인 빈곤율, 자살률 등으로 우리나라가 부동의 세계 1위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이들 기사는 언제부터인가 상습적으로 우리나라가 늘 세계 최고라는 낙인이 찍힌 채 쏟아져 나오지만 발표 당시에만 이목을 끌 뿐 정부조차도 사태의 심각성을 소홀히 인식하고 대책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어느덧 경제 규모를 넘어섰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1862조8000억 원으로 석 달 만에 9조5000억 원 증가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올해 1분기 감소세를 보이다 2분기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부동산과 직결된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배경엔 2030세대가 빚을 내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현상이 있다. 최근 주택 가격이 오르고 거래량이 늘어나자 집을 사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실제로 2분기 전국 주택 거래량은 15만5000가구로 지난해 말 9만1000가구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적은 2030세대도 정부의 정책금융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소득에 상관없이 9억 원 이하 주택을 최대 5억 원까지 연 4%대 고정금리로 대출받아 살 수 있는 상품)을 이용하면 쉽게 내 집 마련이 가능해졌다.

금융당국은 올해 특례보금자리론에 39조6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했는데, 8월 말 35조4000억 원을 공급해 이미 90%가량이 소진됐다. 최장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할 경우 대출 한도가 늘어나고 매달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다 보니 실수요자뿐 아니라 주택을 갈아타려는 1주택자들 사이에서도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지난 4월 이후 가계대출이 매달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가계빚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데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이 부채 축소에 나선 반면에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2년 77.3%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하는 주요 43개국 가운데 14위의 중·상위권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후반 들어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하더니 지난해 이 비율은 105%까지 치솟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에 주요 20개국(G20) 국가의 평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60% 안팎에서 큰 변화가 없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73%), 일본(65.2%), 중국(63.6%) 등으로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세계 주요 43개국 중 가장 높다. 가계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전세보증금을 합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3000조 원을 넘어 GDP의 2배 수준에 육박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부동산 같은 생산성이 낮은 분야에 집중돼 한국의 장기 성장률을 낮추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 부동산 규제 완화에서 강화로 선회하나

2030세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최대한의 대출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현상)’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2~3년 후 집값이 더 뛸 것이란 우려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향후 5년간 270만 가구 주택 공급 계획을 밝혔지만 이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1년 평균 50만 가구 이상 주택을 공급해야 하지만 올들어 7월까지 주택 착공 실적은 1년 전보다 54% 급감했다. 주택 인허가 건수는 같은 기간 29.9% 줄었다. 주택 인허가 착공 건수는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로 실제 입주가 이뤄지는 2~3년 뒤엔 공급 물량 부족에 따라 집값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또 다른 이유는 포모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 즉 대세 상승장에서 소외되고 자산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종의 고립 공포감 때문이다. 이전 정부 5년간 집값이 폭등했지만 정부 정책을 믿고 집을 사지 않은 실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산 격차에 대한 박탈감과 상실감이 컸다. 

정부도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핀셋 대응에 나서고 있다. 우선 최근 가계부채 증가를 견인한 주택금융공사의 특례보금자리론 공급 요건을 강화했다. 부부 합산 연소득 1억 원 초과 혹은 6억 원 초과 9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할 경우 이용하던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은 중단됐다. 또 일시적 2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3년 이내 처분하는 조건으로 갈아타는 대출도 불가능하다. 다만 부부 합산 연소득 1억 원 이하이거나 주택 가격이 6억 원 이하인 우대형 특례보금자리론은 내년 1월까지 이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 밖에도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최장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만기가 50년이지만 연령대별로 보면 40~50대 비중이 57%로 20~30대 비중 29.9%보다 높았다. 60대 이상 고령층 비율도 12.9%로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청년층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무주택자보다 주택보유자의 50년 만기 대출 비중이 52%로 무주택자 48%를 웃돌았다. 

앞으로는 만기 50년 대출상품은 상환 능력을 입증해야만 이용 가능하다. 상환 능력이 없으면 대출 만기는 최장 40년으로 단축된다. 물론 가입 연령을 일괄적으로 제한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주택금융공사 기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만 34세 이하 혹은 결혼 7년 이내 신혼부부가 이용 가능하다.

또한 금융당국은 변동금리 대출상품을 선택하면 대출 한도를 줄이는 이른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소득 5000만 원인 직장인이 대출금리 4.5%로 50년 만기로 대출받을 경우 고정금리 대출 한도는 4억 원이다. 같은 조건으로 변동금리로 대출받으면 스트레스 DSR이 적용돼 대출 한도는 3억4000만 원으로 15%가량 줄어든다. 금리 급변동 시 이자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지만 금리 인하기엔 오히려 고정금리 대출이 불리한 구조여서 찬반 논란이 예상된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 정부의 해법은?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는 계속해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은행 주택담보대출금리 최저 3%대는 사라졌고 최고 금리는 7%를 넘어섰다. 은행이 자본 조달을 위해 발행한 은행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실제로 고정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과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세계 채권시장의 기준(바로미터)이 되는 미국의 10년물 장기 국채금리가 연 5%에 육박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우리나라 등 신흥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지난 4월부터 매달 1조 원 안팎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 미국은 40여 년 만에 최악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년 5개월 동안 5.25%포인트나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고용시장이 견고한 가운데 순항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3% 후반대에 머물고 있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2%로 안정될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 기업과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 문제는 고금리에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세다. 정부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대부분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고, 최근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로 주택 착공 인허가 건수가 급감하면서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자 부랴부랴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급난 해소를 위해 수도권 3기 신도시 확충 등 공공주택을 총 12만 가구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자금난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PF 지원을 확대하고 빌라,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정도면 올해 목표 47만 가구는 최대한 달성 가능하고 내년까지 100만 가구, 현 정부 기간 동안 270만 가구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예정대로 공급된다면 일부 공급 부족 우려는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구체적인 공급 일정이 담기지 않은 데다 공공주택사업을 주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 누락 사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동산은 심리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정부가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주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도 예전의 저금리 시절 대출 레버리지를 통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던 시절은 잊고 고금리 장기화에 대비해 부채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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