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음식과사람 2023.11. p.82-85 Discovery]

미역 ⓒpixabay
미역 ⓒpixabay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일날에 미역국을 먹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이고 민속이다. 그런데 왜 생일에 미역국을 먹을까?

많은 사람이 엄마가 출산 후 미역국을 먹은 만큼 낳아준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 미역국은 엄마가 끓여준다. 세상의 어느 엄마가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에 낳아준 자신의 은혜와 당시 겪었던 엄마의 고통을 잊지 말라며 생일 음식을 차려줄까?

그러니 알려진 생일 미역국의 유래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소 어긋난다. 그렇다면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는 것일까? 그에 앞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출산 후 왜 미역국을 먹을까? 흔히 미역국을 먹으면 출산으로 혼탁해진 피가 맑아져 산후조리에 좋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산후조리 음식으로 미역국을 먹고, 또 생일 축하 음식으로도 미역국을 먹는데 전통이니까 무조건 따르는 것보다는 왜 이런 풍속이 생겼는지,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세계 각국의 생일 음식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데 그러면 다른 나라에선 무엇을 먹을까?

중국에선 국수를 먹는다. 국수 면발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생일에 먹는 국수를 장수면이라고 부른다. 생일 국수의 전통은 당나라 무렵 생긴 것으로 보는데 이 무렵 밀가루로 뽑은 국수는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그렇기에 영양만점 식품에 면발이 길다는 상징성이 곁들여지면서 생일 음식이 됐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에선 예전에 팥밥을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일부 지방의 풍속과도 겹친다. 생일에 팥밥을 먹는 이유는 동지 팥죽처럼 역귀가 팥의 붉은색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액땜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얼핏 미신 같지만 고대엔 팥이 영양가가 높았기에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라는 의미를 지녔다.

지금은 세계 공통의 민속이 됐지만 서양에선 생일에 케이크를 자른다. 고대 그리스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음식에서 비롯됐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을 돌보며 다산과 번영을 주관하는 여신, 아이들의 수호신이다.

생일 케이크는 이런 여신에게 아이를 지켜달라며 바치는 제물의 의미가 있다. 하필 케이크였던 이유는 고대 케이크는 빵과는 달리 밀과 꿀, 과일 등의 좋은 재료로 만들어 어쩌다 특별한 날에 먹는 고급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 생일 음식의 공통점은 한때 영양가 높은 특별한 음식으로 아이를 보호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차렸던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일에 먹는 미역국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영양학적 이유뿐만이 아니라 생일 미역국에도 상징성이 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한국 산모는 왜 출산 후 미역국을 먹을까?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는지 알려면 먼저 한국의 어머니들은 왜 출산 후 미역국을 먹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옛 조상님들이 설파한 산후조리 음식으로서의 미역국이다.

먼저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미역국은 임산부에게 신선의 약만큼이나 좋은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왜 신선의 약만큼 좋은지에 대해선 <성호사설>뿐만 아니라 다른 문헌에도 설명이 없으니 조선의 지식인들은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순조 때의 지성인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전설까지 동원해가며 미역이 산모에게 왜 좋은지를 설명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새끼를 갓 낳은 고래가 물을 들이삼킬 때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배 안에 미역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런데 고래의 오장육부엔 나쁜 피가 잔뜩 몰려 있었는데 미역이 나쁜 피를 정화시켜서 물로 바뀌어 배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미역이 산후 임산부에게 보약이 되는 것임을 알았는데 고래 뱃속에서 빠져나온 후 이를 세상에 알리면서 출산한 후 미역국을 먹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속이 됐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건 안 됐건 옛날 조상님들은 미역국이 산모에게 좋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에 신분에 관계없이 아이를 낳은 후엔 미역국을 먹었다. 온갖 몸에 좋다는 음식이 가득했을 조선 왕실에서도 왕비와 공주가 출산을 하면 미역국을 먹었으니 조선 후기 왕실의 출산 지침서인 <임산예지법>이라는 책에서도 왕실에서 출산을 할 때면 반드시 미역국을 끓인다고 했다.

다만 이렇게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출산 전후에 먹었던 미역국이고 산모에겐 신선의 약만큼이나 좋은 미역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풍속에선 아주 중요한 처방인데 중국 의학서에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궁금해했다.

다른 나라 산모의 산후조리 음식은?

그러면 다른 나라 산모들은 산후조리 음식으로 무엇을 먹을까?

중국은 주로 계란탕을 먹는다고 한다. 물론 민족도 다양하고 풍속도 천차만별이니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한국의 산모 같으면 아이가 닭살 피부 된다고 기겁할 노릇인데 꽤 오랜 전통인 모양이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출산 후엔 닭죽과 닭고기를 먹는다고 했는데 이유는 닭이 양기가 충만한 가축이기 때문이다. 출산으로 빠져나간 양기를 닭고기로 보충한다는 개념이다.

일본은 뜻밖에도 즈이키(ずいき)라고 토란 줄기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전통이고 주로 서민층에서 널리 퍼졌던 산후조리 음식이었다고 전해진다.

베트남 같은 경우는 돼지족발을 먹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한국 산모들이 모유 수유를 위해 족발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역국을 포함해서 중국의 계란탕, 일본의 토란 줄기, 베트남의 돼지족발 같은 산후조리 음식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요오드와 인, 칼슘, 철분, 알긴산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들이다. 산모가 출산 과정에서 빠져나간 무기질과 비타민 등을 보충하는 동시에 갓난아이들의 성장·발육에 필수적인 양양소들이니 산모의 건강을 챙기고 모유 수유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성분들이다.

세계 각국의 산후조리 음식엔 대부분 이렇게 영양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산모들이 특별히 산후조리 음식을 챙겨 먹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옛날 유럽은 목축지역이었기에 우유와 치즈, 버터가 풍부했고 여기에 앞서 말한 산모와 신생아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이 모두 들어 있다. 굳이 별도로 산후조리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왜 하필이면 돼지족발도 아니고 닭고기도 토란 줄기도 아닌 미역국을 먹었던 것일까?

옛날부터 한반도에서 질 좋은 미역을 풍부하게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본초강목>에 미역은 고려에서 나오는 것으로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 국을 끓이면 기가 잘 내린다고 나온다. 미역국이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는 것인데, 송나라 사신으로 1123년 고려를 다녀간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 사람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미역을 잘 먹는다고 했으니 미역이 일상적인 식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 사신들이 무역 품목으로 미역을 요구하고 사신들에게 미역을 선물했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보인다. 그러니 발해, 즉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미역이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산후조리에도 좋고 어린이 성장·발육에도 좋은 질 좋은 미역이 풍부했으니 미역국이 산후조리 음식, 생일 음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무병장수 비는 소원의 음식

하지만 영양가 높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일 음식이 되지는 않는다. 복을 빌고 소원을 바라는 상징성도 곁들여져야 한다. 그런 만큼 미역국엔 기복의 소망이 들어 있다.

옛날엔 아이를 낳았다고 아무렇게나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삼신상을 차려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빈 후에 먹었다. 여기에도 절차가 있었으니 출산 직후엔 하얀 쌀밥과 미역국, 냉수 한 그릇을 떠서 삼신할머니에게 올린 후 산모가 먹었는데 이를 첫 국밥이라고 했다.

이어 근대 초의 학자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생후 삼일이 지나면 또 미역국과 쌀밥을 차려 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비는 것이 풍속이라고 했는데 영아가 사망할 위기를 한 고비 넘겼을 때다. <조선여속고>라는 책에서도 출산 후 삼칠일인 21일째 되는 날에도 삼신상을 차려 아기의 무병장수를 빈다고 했다.

1925년 발행된 <해동죽지>에도 정약용의 <풍속고>를 인용해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전까지 베주머니로 삼신주머니(三神囊, 삼신낭)를 만들어 쌀을 채워 벽에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고 했다. 삼신할머니가 단지 아이를 점지해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보호해주는 신이었기에 때맞춰 삼신상을 차려놓고 빌었던 것이다.

그런데 삼신할머니가 도대체 누구일까? 우리나라 전통 신앙에서 삼신할머니는 아이를 점지해줄 뿐만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돕는 수호신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삼신할머니는 고대 신앙에서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여신이라고 했다. 삼신할머니를 생명의 신으로 섬긴 것은 한민족의 역사만큼 오래된 풍속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풍속고>에서 삼신제석(三神帝釋)은 생명을 주관하는 신이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하얀 쌀밥과 곽탕(藿湯) 세 그릇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 민족의 4000년 전통이라고 했다. 곽탕은 미역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정리하면, 생일 미역국은 아이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되는 영양 가치에 더해 한민족의 민속신앙에서 생명의 신에게 바치는 탄생에 대한 감사와 무병장수를 비는 소원의 음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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