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 인문학’

[음식과사람 2024.01. P.72-75 Discovery]

쌀 ⓒ Feepik
쌀 ⓒ Feepik

editor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답변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질문이 원하는 정답은 누룽지탕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룽지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끓인 누룽지가 최고라는 말은 터무니없다. 그런데 왜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누룽지탕이 천하제일이라고 한 사람은 중국 청나라 건륭제였다. 최고 전성기를 이뤄낸 군주였으니 세상 맛있고 귀하다는 요리는 모두 맛봤을 인물이다. 건륭제는 다른 산해진미를 다 제쳐놓고 왜 누룽지탕을 천하제일 요리라고 치켜세웠던 것일까?

쌀밥을 먹는 대부분의 나라엔 누룽지가 있다. 우리는 물론 일본과 중국, 베트남과 인도를 비롯해 파에야를 먹는 스페인 사람도 누룽지 소카라트, 리소토를 먹는 이탈리아에서도 누룽지 알 살토를 먹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룽지가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먹는 사람들은 군것질이라며 좋아했겠지만 밥 짓는 사람, 특히 살림을 책임진 주부에겐 아까운 양식을 축내는 골칫거리였다. 그럼에도 주부들은 밥 태운 부산물인 누룽지를 활용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냈다. 누룽지를 토대로 한·중·일 삼국에선 각기 독특한 요리와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속된 말로 ‘자뻑’이고 ‘국뽕’일 수도 있겠지만 누룽지를 별미가 아닌 일상 음식으로 연장시켜 멋들어지게 활용한 나라는 한국이다. 주역은 바로 누룽지를 베이스로 만드는 음료, 숭늉이다.

지금은 일부러 만들지 않는 한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 전기밥솥 등 조리기구의 발달과 음식문화의 변화로 숭늉 문화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 숭늉은 한민족의 식후 필수 음료였다. 

숭늉 없으면 소화 못 시킨 한국인

요즘은 식후 디저트로 커피나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지만 예전 조상님들은 밥을 먹은 후엔 반드시 숭늉을 마셨다. 그래야 식사를 마친 것으로 여겼고, 아니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심한 경우엔 아예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곁에서 지켜본 예전 어르신들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문헌 곳곳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국이나 일본을 다녀왔던 사신이나 통신사와 그 일행이 하나같이 현지에서 숭늉을 마시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고충을 적었다. 한민족에게 숭늉은 소화제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정조 때 서유문이 사은사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와서 쓴 <무오연행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밤에 갑자기 잠이 깼는데 숨을 쉬지 못하겠고 등이 결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어서 급히 주방에 일러 메밀 숭늉을 끓여 마신 후 고약을 붙이니 잠을 잘 수 있었다.” 

문장 내용으로 미뤄보건대 체했을 때 숭늉을 마시고 체증을 내린 것으로 짐작된다.
숙종 때 사신을 수행하는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던 김창업이 쓴 기행문인 <연행일기>에도 숭늉 예찬론이 적혀 있다. 

“식사는 쌀밥에 나물과 장 종류 몇 그릇이었지만 모두 먹을 만하고 수행원들도 배불리 먹었다. 나는 싸온 밥이 있었으므로 뜨거운 물을 청하여 말아 먹었다. 승려가 미음 한 그릇을 갖다주었는데 그 맛이 우리나라 숭늉과 같아 마시고 나니 위가 편해지고 안정되어 좋았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의 숭늉 문화는 그 뿌리가 고려 무렵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온 중국 사신들은 고려 사람들이 밥물을 마시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송나라 때 사신으로 온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는 고려인은 언제나 숭늉을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고 했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물그릇 모양은 머리가 길고 위가 뾰족하며 배가 크고 바닥이 평평한데 여덟 모서리로 간혹 도금한 것도 있다. 그릇 속에는 숭늉이나 끓인 물을 담는다. 나라의 관리나 귀족들은 언제나 시중드는 자를 시켜서 가까이에 숭늉 그릇을 들고 따라다니게 한다. 크기는 같지 않고 큰 것은 두 되가 들어간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 왜 이렇게 숭늉에 빠졌을까 싶은데 한국인에게 숭늉은 단순한 식후 음료를 떠나 소화제였고 약이었다. 

과학적으로도 숭늉에는 진짜 소화제 성분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솥에서 밥을 푼 후 다시 물을 붓고 데운 숭늉은 밥의 전분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Dextrin)이 생기면서 구수한 맛을 내게 되는데 바로 덱스트린 성분이 소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숭늉에는 또 에탄올이 함유돼 있어 항산화작용을 하기 때문에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켜준다고 하니까 그만큼 소화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슝늉을 마시지 않으면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소화를 시키지 못할 때는 숭늉을 약으로 처방했는지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누룽지 끓인 물인 숭늉이 소화를 촉진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한자로 취건반(炊乾飯)이라고 적혀 있는데 불을 때어서 말린 밥이니까 결국은 누룽지라는 뜻이다.

병 중에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잘 넘기지 못하거나 넘겨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이 있다. 열격(噎膈)이라는 병인데 이런 증상에는 여러 해 된 누룽지를 달여 아무 때나 마시면 그다음에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했으니 바로 숭늉을 소화제로 처방했던 것이다.

중국의 누룽지는 요리가 됐다

앞서 청나라 건륭제가 누룽지탕을 천하제일 요리라고 했다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느 날 건륭제가 신분을 숨긴 채 강남을 시찰하다 그만 끼니를 놓쳤다.

주변 농가에 들러 점심을 부탁했지만 마침 식사 때가 지난 후라 남은 밥이 없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할 수 없이 가마솥 바닥의 누룽지를 긁어 데운 후 뜨거운 국과 함께 상을 차려 내왔다.

워낙 시장했던 건륭제가 누룽지에 국물을 부어 먹으며 연신 맛있다고 감탄했다. 식사가 끝난 후엔 집주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친필로 ‘천하제일 요리’라는 글씨를 써주었다. 중화요리인 지금의 해물누룽지탕이 만들어진 일차적 배경이다.

황제가 자금성으로 돌아간 후 요리사들이 시골에서 먹었던 단순한 누룽지탕에 전복과 해삼, 죽순 등을 넣어 해물누룽지탕으로 발전시켰다. 주부의 골칫거리이자 아이들 간식거리에 불과했던 누룽지가 천하에서 으뜸가는 요리로 거듭난 것이다. 지금 해물누룽지탕은 중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 중국 음식점에서 고급 요리로 대접받는다. 

중국에선 누룽지가 요리 재료로 쓰인다. 역사 깊은 누룽지 요리가 또 있으니 옛날 중국 요리책에도 나온다. 청나라 건륭제 때 원매라는 학자가 저술한 <수원식단>에 보인다. “종이처럼 얇게 만든 누룽지를 기름에 재어 구운 후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바삭바삭한 것이 맛이 있다.

금릉인(金陵人)이 제일 잘 만든다”고 적혀 있다. 지금의 누룽지튀김으로 금릉은 현재의 장쑤성 난징의 옛 이름이니 중국요리 계보 중엔 옛 궁중요리인 회양요리(淮揚菜)에 속한다.

이 밖에도 여러 누룽지 요리가 있는데 중국은 왜 누룽지를 요리로 발전시켰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는데 중국이 요리 천국이라서가 아니라 밥 짓는 방법이 한국과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우리처럼 뜸을 들여 밥을 짓지 않고 쪄서 밥을 하기에 누룽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어야 했고 간식이 아닌 요리로 발달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 과자 센베이의 원조가 누룽지?

일본에도 오고게(おこげ)라고 하는 누룽지가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누룽지가 생기지 않도록 밥을 짓는 것이 미덕이었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누룽지도 그저 밥의 일부로 먹거나 아니면 찻물에 말아서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누룽지를 깜쪽같이 변신시켜 과자로 만들었다. 오고게 센베이라고 하는 과자다. 쉽게 말해 쌀 전병(米菓煎餠)이다. 경단처럼 둥글게 뭉친 떡을 얇게 편 후에 구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쌀을 주먹밥처럼 둥글게 빚으면 보존성이 떨어진다. 자신이 먹을 때도 문제가 되지만 상업적 장사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그날 만든 경단 모양의 쌀떡을 다 팔지 못하면 다음 날 다시 가지고 나와 팔 수 없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수요량을 예측해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쌀떡 장수가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쌀떡을 둥글고 평평하게 펴서 햇볕에 말렸다가 구운 것이 일본 전병인 쌀 과자, 센베이(煎餠)의 기원이라고 한다. 

누룽지를 활용한 야키 오니기리(焼きおにぎり)도 있다. 주먹밥에다 생강과 된장을 발라서 구운 것으로 겉은 바삭바삭한 누룽지를 먹는 것 같고 속은 촉촉한 주먹밥 그대로다.

이 누룽지 주먹밥은 임진왜란 전인 전국시대에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구운 밥을 대나무 껍질이나 잎에 싸면 살균력이 높아져 더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구운 주먹밥, 야키 오니기리가 만들어진 배경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누룽지는 밥을 지을 때 생기는 부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누룽지의 가치를 어떻게 봤느냐에 따라 한국에선 누룽지가 국민 음료인 숭늉으로, 국민 소화제로 발전했고, 중국에선 요리로, 일본에선 과자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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