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혁의 음식이야기

[음식과사람 2024.01. P.78 Food Essay]

다양한 종류의 주류제품 ⓒPixabay
다양한 종류의 주류제품 ⓒPixabay

editor 윤동혁 

‘간단하게 한 잔’만 하자고 들어선 술집(식당)에서 우리는 대개 ‘복잡하고도 긴 술자리’를 갖는다. ‘간단하게’란 짧은 시간만 술을 마시자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심지어는 한 잔만 걸치자고 들어간 포장마차에서도 긴 시간에 걸쳐 여러 병의 술을 마신다.

“의자를 빼버리면 된다.” 오래전 강원 횡성 풍물시장에서 나는 미란(가명) 씨의 성공을 눈으로 확인했다. 액세서리 가게로 출발한 그는 나와의 진로 상담을 통해 액세서리 판을 접고 제법 크게 막걸리 점포를 차렸다. 친정어머니가 담근 막걸리를 반드시 항아리에 넣어 잔술로 팔라는 나의 점포 관리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꽤 번창했다. 가게가 잘되니까 두부나 청국장을 식당에 납품하던 업자들이 미란 씨에게 팔아달라고 물건을 맡기니 부수입까지 올렸다.

어느 날 장에 나가서 흐뭇한 얼굴로 미란 씨 가게를 찾았다가 놀랐다. 약간 화가 나기도 했으니, 의자를 몽땅 치워버린 것이다. 노인네들 서서 드시면 다리 아프실 텐데 이게 무슨 행위냐. 미란 씨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다리 아프시라고 그랬다. 의자가 있으면 막걸리 한두 잔 시켜놓고 온종일 앉아 계시니 어쩔 수 없었다고. 오일장에서도 노인 배척 현상은 서서히, 그러나 명료하게 진행되고 있다.

‘의자 빼기’를 생산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일본 도쿄역에서 30분쯤 걸어가다 보면 아파트촌이 나오는데 그 근처에서 일주일 민박할 때였다. 아파트촌은 근처에 유흥시설이 없어서 나에겐 최악의 숙소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때 ‘찾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현실로 다가왔다. 술집이다! 그런데 손님들이 죄다 서 있었다. 무슨 가게 개업식인가? 한참 바라보니 다들 그냥 서서 술을 마시는 거였다. 내가 혼자 들어서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럴 땐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하나 살펴보는 게 상책이다. 전부 생맥주를 마셨는데 술이 떨어지면 구석에 있는 맥주 자판기에 가서 100엔짜리 몇 개를 집어넣고 생맥주를 빼오는 것이었다.

나도 그대로 했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맥주잔을 설치대에 걸어놓고 100엔짜리 몇 개를 투입하면 맥주가 꼴꼴꼴 쏟아지는데 다 찰 즈음엔 기울어졌던 맥주잔이 서서히 일어난다. 안주? 딱 두 종류, 멸치와 땅콩이었다. 전당포 창구처럼 작은 천으로 가려진 입구에다 100엔을 내고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의자가 없으니 아무리 길게 먹으려 용을 써도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지 않겠는가. 집에서 기다리던 마나님들이 뛰쳐나와 합석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 서서 마시는 술집은 밤 10시가 마감이다. 다음 날 아침엔 다른 주인이 출근해서 점심 장사를 준비한다고 하니 ‘한 가게 두 주인’인 셈이다. 한일 음식문화 전문가 에노모토 야스타카 씨는 “최근 일본에선 고급 스시집에서도 서서 먹는 게 트렌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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