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의 ‘경제 돋보기’

[음식과사람 2024.02. P.46-47 Economy]

건축물 보수 중인 근로자 ⓒ한국외식신문
건축물 보수 중인 근로자 ⓒ한국외식신문

editor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

업계 16위 건설사 워크아웃… 부실 수면 위로

그동안 꾸준히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던 시공능력 평가 16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이 개시됐다.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의 시발점이 될지,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모르지만 업계에선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PF는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신용도나 담보 대신에 그 개발사업의 미래 수익성과 사업성을 근거로 대출해주는 제도다. 금리가 낮고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시공과 분양이 원활해 문제가 없었지만,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공사 자체가 중단된 사업장이 급증하고 있다.

태영건설이 전국적으로 벌인 PF 사업장만 60곳, 보증을 선 사업장도 122곳에 달한다.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는 9조1816억 원, 채권자만 400여 곳이 넘는다. 우발채무란 건설사 부채는 아니지만 PF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시행사가 빌린 돈을 못 갚을 경우 보증을 선 건설사 채무로 잡힌다. 태영건설은 최근 수년 동안 공격적으로 벌인 부동산 PF 리스크가 건설사로 전이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현재 태영건설이 보증을 선 사업장 절반 가까이가 착공을 못 했거나 분양 전 사업장이다.

문제는 태영건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부동산 PF 잔액은 134조3000억 원이다. 2020년 말 0.55%였던 연체율은 같은 기간 2.42%로 높아졌다. 주요 16개 건설사의 PF 보증액은 28조3000억 원 수준이다. 특히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13.85%로 가장 높다. 이마저도 일부 부실대출을 장기로 전환하거나 부실채권을 상각한 영향으로 지난해 6월 말 17.28%에서 3.43%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이 밖에도 저축은행 연체율이 5.56%, 상호금융이 4.18%, 보험 0.95%, 은행권 0.23% 순이다.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데, 공사가 거의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정부가 대출 만기 연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PF 부실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지방의 중소형 건설사들은 줄줄이 부도를 내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부실이 금융권 전반으로 번지는 것이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 같은 제1금융권이 아닌 저축은행, 캐피털, 증권사와 같은 제2금융권에서 위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 PF 사업의 초기 단계 대출인 브리지론이다. 브리지론은 부지 매입과 인허가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사업 성공이 불확실한 만큼 대출금리가 높고 증권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대출한다. 본PF는 본격적으로 분양과 착공에 들어갈 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보증을 받기 때문에 금리가 낮고, 주로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빌린다. 이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건설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현재 만기 연장으로 근근이 버티는 총 30조 원에 달하는 브리지론 가운데 최대 15조 원가량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설사 줄도산 막기 위해 공적자금 85조 투입

정부는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촉발된 건설사 줄도산을 막기 위해 85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PF 리스크가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가운데 태영건설이 쓰러질 경우 위기가 일파만파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정부는 우선 사업성은 있으나 일시적으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부동산 PF 사업장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해 정상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LH가 사업성 검토를 거쳐 매입한 뒤 직접 사업을 시행하거나 다른 시행사나 건설사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사업성이 부족한 곳은 부실자산 처리 전문 공공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PF 정상화 펀드’를 통해 사들여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펀드는 총 2조2000억 원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 펀드로 부동산을 매입하면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취득세 50%를 깎아주기로 했다. 현재 태영건설이 공사 중인 주택사업장 중 분양이 진행돼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22개, 1만9869가구다. 이 중 14개 사업장(1만2395가구)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에 가입된 상태다. 정부는 이들 사업장에 대해선 태영건설이 계속 공사를 진행하거나 필요하다면 시공사 교체 등을 통해 사업을 계속 진행해 분양계약자가 정상적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만약 사업 진행이 곤란한 경우 HUG의 분양보증을 통해 분양계약자에게 기존에 납부한 분양대금(계약금 및 중도금)을 환급할 수 있다. 분양계약자의 3분의 2 이상이 희망할 경우엔 환급 이행 절차가 진행된다.

정부는 태영건설 협력사 지원에도 나선다. 태영건설은 공사 140건을 진행 중으로, 이와 관련해 협력업체 581개사와 1096건의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정부는 협력업체와 수분양자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지만 정작 태영건설 측의 자구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당초 태영건설 사주 일가가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자금은 오히려 태영그룹 지주사인 TY홀딩스 지원에 사용하면서 채권단의 반발을 샀다. 앞서 TY홀딩스는 자회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 원 중 890억 원을 TY홀딩스 연대보증 채무 상환에 사용했다.

이를 두고 부실 건설사는 버리고 상대적으로 우량 계열사이면서 TY홀딩스의 핵심 계열사인 SBS를 지키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채권단도 워크아웃 신청 시 약속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전액이 태영건설 살리기에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며 890억 원도 태영건설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태영건설의 자구 계획에 대해 “제 살이 아닌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라고 비판했고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대주주의 자구 노력 없이는 지원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뒤늦게 태영 측은 논란의 890억 원을 태영건설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위기 확산 막고, 부실기업 무차별 지원 지양해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채권단 96.1%의 압도적 동의로 개시됐다. 채권단은 최대 4개월 이내에 태영건설에 대한 자산, 부채 실사와 함께 존속 능력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태영그룹과 대주주가 자구안을 이행하지 않거나, 추가로 대규모 부실이 발견되면 워크아웃은 다시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부동산 업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건설업이 흔들리면 인테리어, 이사, 가전 등 후방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자칫 건설사들이 부도날 경우 실업률이 올라가고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건설업종과 금융시장의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옥석 가리기가 절실하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가장 큰 요인으로 건설 경기 악화를 꼽았다. 건설시장 위축이 장기화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벌어졌던 건설사 도미노 도산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지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는 14년 만에 대주단 협약을 부활하고 PF 사업장에 대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로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기만을 기다려왔다. 물론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로 기업이 위기에 빠졌다면 대출상환 유예, 유동성 공급 등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 이런 미봉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실기업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연명치료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건설사 부실이 금융 시스템 리스크와 실물 위기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 돈을 빌려준 금융권, 특히 은행보다는 증권,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위기기 전이되지 않도록 대손충당금을 쌓고 부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설사 옥석 가리기를 통한 구조조정과 사업장별 맞춤형 대책 등으로 조속히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다. 회생 불가능한 사업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확보한 토지를 저렴하게 재매각해서 새로운 개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늦어질수록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집값이 또 들썩거릴 가능성이 높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이유로 부실기업에 대한 무차별 지원에 나서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반면에 회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은 PF 전환과 이자 낮추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회생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자기책임과 희생에서 출발해야 한다. 비록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단호한 결단만이 더 큰 위기를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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