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7-5 P.62 Benchmarking Tour]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 바란다.

 

Editor. 황광해 / 사진 제공. 황광해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사물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음식점에 오는 손님들, 소비자들은 메뉴에 적힌 음식 이름을 보고 음식을 선택한다. 더욱이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름을 보고 음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단 가져와보세요. 한번 먹어보고 선택할게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서너 명이 와서 각각 다른 음식을 주문한 후 상대의 음식을 한 숟가락 떠 먹어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기가 주문한 것 이외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다. 음식점에서 내놓을 음식의 종류를 정하고 이름을 짓는 것은 중요하다. 손님들에게 믿음을 주는 이름과 그 이름에 맞는 음식이 ‘내 가게’를 다른 가게와 차별화한다.

 

진짜 왕갈비를 내놓는‘성산왕갈비’

외식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가끔 가는 집이다. 필자가 운영자로 있는 네이버 맛집카페 회원들과도 가끔 간다.

반응이 재미있다. 외식업체 대표들, 주방 식구들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맛집카페 회원들 중 식객으로 부를 만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음식 공부가 짧은 이들은 “맛있긴 한데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성산왕갈비’는 삼겹살 등 다른 고기도 있지만 간판 그대로 왕갈비를 내놓는다. 왕갈비는 등뼈에 가까운 굵은 갈비를 말한다. 갈비는 묘한 품목이다. 갈비 공급이 원활치 않으니 상당수 가게들이 갈비뼈와 살에 덧살을 붙이는 식으로 갈비를 내놓는다.

갈비에 덧살을 붙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가격이 싼 수입산 등심, 안심 부위를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국산 전지, 목살 등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시각이다. 어떤 부위를 붙이든 덧살은 ‘거짓말’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이 집에서 내놓는 왕갈비에 대해 눈 밝은 이들이 ‘성산왕갈비의 2인분과 4인분은 다르다’고 인터넷 등에 포스팅을 했다. 2인분을 2회 주문해도 4인분과 다르다는 뜻이다. 4인분은 굵은 갈비에 붙은 살을 내놓는다. 2인분은 가는 갈비에 붙은 살이다. 2인분을 두 번 주문하면 양은 같지만 고기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성산왕갈비는 왕갈비의 공급과 소비 균형을 잘 맞춘 경우다. 늘 만석이니 소비는 충분하다. 좋은 갈비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이들은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왕갈비를 내걸고 왕갈비를 파는 일. 쉬워 보이지만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힘들다.

 

50년째 해장국만 파는 ‘용문해장국’

가게 전면에 적혀 있는 글자도 단출하다. ‘용문해장국’이라는 간판과 ‘해장국 전문’이 전부다. 그 흔한 팝업 광고판 하나 없다. 영업시간을 보면 더 기가 찬다. 새벽 2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그마저 그날 준비한 물량이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저녁시간에 가는 술꾼들은 어떡하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문은 닫혀 있다. 저녁 영업을 포기한 것은 이 가게가 식사 위주의 밥집이라는 뜻이다. 주인은 “저녁 술장사까지 하면 인근 가게가 피해를 본다. 새벽부터 손님 받고 식사 손님 위주로 운영해도 매출은 어차피 줄어들지 않는다. 저녁 장사 한답시고 인건비 더 지출하거나 종업원들 고생시킬 필요는 없다”며 단호하다.

메뉴는 딸랑 ‘해장국, 7000원’ 하나다. 서울 시내 택시기사들이 아주 고맙게 여기는 밥집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집은 제법 있지만 새벽 2시에 문 열고 오후 2시에 문 닫는 집은 드물다. ‘해장국 전문점’이라고 내걸고 수준급 해장국만 꾸준히 내놓는다.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다.

주인이 처음부터 해장국 한 가지만 했던 건 아니다. 한때는 냉면도 해볼까 하고 냉면 뽑는 기술도 배웠다. 돌고 돌아 결국 해장국 하나만 선택했다. 외식업체 주인들이 시도하기는 힘든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이 집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분식집이 아니라면 메뉴는 단출해야 좋다.” 메뉴 종류가 적어야 한두 가지 메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야 고기, 뼈, 시래기, 우거지, 된장, 고춧가루, 심지어는 새우젓까지 일일이 주인이 챙길 수 있다. 좋은 음식, 소비자들이 찾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제일 잘 만드는 돼지뼈 해장국 ‘일등식당’

서울 망원동에 있는 해장국 전문점이다. 이름이 묘하다. ‘일등해장국’도 아니고 ‘일등식당’이다. 이 부근에서 아니면 전국에서 ‘일등’이라는 뜻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돼지 뼈와 우거지를 푹 고아서 내놓는다. 표면적으로는 메뉴가 두 개다. 해장국 이외에 술국이 있다. 그러나 술국을 주문하면 밥을 빼고 뼈와 고기를 조금 더 준다. 결국 그게 그거다. 메뉴는 해장국 하나다.

근래 방송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고 손님들이 더 많아졌지만, 원래 단골도 많았고 신촌, 홍대, 망원동 일대 술꾼들이 조용히 찾던 집이었다. 역시 장점은 메뉴가 딸랑 하나라는 점이다.

‘해장국 특’을 주문할 필요 없이 술국을 주문하고 나중에 공깃밥 하나 추가로 주문하면 제법 넉넉한 양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메뉴판에도 아예 ‘특’이 없다. 언젠가 ‘특’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주인이 알려준 비법이다.

주방이 그리 넓진 않은데 솥이 빼곡히 걸려 있다. 음식이 수준급이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해장국은 늘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내놓는다. ‘일등식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해장국 한 종류만, 그리고 일등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한다. 간판의 이름과 음식이 일치하는 셈이다. 역시 메뉴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은 나름 효과가 먹혀드는 마케팅 기법이다.

 

김치찌개에 뭔가를 더해서 ‘더김치찌개’

같은 이름을 단 가게가 몇 군데 있다. 겉으로는 가맹점 같지만 예사로운 가맹점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같지만 프랜차이즈는 아니라는 뜻이다.

철저하게 ‘조립형 식당’이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외부에서 완성된 형태로 가져온다. 여기에 주인의 안목이 작용한다. 돼지고기는 제주도 것만 고집한다. 제주도 돼지고기 전지다. 손님이 주문하면 길고 넓적하게 썬 돼지고기를 내놓는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이 직접 썰어서 먹도록 한다. 손님들은 안심한다. ‘재활용이 불가능하구나’라고 느낀다.

김치도 전국 몇몇 김치공장을 점검하고 가게에서 사용할 만큼 선주문해 사용한다. 꽁치, 햄 등을 넣어서 먹어도 된다. 추가 지불이 필요하다. 가게로서는 김치찌개를 팔면서 토핑을 추가로 파는 셈이다. ‘김치찌개’, ‘김치찜’이 메뉴의 전부다. 계란말이는 추가로 주문해야 한다. 김치에 뭔가를 더한 것이다.

전수도 편하다. 김치찌개와 돼지고기, 몇몇 식재료는 공동구매 형식으로 사온다. 육수 내는 법도 간단하게 만들었다. 며칠이면 모두 전수가 가능하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외식업체 대표들에게 권할 만한 샘플 모델이다. 김치, 국물 있는 음식, 매운 음식, 돼지고기 등은 오래 주목받을 아이템이다. 이런 부분을 다 갖춘 것이 바로 김치찌개다. 여기에 뭔가를 더했다. 게다가 전수도 가능하다. 매력적인 아이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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