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7-6 P.52 Consulting]

 

‘사계’라는 제목의 곡이 둘 있다. 하나는 비발디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고, 하나는 1980년대 말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이른바 민중가요다. 비발디의 ‘사계’만 알고 살아온 사람은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왔을 확률이 높다.

1980년대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부는’ 것도 모른 채 사계절 내내 미싱을 돌리며 살았다. 그 청소년들 가운데 황헌석(48) ‘미미식당’ 대표도 있었다.

그는 골프 장갑을 만드는 봉제공장 재단사로 일했다. 20대 중반에 새 삶의 비전을 찾아 식당 주방으로 일터를 옮겼다. 반평생을 남의 식당 주방에서 보낸 끝에 작년에 내 식당을 차렸으나 운영이 만만치 않았다. 짧지 않았던 주방 생활이 생각했던 것만큼 식당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Why] 반평생 고대했던 창업의 꿈, 부대찌개 가맹점으로 열었으나…

배움에 대한 갈증이 일어 재단사 일을 그만두고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돈을 벌기 위해 당시 최첨단 국수 프랜차이즈 가맹점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국수집 아르바이트가 인연이 되어 검정고시 합격 후 분식집 주방에 취직했다. 그때가 스물다섯이었다.

한때 배달 전문 식당을 인수해 잠시 운영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하나둘 그만두는 바람에 접어야 했다. 2002년에 다시 유명 칼국수집 주방에 들어갔다. 이때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본격적으로 음식에 대한 공부를 깊게 할 수 있었다.

이후 대형 한식집 주방으로 옮겼다. 국내 최고 수준의 냉면과 갈비탕을 제공하는 이 식당에서 조리의 기본기를 튼실하게 다졌다. 조리법 전수를 잘해주고 후배를 챙겨주는 선배들을 만나 황 대표로서는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면류, 탕류, 보쌈, 갈비, 만두 등등 어떤 메뉴건 조리하지 못할 게 없었다.

드디어 2016년 7월, 평생의 꿈이었던 내 식당을 창업했다. 좀 더 일찍 창업하려고 했지만 중이염 수술을 받는 바람에 늦어졌다. 수술을 받고 난 뒤 한동안 입맛이 썼다. 중이 부위가 미각 감지신경을 관장해, 수술 후 1년이 지나야 미각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보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수술을 받은 뒤라 둔감해진 미각이 완전히 회복됐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레시피와 조리 실력을 확신할 수 없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부대찌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었다.

 

[Problem] 직장인만 바라보는 상권에 식재료 조달 번거롭고 회전율 낮아

점포 위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앞 주상복합빌딩 지하상가다. 임차료가 저렴한 것 한 가지를 빼면 생각했던 것보다 장점은 별로 없었다. 점포가 주방을 포함해 30㎡(9평)밖에 안 될 만큼 협소하고 지하에 위치했다.

바로 앞이 서초역인 역세권이었지만 은근히 기대했던 역세권의 이점은 크게 누리지 못했다. 사무실 밀집지역이어서 주말이나 휴일에는 손님이 적었고, 직장인들이 퇴근한 야간에는 한산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제공하는 부대찌개 재료나 맛은 나무랄 데 없었다. 부대찌개는 누구나 선호하는 대중 메뉴라는 장점도 있고 본사의 레시피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부대찌개의 재료 가운데 한두 가지가 소진되면 찌개를 끓일 수 없었다. 매일 배송해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식재료가 동시에 소진되는 것이 아니었다. 식재료를 드문드문 받아서 조리하다 보니 이중 일이 되었다.

조리 기술이 없는 초보 창업자라면 그나마 도움이 되겠지만 눈 감고도 찌개를 끓이는 사람에겐 오히려 번거로운 시스템이었다. 부족한 식재료를 기다릴 바엔 차라리 내가 시장 봐서 조리하는 게 더 나았다.

회전율이 너무 낮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끓이기 시작하고, 다 끓어서 먹고 나가면 다음 손님 받기가 애매한 시간이 됐다. 자리가 넉넉하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겨우 22석의 좁은 점포에서는 무조건 회전율을 높여야 했다.

점포 입점 후에 안 사실이지만, 밤 9시만 되면 상가 출입문 셔터를 내렸다. 안 그래도 퇴근시간이 지나면 이 일대와 빌딩 전체가 썰렁한데 상가 셔터까지 내려버리니 저녁 장사를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손님들이 퇴근 후 느긋하게 식사와 술을 즐겨야 매출이 올라가는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격이었다. 이래저래 점심시간에 회전율을 높여서 최대한 많이 팔아야만 하는 구조였다.

식당 운영은 단 두 명이 한다. 황 대표가 주방을 맡고 그의 사촌 누이인 백은숙(53) 씨가 홀 서빙을 담당하고 있다. 식당 규모가 크지 않고, 또 직원이 너무 많아도 손발이 맞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질뿐더러 인건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맛이 괜찮은 부대찌개를 짧은 점심시간에 좁은 곳에서 판매하니 손님이 지체하는 시간은 길었고 기다렸던 손님들은 되돌아갔다. 부지런히 팔아봐야 하루 매출이 고작 18~20만 원 선이었다. 도저히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버틸 자금 여력이 있을 때, 그리고 손님들에게 ‘부대찌개집’으로 인식되기 전에 컨설팅을 받아보기로 했다.

[Solution] 점심은 소고기국밥, 저녁은 로스구이로 매출 정조준!

황 대표는 평소 구독하는 잡지와 블로그, 그리고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해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 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를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생각보다 조금 빨리 왔다.

2016년 10월, 김 기획자가 현장에 가보니 식당 규모가 너무 작았다. 매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거나 메뉴 가짓수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작은 규모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메뉴를 운용하는 식당 서너 군데를 황 대표에게 소개하며 그곳의 메뉴들을 점검해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돼지 전지를 활용한 메뉴에 관심을 가질 것도 당부했다.

황 대표는 김 기획자가 지정한 식당들을 다니면서 그곳의 메뉴 구성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조리 실력으로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는 메뉴들인 데다 평소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본 메뉴들이었던 것이다.

그중 소고기국밥은 회전율이 높고 조리법이 간편하면서 직장인들이 선호할 만한 메뉴였다. 대용량으로 끓여놓지 않아도 되고, 흔히 먹는 김치찌개보다 희소성도 높아 직장인이 매력을 느낄 만했다. 좁은 주방 여건과 짧은 점심시간에 집중적으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이곳에는 최적의 메뉴였던 것이다.

조리법을 숙지한 뒤 소고기국밥과 돼지고기로 끓인 ‘고기찌개정식’을 주력 메뉴로 배치하고, 국내산 한돈 돼지고기 전지를 ‘한돈 생고기 로스구이’라는 메뉴로 구성했다. 점심 매출은 소고기국밥과 고기찌개로 잡고, 저렴하면서 맛이나 질이 삼겹살 못지않은 로스구이로 저녁 매출을 겨냥한 것이다.

인테리어도 손을 댔다. 형광등 조명의 밝고 밋밋한 내부는 술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천장을 검은색 도료로 칠하고 세련된 조명기구를 설치한 뒤 조도를 낮췄다. 새로 구성한 메뉴 사진과 홍보용 P.O.P.도 점포 안팎에 부착했다. 복도 쪽 창문은 막아서 어수선한 느낌을 없앴다. 막은 창문에는 가독성 높은 새 메뉴판을 깔끔하게 설치했다. 공사비는 다 합쳐 7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점포 옥호도 ‘미미식당’으로 바꿨다. 이전의 식당 이름은 부르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힘들었는데 ‘식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고객에게 밥집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줬다. 다른 작업이 마무리되자 블로그 마케팅과 함께 인터넷 매체에 ‘미미식당’의 높은 가성비를 소개했다.

[After]미미했던 매출, ‘미미식당’ 전환하자 1.5배 상승

전환 작업 한 달 동안 예전 간판을 그대로 붙이고 장사했는데도 매출액이 50% 정도 올라갔다. 12월부터는 점심시간 동안에만 30만~40만 원을 올렸다. 간판을 바꿔 달고 본격적인 홍보 활동에 들어가자 매출액은 50만~60만 원대로 또 뛰었다. 이전보다 1.5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매출 향상도 큰 수확이었지만 음식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이 황 대표로서는 더 큰 기쁨이라고 한다.

그는 올 하반기쯤 지금의 상승세를 타고 다른 곳의 넓은 터전으로 식당을 옮길 예정이다. 요즘 후배 조리사들이 이런저런 문의를 해오는데 사실 동종업계 선배도 우물 안 개구리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선을 원한다면 좀 더 객관적 시각과 전문적 식견을 가진 컨설턴트에게 문의하는 게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기획자는 황 대표가 유명 대형 식당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빠른 결단과 실행 능력이 성공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머뭇거리다가 식당 개선의 타이밍을 놓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깝더군요. <음식과 사람> 독자 가운데에서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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