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 대상 수상자 조선옥 요리연구가

[음식과 사람 2017-8 P.50 People]

▲ '도쿄 조선옥요리연구원장' 조선옥(50)씨 / 사진 = 조선옥요리연구원 제공

지난 5월 열린 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 영예의 대상은 (사)일한농수산식문화협회 초대 회장이자 ‘도쿄 조선옥요리연구원장’인 조선옥(50) 씨에게 돌아갔다. 지난 30년간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전하며 한식 전도사로 활약해온 그에게 한식의 변화된 위상, 그리고 현장에서 느낀 한식의 세계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ditor. 김지은 photo. 도쿄 조선옥요리연구원 제공

 

일본에서 ‘한국 음식 좀 할 줄 안다’ 하는 사람 치고 한식 명인 조선옥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30년,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은커녕 한국 문화 자체를 배척하고 꺼리던 일본인들에게 그는 한식과 한국의 ‘음식디미방’ 문화를 전하며 한식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지금까지 그가 배출한 일본인 한식요리사만도 1000여 명에 달할 정도. 한류 바람을 타고 이제는 TV에서도 종종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가 소개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출연 제의가 들어올 만큼 일본 내 한식 문화를 대표하는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섰다”는 칭찬이 낯설고 쑥스럽다.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이 한식 세계화의 밑거름이 되리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배우고 익힌 한국의 음식문화를 일본에서 그대로 이어간 것,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온 건강한 밥상이 일본인들의 몸과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감싸 안은 것, 그렇게 삼시세끼를 나누는 평범함이 침략의 상흔으로 얼룩진 두 나라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힘이 된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서울특별시장상) 대상 수상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에 더욱 큰 확신이 생겼다는 그에게 한국과 일본의 음식문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물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사진 = 조선옥요리연구원 제공

우선,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먼저, 경북 영양군의 권영택 군수님을 비롯해 석계종택 13대 조귀분 종부님 등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함께 열심히 노력해준 제자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기쁩니다.

 

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에 참가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욕심이 생겼달까요. 일본인 제자들에게 한국 음식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깃든 ‘음식디미방’을 가르치다 문득 교육을 하는 것만으로 그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 음식문화의 기본이 되는 ‘음식디미방’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국제푸드그랑프리를 준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340여 년 전의 ‘음식디미방’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일본의 전국을 뒤져야 했어요. 수소문한 끝에 꿩고기는 구했지만 전복과 해삼은 말린 것이 없어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식품건조기를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제품이 알고 보니 한국 브랜드 제품이어서 더 가슴이 뿌듯해지더군요.

요즘엔 오히려 한국산 조리도구가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C밥솥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제가 최근에 빠져든 것은 가정용 발효기(요구르트 제조기)와 한국산 시트램 냄비입니다. 철로 만들어 가볍고 쓰기 편한 데다 코팅이 벗겨질 염려도 없어요. 음식이 눌어붙지도 않아서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들고 나갑니다.

 

출품작이 왜 ‘음식디미방’인가요?

한국 식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음식디미방’이 일본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고구려 자손들이 일본에 정착한 지 1300년 되는 해를 기념해 고구려 음식을 재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꼬박 2년여를 자료 수집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접하게 된 것이 경북 영양군의 ‘음식디미방’ 체험관과 장계향 박물관입니다. 영양군의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처음 ‘음식디미방’ 요리를 접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2년간 고생해서 재현한 고구려 음식들이 고스란히 ‘음식디미방’ 코스 요리로 나왔거든요. 그간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내가 한국 식문화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었구나, 순간 안도의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 그 전통을 제대로 배워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진 = 조선옥요리연구원 제공

한식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어떤가요?

과거에는 일본인들이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해도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을 밝히기 어려웠습니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거나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히트를 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한국 음식을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한국 사람들 너무 좋아요, 한국 음식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아졌고, 심지어 저에게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라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분들까지 있을 정도죠.

 

‘음식디미방’을 접한 일본인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음식디미방’에 대해서도 ‘굉장히 귀한 음식을 접할 수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음식디미방’은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3년 이상 한국 요리를 수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칩니다. 어느 정도 한국 요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음식디미방’의 역사와 정신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식디미방’의 세계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지난 2월 아오모리현의 온천협회 관계자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음식디미방’ 전시회와 시식회를 열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쿄에서도 일반인 20명을 초대해 ‘음식디미방’ 코스 요리를 제공했고, 파워블로거와 매스컴 관계자들을 초대해 일본 전역에 ‘음식디미방’을 알리는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올 하반기에는 도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음식디미방’ 요리강좌를 열고, 연말에는 일본어로 번역한 책도 발간할 계획입니다. 일한농수산식문화협회와 경북 영양군 등과 손잡고 ‘음식디미방’ 자격 과정도 만들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영양군과 ‘음식디미방 세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경북 영양군 홍보대사로서의 활동상도 궁금하네요.

일본에서 영양군의 특산물을 홍보하고 일본 기업에 직접 소개하면서 수출 촉진을 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산나물축제에는 일본 사람들과 함께 참가해 영양 군민들과 직접 교류하기도 했고요. 아울러 영양군의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교실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습니다.

 

340여 년 전의 ‘음식디미방’에서 2017년 한국의 음식점 경영자들이 배울 점이 있다면요?

‘음식디미방’ 자체가 바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요리입니다. 요즘 트렌드인 건강요리, 한방요리, 퓨전요리 역시 발효식품이 많은 데다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해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깊은 맛을 냅니다. 음식점 경영자들께서도 ‘음식디미방’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담긴 정성 어린 음식을 대접하는 법을 배워보셨으면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음식디미방’의 가치를 높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조선옥 원장. 그의 바람대로 일본에서도 ‘음식디미방’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생기고, 음식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더 깊은 마음을 나누게 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음식디미방’이란?

- 340년 전 쓴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이 2017년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주목하다

‘음식디미방’은 340여 년 전, 조선 중기 여류 문인 장계향(1598~1680)이 쓴 최초의 한글 요리책이다.

경상도 영양지방 사대부가의 며느리였던 장계향이 자손들을 위해 일흔이 넘어서 지은 조리서로, 그 안에는 조선조 중엽과 말엽, 경상도 지방의 양반가에서 실제 만들던 음식의 조리법과 저장 발효식품 만드는 법, 술 빚는 법, 식품보관법 등 146가지의 비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음식의 종류도 국수, 만두, 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해 어육류, 채소류, 주국류, 초류 등으로 매우 다양하며 각각의 조리법과 조리기구까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어 지금도 그 내용을 보고 따라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조선옥 씨는 장계향의 후손인 조귀분 씨로부터 음식디미방의 비법을 전수받아 일본에 전파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음식디미방’에서 추구하는 요리법이 한국은 물론 일본의 식문화와도 닮은 점이 많다. 먹는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식재료 선별과 조리법부터가 그렇다. 인공적인 맛을 배제하고, 천연 효소와 조미료를 중시하는 조리 과정은 식문화에 담긴 양국의 철학과 가치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음식디미방’에 담긴 또 한 가지 중요한 철학은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장계향은 엄격한 신분제도에 갇힌 양반가의 며느리였지만, 언덕에 올라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사람을 불러다 일을 시키고 양식을 나눠주었을 만큼 대단한 박애주의자였다.

병자호란 때는 도토리죽으로 병사들을 먹였고, 집안의 노비들에게까지 직접 죽을 만들어 먹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음식의 재료와 조리 과정만이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베푸는 마음까지도 건강한 것, 그것이야말로 조선옥 씨가 추구하던 진정한 ‘건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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